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알고 즐기는 럭셔리 호텔 투어편
호텔을 더 깊게 둘러볼 수 있는 호텔 투어가 있다. 보통 비즈니스 목적의 계약 또는 각종 연회를 준비하는 경우에 한해서 진행되는 투어라고 생각하지만, 호텔의 잠재적인 모든 게스트에게 오픈된 투어다. 가끔 주요 객실 몇 개만 슥 보여주고 끝나는 투어를 제공하는 호텔이 있긴 하지만, 이는 호텔 투어가 아닌 룸 투어다. 결론적으로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호텔 투어를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로비부터 꼭대기까지 객실, 식음 업장, 연회장, 심지어 층마다 다른 디자인의 화장실까지 구석구석 살펴보는 것이 바로 호텔 투어다. 주로 호텔 오픈 초기에 비중 있게 진행되며,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형태의 투어라 아는 사람들만 은밀하게 요청한다. 실제로 투어 하다 마음에 드는 가구나 조명을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문의하여 집에 들이는 게스트들이 존재한다. 길게는 1시간도 걸리는 이 투어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개인 도슨트와 함께 둘러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역시나 이 투어는 컨시어지 팀에서 가장 공들인다.
당시 내가 일하던 브랜드는 서울에 최초로 생기는 해외 럭셔리 브랜드로 내부적으로 호텔 투어에 각별히 신경 썼다. 호텔 기본 사양은 물론 어떤 디자이너, 업체, 브랜드가 참여했는지, 로비에서 나는 향은 무엇인지, 몇 층에 어떤 작가의 미술 작품이 설치되었는지 등 호텔이 세워지게 된 모든 디테일을 투어에 담아야 했다. 그리고 별을 많이 단 호텔일수록 객실 하나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는다. 즉, 볼거리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대체 얼마나 천문학적인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커플이 밤중에 말싸움이 격해져 객실에 비치된 가구 및 기물들을 집어던지며 싸운 적이 있었다. 당연히 게스트는 파손된 것들에 대한 배상을 해야 했고 배상금액은 수백 만원이 훌쩍 넘었다. 놀란 게스트는 금액이 너무 비싸다며 흥정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우리 모두 객실을 꼭 깨끗하고 소중하게 쓸 것을 명심하자.
기회가 된다면 전 세계에 분포된 해외 럭셔리 호텔 브랜드에 투숙하지 않더라도 시간 내어 가벼운 투어를 꼭 해보자. 본인이 좋아하는 브랜드라면 더 좋다. 같은 브랜드라 해서 도시마다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진 않다. 각 도시가 갖고 있는 고유한 특색들을 호텔 안팎의 디자인에 녹여냄으로써 같은 브랜드여도 도시마다 미묘하게 다른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광화문 사거리에 위치한 모 호텔의 경우, 건물 외벽의 창들을 옆에서 보면 겹겹이 쌓인 형태인데 이는 우리 전통 건축물의 지붕에 가지런히 얹힌 기와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이 건물의 외관을 보자면 윗부분이 점차 하늘로 솟는 곡선 모양인데 이것 역시 우리 한옥의 처마 곡선을 표현했다고 한다. 내부 역시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호텔 브랜드가 추구하는 절제된 럭셔리로 재해석하여 호텔 곳곳에서 그 즐거운 변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호텔의 주목적이 숙박이라 하지만, 이렇게 공들인 호텔들은 각 도시의 상징적인 랜드마크이자 하나의 작품이나 다름없다. 현대적인 해석으로 풀어낸 서울이 응축된 호텔 자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오픈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있었으면 한다. 안 그래도 최근에 새로 오픈한 럭셔리 호텔들이 꽤 있는데, 이런 호텔 투어를 제대로 준비할 계획은 없는지 묻고 싶다.
최근에 오픈한 A호텔도 럭셔리를 앞세워 화려하게 오픈했지만, 그 화려함을 게스트에게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호텔 투어가 없었다. 그 많던 미술 작품들을 그저 벽에 걸린 장식으로 두기에는 참 아까운데 말이다. 투숙하면서 가장 기대한 호텔투어였지만, 혼자 둘러보시면 된다는 친절한 안내가 어찌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결국 호텔 투어가 없다는 건 나의 브랜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게스트와 ‘가장 오랜 시간’ 닿을 수 있는 골든 모먼트를 자발적으로 잃은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