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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Apr 23. 2021

조용한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별일 없으면 그 수업, 수강하려구요


조용한 아이에게 다가갈 때 조심스럽다. 반면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아이는 처음에는 친해지기 쉽지만 나중에 어려워진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건 아니다. 둘 다 어렵다. 조용한 아이는 처음에 어렵고, 외향적을 보이는 아이는 나중이 어렵다. 결국 아이들을 대하는 건 항상 어렵다.



1년 넘게 가르친 ㅅ양은 조용한 아이에 속한다.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땐 나에게 하듯이 하지는 않는 모양인데, 나한테는 참 말도 안 하고 표현도 안 한다.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고, 혼을 내도 그저 묵묵부답이다. 그런 아이로 1년을 봐 왔는데, 최근에 ㅅ양에게 변화가 생겼다.



나는 책을 읽으면 그 책에 관해서 학생들에게 곧잘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목적은 아니다. 바로 수업에 돌입하기에 앞서 말을 떼는 용이다. 문제는, 목적은 그러했으나 내가 심취하여 책 이야기를 깊게 하는 날이 있다는 것이지. 그날도 그랬다. 과학책을 읽는 중이었는데 내용이 어려우면서도 신기했다. 처음으로 과학이 재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기쁨을 담아 학생들에게 책에 담긴 과학 지식을 소개했다. "이거 봐, 신기하지?"라고 말을 떼는 순간 아이들도 나처럼 신기한 모양인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때 ㅅ양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생기를 띠는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어? ㅅ아~ 너도 이거 재밌구나?"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ㅅ양의 생기를 띠는 순간은 한 번 더 있었다.



학생 중에 한 명이 자꾸 나에게 '국어선생님답다'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며, 말을 할 때 문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며, 어떤 현상을 목격할 때 그에 관한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이 다 '국어선생님답다'라고 했다. 나는 내가 '국어스러운'지 잘 모르겠다. 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국어와 닮게 된 것인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의 성향이 처음부터 이러했던 건지 구분이 안 간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국어를 가르치지 전의 나를 모르니 그저 '나=국어선생님'으로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학생이 '국어선생님 같아요!!' 하고 힘주어 말할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ㅅ양을 바라보게 됐다. ㅅ양이 열심히 끄덕이고 있었다. "ㅅ아~ 너도 내가 국어 선생님답게 행동하는 것 같아?" 그랬더니 씨익 웃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조용한 아이였고, 반응하지 않았던 아이가 이제야 반응을 내보이니 난 그게 신기해서 자꾸 무슨 말을 하다가도 ㅅ양의 반응을 살핀다. 웃고 있을까, 아닐까 그게 궁금해서. 눈을 반짝일까, 아닐까 그게 궁금해서 말이다. 그런 ㅅ양이 오늘은 질문을 했다.

"선생님, 독서반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난 중학생을 대상으로 독서반을 운영하고 있다. 주말에 하는 수업인데, 아이들에게 말한 그대로 나는 이 수업을 좋아해서 하고 있다. 학생 수가 적으면 폐강을 해야 돈 버는 사람으로서 효율적이지만 난 이 수업만은 그러고 싶지 않다. 한두 명이라도 즐겁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계속하고 싶다.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유일한 수업이다. 그 수업을 ㅅ양이 물어본 거다. 조용한 아이들은 대개 침착하기도 하고 진중하기도 하다. 호기심에 한 번 물어보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수업을 찜해 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언니도 그렇고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단번에 알았다. ㅅ양은 이 수업을 수강할 생각이구나.


"토요일에 수업해. 그리고 5월 첫 주부터 새 책으로 시작하고."

ㅅ양은 수업 끝나고 잠시 남아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별일 없으면 5월 첫 주에 수강하려고요."



나는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책을 가지고 수업하는 것이다. 정답을 맞히는 국어가 아니라 정답이 없는 책을 읽는 활동을 하고 싶고, 아이들이 책을 좀 더 사랑했으면 한다. 오늘 그 대열에 한 명이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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