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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un 13. 2021

초기화된 기능만 사용하는 사용자

블루투스 키보드를 주문했다

ㅈ이 갤탭을 샀다고 이야기하면서 블루투스 키보드도 같이 말했다. 알고 보니 ㅈ과 나는 노트북, 핸드폰 그리고 갤탭 모두 같았다. 그와 다른 건 단 하나, 키보드. ㅈ은 키보드가 너무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차분한 이미지의 아이가 자기 돈을 모아 신중에 신중을 기해 산 탭과 키보드. 그래서 더 이야기를 흘겨 들을 수 없었다.



키보드를 사면 탭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까. 지금 나의 갤탭은 이렇다. 그림 그리는 용도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지고 수업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만지는 정도. 탭의 다양한 기능을 내가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 끝에 나도 키보드를 주문했다.



기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나는 초기화된 기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기본적인 기능만 사용한다. 그래서 쓰다가 알게 된다. '이런 기능도 있구나...' 반면 기계에 관심이 있는 형부는 기계를 사기 전부터 그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 안다. 이런 적이 있었다. 내가 사용하던 노트북 화면에 줄이 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줄이 늘어나 나는 노트북을 새로 사기로 결심했는데 그때 형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형부가 추천해 준 노트북을 사고 나자 형부는 전에 쓰던 것을 자기가 써도 되겠냐고 했다.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 같아 알겠다고 대답했다. 노트북을 형부에게 넘기자 형부는 즉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난 그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내가 여태까지 불편하게 여긴 것들을 다른 방법으로 편하게 사용하는 형부를 보았기 때문이다. 진작에 알아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기계도 지식이 많은 사람에겐 풍부한 기능을 제공한다. 반면 나 같은 사람에겐 소수의 몇몇 기능만 보여준다.  



과연 기계에만 이럴까. 삶에 있어 다양한 것들을 모르고 혹은 못 누리고 사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든 건 그 무렵이었다. 관심을 다양하게 두고, 더 욕심을 내면 인생이라는 것도 더 많은 재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초기화된 기능만 사용하는 사용자다. 인생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것만 누리는 여행자가 되기는 싫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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