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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Apr 17. 2021

다정한 세상을 만들 것이다

끼리끼리 논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호의로 한 행동이 상대에게 귀찮음을 불러일으키고 오지랖, 간섭으로 비칠까 봐 행동하기 전에 상대의 마음을 가늠하려 한다. 상대방은 이런 마음을 원할까. 그러나 가늠하려 해도 매번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은 어렵다.



아직 가보지 않은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는 편이라 여겼다. 그런데 나는 가보지 않아 알지 못하는 마음들을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어제 중3 ㄹ양의 말을 듣고 내 마음에 ㄹ양의 흔적이 남았다. 어머니와 다툼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살이 빠졌고 병원에도 다닌다는 아이. 그런데 나는 그간 ㄹ양이 보여준 행동에 따라 ㄹ양을 무작정 따뜻하게 대할 수만은 없었다. 두 달 내내 잠만 자던 아이였고, 건들거리며 이야기하는 아이였으며, 성실함과 예의를 자주 잊는 아이였으니까. 어제도 ㄹ양은 자신의 이야기를 농담처럼 나에게 전했다. 그 농담의 겉껍질 때문에 나 역시도 ㄹ양의 이야기를 가볍게 들었는데, 오늘 갑자기 ㄹ양의 말들이 떠올랐다. 진심을 몰라준 게 아닐까. 급하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어!'



오늘도 가보지 않아 알지 못하는 마음이 신경 쓰였다. 슬럼프가 왔다는 말에, 건네줄 말이 없었다. 그의 슬럼프가 어떠한 것인지, 얼마나 깊은 것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니까 섣불리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시간을 보낸 뒤 그제야 말이라도 건넬 걸 싶었다. 한 마디의 말뿐이라고 여기면 간단하지만, 그게 아닐 때도 있지 않나. 난 속으로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덩어리가 커질 대로 커진 말의 끄트머리를 남에게 내보인 경험이 있다. 대체로 고민이 그렇다. 겉 포장지로는 '그냥 한 번 말해 본 거야, 신경 쓰지 마, 가벼운 문제야'를 내세우면서 속 알맹이는 진지하고도 진지하며, 머리가 아플 때로 아픈 고민이었다. 그럴 때 남의 관심이 귀했고, 고마웠고, 힘이 났다. 나의 경험이 그러했기에 슬럼프를 겪는다는 이의 마음에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순간, 위로해 줘도 될까, 망설이게 되었다. 함부로 다가가도 되는 것일까?



지금의 사람들과 내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생각해 봤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다가와 친해진 건 학생 때였다. 그렇게 기억된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부단히 내 마음을 표현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오늘 기분이 어때요? 힘내세요 등 말과 행동으로 상대의 마음에 다가갔다. 그런데도 내가 망설이는 이유는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 때문이다. 고3 때였다. 우리는 다른 반이었는데 야자가 같은 반으로 배정되어 석식을 먹고 같은 교실에서 야자를 했다. 그때 난 친구에게 두세 번 쪽지를 보냈다. 힘내라는 둥 괜찮냐는 둥. 친구가 힘들어 보였던가. 지금은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에는 내 마음을 친구에게 투영하여 그렇게 보았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쪽지를 받던 친구가 집 가는 길에 나에게 한 마디 했다. "그만 보내." 그 말의 겉 포장지는 농담이었지만 속 알맹이는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꽤나 많은 충격을 받았는데, 커서는 친구가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좋다고 해서 남도 좋은 건 아니니까. 내가 호의를 표현해도 남은 싫어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망설였다. 나의 호의가 상대에게 오지랖처럼 느껴질까 봐.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까 봐. 한동안은 그런 생각으로 사람을 멀리했던 것 같다. 나는 100퍼센트 다정함을 보여줄 수 있는데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매번 20, 30퍼센트로 줄였다고나 할까. 친해지고 나서야 100퍼센트를 보여주는 치사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치사해지고 싶지 않다. 온전히 나를 표현하고 그런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올해의 내 마음이다. 그래서 망설이는 나를 설득했다. 마음을 전하는 건 나쁜 게 아니고, 좋은 마음은 간직하고 있기보다는 표현해야 더 좋다고 말이다. 그렇게 내 호의를 표현하고 나서는 잠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상대방이 싫어하면 어쩌지, 뭐라고 답이 올까. 그 설렘이 좋았다. 내 마음을 전하고 그것에 대한 설렘.



상처받기 싫다고 나의 다정함을 감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에는 다정한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내가 다정함을 감출수록 그들도 감췄다. 난 다정한 세계 속에서 살고 싶은데... 다정한 세계 속에서 살고 싶다. 그러니 난 다정함을 마음껏 드러낼 거다. 이 정도까지 다정하다 싶을 정도로 내 안의 다정함을 드러낼 때, 내 주변은 다정한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고, 내 세상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끼리끼리 논다고 하지 않던가. 며칠 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난 이미 끼리끼리 놀고 있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직했고, 인간성을 최우선시했다. 남의 약점을 웃음으로 삼지 않았고, 남에겐 약점이 될 수 있는 일을 평범한 일인 양 받아들여 줬다. 그분들의 태도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같았다. 끼리끼리 노는 것이고 그 끼리끼리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러니 상처를 받더라도 나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나는 노력해야 한다.



다정한 세상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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