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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Apr 08. 2021

말말말

당신의 오늘에, 어른이란?


오랜만에 ㅎ군을 만났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아이 중에 ㅂ군이 있는데, ㅂ군이 너처럼 재밌고 톡톡 튀어. 제2의 너를 찾았어.” 그 말에 ㅎ군은 의아해했다. “선생님 입에서 학원 아이가 예쁘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그렇다. 나는 ㅎ군과 수업하던 시절 유달리 학원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예민하게 굴었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나는 중학생 아이들이 재밌다. ㅂ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린 듯하다. 오늘은 글쎄 ㅅ군이 ㅂ군에게 “나 <외투> 책 좀 빌려줘.” 했더니 ㅂ군이 “그래, 그러면 수업 끝나고 우리 집에 가자.” 하더라. 그러더니 실실 웃으면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라면 먹고 갈래?”



아니! 이런 말은 어떻게 생각해 내는 거냐고! 중학교 2학년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내뱉은 저 말에는 말이 갖고 있던 엉큼함은 사라지고 재미만 남아 있었다. 재미만을 위해 내뱉은 말에 저런 대사가 낄 수 있나. 내 머릿속엔 전혀 들어있지 않은 말이라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이내 깔깔대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저 입에서는 어떤 재밌는 말이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다.



ㅂ군처럼 ㅎ군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 ㅎ군과 수업을 마치고 ㅎ군을 할아버지 댁까지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그때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 있었다. ㅎ군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구름은 아이스크림처럼 생겼어요.” 난 구름을 아이스크림 같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당시 수업할 때 ㅎ군은 간식을 일 분에 몇 개씩 먹어야 수업 내내 먹을 수 있나를 계산하며 나눠 먹었는데, 그 때문일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눈엔 전혀 아이스크림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 길에 우리는 구름에 각종 음식 이름을 붙이며 걸었었다.



그랬던 ㅎ군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지, 난 ㅎ군을 여태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미있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ㅎ군에게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는 재미라고는 모르는 사람인데요. 전 항상 진지해요.”

“난 항상 너의 말을 듣고 웃는걸?”

“그냥 웃어주는 거 아니었어요?”

“아닌데, 진짜 웃긴데.”



내 눈엔 여전히 초등학생 때의 순수함이 보이는데 청년이 되어 버린 ㅎ군은 그런 자신을 잊은 걸까.



중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중학생이란 무엇인지 정의해 달라고 말이다. 어떤 학생이 이렇게 답했다. 중학생이란 할인율이 높은 나이다.(난 잊었던 거다, 청소년 시기에 할인을 받고 다녔다는걸.) 이번엔 어른이란 무엇인지 정의해 달라고 말했다. 어른이란 기대하긴 했지만 별로인 나이다.(아니, 이걸 겪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지?) 그런 답변을 듣고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어른이란 겉과 속이 ‘달라지는’ 나이다.

겉은 늙어 가지만 속은 젊음을 품는 나이, 책임감을 안고 사느라 겉은 쾌활한 척하지만 속은 무겁디무거운 마음이 한 짐인 나이, 보충을 해 달라고 해서 대견하다며 알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이러면 나의 주말이 무척 피곤할 거라고 걱정하는 나이, 당당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긴장하고 외로워하고 두려워하는 나이. 그리고 ㅎ군처럼 점잖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순수함을 감춰 순수함 자체가 숨어 있음도 잊어버리는 나이.

내일은 어른이란 걸 뭐라고 정의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나에게 ‘어른이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당신의 ‘오늘’에 어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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