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olpit Apr 20. 2021

날이 좋아서? 흐려서?

무서운 상상 _ 죽음에 대해 상상하는 요즘이다


친구가 부쩍 연락이 잦다. 한동안 우리는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오더니 요즘엔 부쩍 늘었다. 오늘은 나에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며 인생에 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물었는데 친구는 "날이 좋아서?"라고 답했다. 그 한 마디면, 됐다. 날이 좋아서. 우리는 날이 좋아서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날이 흐려서 슬퍼하기도 하니까.



날이 좋았던가. 좋았던 날이 저물고 밤이 다가왔기 때문일까. 나는 수업하다가 또 무서운 상상을 하고 말았다.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내 앞에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 있었다. 문제를 풀라고 말했는데도 깔깔거리고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는 '그래 너희들은 이런 무서운 상상을 하지 않아서 좋겠구나.' 싶었다. 나도 일 년 전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간의 경험이 날 이렇게 만들었겠지.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너희들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니?'였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살아왔나? 이렇게 살아가도 되나? 불안한 마음에 나 자신에게 묻는 말이다. 이렇게 삶을 허비해도 될까. 매일 질문한다. 그리고 매일같이 대답한다. 지금 하고 싶은 걸 말한다면 지금의 일상처럼 밥을 먹고 수업을 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고. 무엇을 못 하고 있고 그래서 불행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인터넷이 발달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구경하게 되고,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이 화려해 보일 때 난 더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 같다. 정말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여행도 덜 다녀봤고 사랑도 못 해봤는데 정말 괜찮아? 사랑을 못 해본 일은 한이 된다. 그러나 여행은 괜찮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뿌리내리는 게 나란 사람이니까. 여행은 괜찮다. 사랑은 운명이니 한스럽지만 그것은 내 탓이 아니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게 있으니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수업을 이어가던 중 다시 한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깔깔깔깔깔깔깔깔깔. 그 속에서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저 아이들처럼 지내면 돼.



별일 아닌데도 서로 깔깔거리는 아이들처럼 나도 지내면 되지, 왜 사서 고생일까 싶었다. 언제 내가 무서운 상상을 했고, 언제 무서운 상상이 실현될까 조마조마하며 시간을 보냈단 말인가. 그건 닥치면 다 하게 되는 일 아닌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1학년 때는 대학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서울에 어떤 대학이 있는 지도 몰랐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려면 얼마큼 공부를 해야 하는 지도 몰랐으니까. 그런데 2학년이 되자 걱정이 됐다. 그때 언니는 3학년이었는데 아무런 상의 없이 언니는 스스로 잘 해나갔다. 그리고 대학에 합격했다. 그런 언니를 보며 난 대학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더욱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언니는 대학을 갔을까. 그러다가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야 알았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는걸. 3학년이 되면 시간이 저절로 나를 대학 입학 서류 앞으로 이끌어 가고 나를 대학 문 앞에 데려다 놓는걸... 내가 거기까지 어떻게 향해 가는가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를 해 나갔으면 되는 거였다.



무서운 상상도 다르지 않을 거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지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통과할 것이다.



평론가 이동진 씨의 말을 되뇐다.

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작가의 이전글 다정한 세상을 만들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