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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Mar 30. 2021

햄버거와 커피

언 마음을 녹이는 음식

수업 시간을 바꿀 수 있냐는 문자가 왔다. 강사면서도 밤에 수업하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시간이 밤으로 옮겨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학생에게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수업 시간을 오후에서 저녁으로 변경했다. 수업을 마치니 밤이 되었다. 어서 집에 가자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나서려는데, 갑자기 학생이 머뭇거리더라. 그러더니 어머니께서 현관문 앞까지 나오시고는 쇼핑백 하나를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밤늦게 저녁도 못 드시고 죄송해요. 이거라도 가져가서 드세요.”



쇼핑백 안에는 햄버거와 커피가 들어 있었다.      



나의 밥을 챙겨주는 건 가족뿐이었다. 끼니를 굶고 수업을 할까봐 걱정해줬고, 내가 나갈 때가 되면 뭐라도 먹이려고 하거나 무엇이든 가방에 넣어 주려고 했다. 남들은 그렇지 않았다. 남들은 말뿐이었다. 하물며 일적인 관계에서 만나는 분이면 더 그렇지 않으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ㅈ양 어머니께서 건네신 쇼핑백은 의외였고, 따뜻했다. 이건 내가 소망하던 거였다. 일을 시키고 이행하는 딱딱한 사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바라봐주는 것. 그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제일 처음 했던 과외가 운이 좋게도 10년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ㅎ군과 ㅎ군의 어머니께서는 나를 돈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람으로 바라봐줬다. 그래서 서로 10년이란 세월을 믿고 의지하며 지낼 수 있었겠지. 과외를 하면서 매번 따스함을 느꼈기에, 나는 다시 그런 관계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 관계가 생기길 바랐다. 그런데 작년에는 그런 경우가 하나도 없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입장에서 꼭 나를 따뜻하게 맞아줘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저 그런 관계가 나의 이상이었다는 거다. 아이의 성적이 쉽게 오르지 않아도 조금만 더 날 믿어주고, 상의해주는 관계. 나를 분풀이 대상으로, 언제든 교체 가능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존중해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타인으로 생각해주는 관계.      



내 안에 주변 사람들이 건네준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배려와 감사의 말들은 얼었던 내 몸을 녹여주기까지 한다. 만약 이 말들이 사라져 내 몸이 차가워진다면, 나는 강의를 할 의욕을 잃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강의를 지금까지도 계속하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 나를 차갑게 만들지 않았고, 차가워지다가도 따뜻함이 다시 다가왔기에 아직도 웃으며 할 수 있다.      



ㅈ양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배려로, 내 몸은 다시 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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