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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Mar 23. 2021

지루하면 웃으면 되지

요시타케 신스케의 <더우면 벗으면 되지>


1학년 수업이 다가왔다. 국어 수업마다 잠을 청하던 이들이 또 잠을 잔다. 나는 "일어나!"라는 말을 웬만해선 하지 않는다. 자고 싶어서 자는 아이가 어디 있겠나. 스르르 잠이 찾아온 것일 텐데, 조금 있다가 깨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깨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외쳐보기도 하고 칠판을 쿵쿵 두들겨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그제야. 그래서 더 말하기 싫은 거다. "일어나!"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일어나!"라고 내뱉는 순간 화가 날 것 같았다. 여지없이 그렇게 되었다. 거기에 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잠이 가득한 눈을 보는 건 재미가 없어."



김광섭 시인의 <생의 감각>이란 작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처음에 난 이 구절을 보고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나타내나 싶었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을 한 번 더 반복하더니 '내'게로 오고 '내'게서 간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 시를 전체적으로 읽어 보면 구절이 이해가 된다. '생의 감각'이란 제목처럼 '나'가 존재해야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 '나'가 존재하기 때문에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이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가는 거다. 즉 '나'가 존재해야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해석은 시를 다 보고 나서 할 수 있는 해석이었다. 처음엔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기억에 남아 이번에 저 구절이 생각났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내게서 가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처럼 모든 졸린 눈을 내가 바라봐야 하고, 졸린 눈이 감기는 순간을 내가 직시해야 하는 게 참으로 재미없다고 말이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재미없게 수업을 해서, 오늘따라 피곤해서, 이 시간만 되면 잠이 몰려와서 등의 이유일 테지만 난 내가 "일어나!" 하는 순간 화가 나는 이유를 간단하게 만들었다. "저 눈이 재미없다."



이 이야기를 3학년에게 하니 갑자기 3학년 아이 중 한 명이 눈을 크게 뜨기 시작했다. "ㅅ군아, 왜 눈을 크게 떠?" "저 원래 눈이 이렇습니다." 얌전한 ㅅ군이 농담을 할 때 나는 그것이 의외여서 웃음이 난다. 이렇게 농담으로 받아치는 아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즐겁나. 하하하 웃으며 그 옆에 앉은 ㅈ군을 봤더니 이번엔 ㅈ군이 눈을 감고 있더라. ㅈ군은 ㅅ군의 친구다. 둘 다 강의 시간엔 참으로 얌전하다. "넌 왜 눈 감고 있어?" "선생님이 졸린 눈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요."



기분 전환이란 건 손쉽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더우면 벗으면 되지>라는 책은 아주 작은 크기의 책이다. 제목 그대로 더우면 벗으면 된다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이어, 피곤하면, 살이 쪘으면, 상대의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등의 상황을 말하면서 해결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 따르면 기분 전환이란 건 어렵지 않다.



학생에게 지루함을 느꼈다면, 그래서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역시 어렵지 않을 것이다.



ㅈ군과 ㅅ군을 바라보듯이

그들의 작은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하다 보면

어느새 웃음은 내 안으로 들어와 있다.




ㅡ지루하면 웃으면 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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