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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Apr 13. 2021

삼주차를 보내는 너와 나

중간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보낸 3주... 그리고 남은 시간


비에 젖은 종이처럼 학생들이 흐물거린다. 반듯하던 어깨가 내려앉고, 높게 쳐들던 고개가 푹 수그러들었다. “고개 들고 여기 좀 봐.” 한 마디 하면 젖었던 종이가 우글거리며 마르듯이 흐물거리는 몸을 우글쭈끌 편다. 이게 시험 대비 삼 주차의 모습이다.



학생만 이러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렇다. 우리는 서로 한편이 된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집에 가고 싶지?” “그만하고 싶지?” “머리 아프지 않아?” 한편이 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도. 나는 그저 나의 일상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선생님이 감정이 오락가락해. 분명히 오전에는 기분이 좋았거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힘이 났다고. 두 시까지만 해도 점심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거렸어. 그런데... 출근하는 버스에서 잠시 눈을 감는 사이에 잠이 든 나를 보고는 기운이 빠졌어. 게다가 여기에 도착하고 나서는... 기분이... 안 좋아...”

흐물거렸던 학생이 갑자기 몸을 반듯하게 만들더니 배에 힘을 주고는 이내 깔깔거린다. 당황한 나는 무엇이 재밌는 거냐며 묻다가 상대가 웃기에 따라 웃어 버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너도?’



이렇게 삼 주차가 되면 강사와 학생의 구분이 사라지고 우리는 한편이 된다. 진도를 다 나갔는지, 숙제를 다 했는지 서로 확인해 준다. 학생이 문제를 풀 때 나는 강의 자료를 정리한다. 학생이 형광펜을 들 때 나 역시도 형광펜을 꺼내 밑줄을 긋는다. “노란색 형광펜이 제일 예뻐.”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주말에도 만나는 사이, 그래서 친해질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어 간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ㅇ양이 두툼한 털옷 지퍼를 목까지 잠그고 왔다. 날씨가 좋다고 외치던 일요일이었기에 목까지 잠긴 지퍼를 이상하게 여겼다. 안에 옷을 안 입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그게 진짜였다. 티셔츠를 입는 걸 깜빡했단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옷을,,,” 하다가 이내 시험 대비를 한답시고 주말까지 학원에 나오는 상황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수긍했다. 오늘은 ㅇ양이 국어 교재를 안 가져왔고, 하나도 안 푼 문제는 집에 두고 다 푼 문제만 가져왔다. 그럴 수 있다. ㅈ양은 수학 선생님 앞에서 쩔쩔맸다. 어제 준 수학 문제를 안 가져왔단다. 수학 선생님을 대신해 내가 한 마디 했다. “그럴 수 있어.” 평소에는 엄격하다가도 시험 대비 기간에만 너그러워지는, 이 은혜로운 시간!



학생은 피로가 점점 더해갈지 몰라도 사실 강사의 피로는 좀 다르게 흘러간다. 시험 대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때부터 인쇄 전쟁이 일어난다. 뽑고 또 뽑고, 복사하고 또 복사한다. 그렇게 자료를 만든다. 그리고 수업이 이루어지는 첫 주. 전쟁이다. 수업 나가랴, 진도 확인하랴, 시험 일정 확인하랴, 문제 나눠주랴... 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다. 그런데 삼 주차가 되면, 이미 문제를 다 주었고 진도도 얼추 나가서 급할 게 없는 상황이 된다. 시험 범위가 공지되었고, 나는 그 양을 때맞춰 끝냈으니 이제는 숨을 쉬면서 말할 수도 있다. 물 한 잔 마실 여유도 생긴단 말이다. 그리고 사 주차가 되면, 더 나아가 시험 당일이 되면 더 할 일이 없어지는 게 강사의 시간.



삼 주차를 보내고 있는 나는, 이번 주는 저번 주보다 수월한 한 주가 되리라 기대한다. 이제 슬슬 학생과의 동맹을 깰 때가 되었나...



“왜 자! 안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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