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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Apr 14. 2021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넷플릭스 <도시남녀의 사랑법>


과학 지문을 읽고 풀어야 했는데 첫 페이지를 보자마자 읽기 싫어졌다. 팽창 냉각? 어휴. 그러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틀었다. 처음엔 이 드라마가 여행지에서의 사랑, 환상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서 재미없어 했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배우 지창욱 씨의 한탄, 한숨이 재미있었고 그러다 불현듯 이분이 연기를 잘하는구나 느꼈다. 이분의 드라마를 처음 봤기 때문에 이제야 감탄하는 게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너무 유명했던 분을 이제야 알아본 게 부끄럽지 않다고 할 순 없다.



오늘 본 장면에서 내가 좋아한 장면은 친구 서린이, 이은오, 강건이 초 켜는 대목이다. 강건이 서린이가 아르바이트하는 마트에서 초를 계산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 초 샀다. 오늘 초 켤 거야." 그때 은오에게 카카오톡이 온다. "나 초 켠다, 열시에 보자."



세 명은 유치원 때부터 친구다. 그리고 그때부터 유지되어 온 문화 중 하나는 한 명이 초를 켜면 그날은 초를 켠 사람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다. 나에게도 초를 켜는 날이 있었더라면... 커가면서 나는 점점 내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던 내가 이제는 남의 이야기를 쉽게 무시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건 일종의 복수였다. 내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사람들을 향한, 나의 귀기울임을 소홀하게 여겼던 사람들을 향한, 소심한 복수였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나'라는 사람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우리는 친하다는 이름 하에 서로의 속내를 꺼내지 않고, 듣지 않는 사이가 되었을까. 변해가는 관계 속에서 마음을 다잡고 따뜻함을 나누고 '가깝다'라는 의미대로 살아가려면 '문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초를 켜는 날이 존재했다면 초를 켜는 사람은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하고 나머지 사람은 진심으로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하니까 그날이 오면 세상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유지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은 대개 말하고 싶은데 내 말을 들어줄 상대가 없어서, 말을 듣고 싶은데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러니까.



은오는 초를 켜고, 일 년 전에 친구들이 배려해 줬던 일들에 대해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비밀스럽게 간직했던 일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전에 이은오가 싫었다고, 바보 같은 이은오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바보 같아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까 예전의 이은오는 싫었다고. 그 말을 들은 서린이는 은오에게 말한다. 난 그런 이은오도 좋았고, 지금의 이은오도 좋다고, 그리고 예전의 이은오는 바보 같지 않았다고. 이들이 얼마나 따뜻한 우정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은, 일 년 전 이은오가 사라졌다 갑자기 집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해 준 행동이다. 몇 개월을 양양에서 보내고 서울로 갑자기 돌아온 이은오 집에 강건이 있었다. 여기에 왜 있냐는 은오의 물음에 강건은 이렇게 답한다. 너 집에 갑자기 오면 추울 것 같아서. 그리고 린이의 포스트잇이 냉장고에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죄다 돌아오라는 말이 가득했다. 그렇게 걱정했으면서도 그들은 은오에게 왜 잠적했는지, 어떻게 돌아오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착했던 이은오가 사나워졌는데도 왜 그렇게 성격이 변했는지 묻지 않고, 그저 이은오를 좋아해 주고 존중해 줬다. 그래서 초 켜는 날, 은오는 울면서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을 포기할 순 없다. 나는 나에게 서린이, 이은오, 강건과 같은 친구가 없다는 걸 안다. 나는 변했다는 소리를 들었고,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상처는 언제쯤 나아지냐는 말도 들었다. 그들이 내 상처를 보듬어주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엔 이렇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에 대한 고마움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때 친구들이 있어서 난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의' 친구들이 사라졌을 뿐이다. 드라마 속 세 인물의 관계가 현실에 존재하긴 한 것일까 의문스럽다. 나에게 따뜻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상처를 받았기에, 더 이상 그런 관계는 믿고 싶지 않다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인데 유치원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사이가 좋은 친구라니.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도 변했으니까.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상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기대를 낮출 수 없다. 지금의 현실은 이러해도 나는 매번 찾는다. 나와 따뜻한 관계를 나눌 사람이 어디 없을까, 하고. 어디 나와 친구할 사람 없나 하고. 그래서 이 대목을 보며 감동받았고 같이 울었다. 서린이는 직업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건도, 사람도 모두 다. 자기 곁에는 소중한 사람들만 있으면 된다고, 그 외에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 말이 맞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많은 인간관계는 필요하지 않다. 진정한 관계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 관계라는 게 하나 생기기도 어려운 것이라 우리는 이 사람과도, 저 사람과도 관계를 맺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나에겐 전주초록이가 있다. 나에겐 세종시에 거주하는 언니가 있고 조카는 둘이나 된다. 나에겐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관계가, 돈독해질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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