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화된 기능만 사용하는 사용자

블루투스 키보드를 주문했다

by eolpit

ㅈ이 갤탭을 샀다고 이야기하면서 블루투스 키보드도 같이 말했다. 알고 보니 ㅈ과 나는 노트북, 핸드폰 그리고 갤탭 모두 같았다. 그와 다른 건 단 하나, 키보드. ㅈ은 키보드가 너무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차분한 이미지의 아이가 자기 돈을 모아 신중에 신중을 기해 산 탭과 키보드. 그래서 더 이야기를 흘겨 들을 수 없었다.



키보드를 사면 탭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까. 지금 나의 갤탭은 이렇다. 그림 그리는 용도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지고 수업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만지는 정도. 탭의 다양한 기능을 내가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 끝에 나도 키보드를 주문했다.



기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나는 초기화된 기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기본적인 기능만 사용한다. 그래서 쓰다가 알게 된다. '이런 기능도 있구나...' 반면 기계에 관심이 있는 형부는 기계를 사기 전부터 그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 안다. 이런 적이 있었다. 내가 사용하던 노트북 화면에 줄이 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줄이 늘어나 나는 노트북을 새로 사기로 결심했는데 그때 형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형부가 추천해 준 노트북을 사고 나자 형부는 전에 쓰던 것을 자기가 써도 되겠냐고 했다.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 같아 알겠다고 대답했다. 노트북을 형부에게 넘기자 형부는 즉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난 그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내가 여태까지 불편하게 여긴 것들을 다른 방법으로 편하게 사용하는 형부를 보았기 때문이다. 진작에 알아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기계도 지식이 많은 사람에겐 풍부한 기능을 제공한다. 반면 나 같은 사람에겐 소수의 몇몇 기능만 보여준다.



과연 기계에만 이럴까. 삶에 있어 다양한 것들을 모르고 혹은 못 누리고 사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든 건 그 무렵이었다. 관심을 다양하게 두고, 더 욕심을 내면 인생이라는 것도 더 많은 재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초기화된 기능만 사용하는 사용자다. 인생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것만 누리는 여행자가 되기는 싫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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