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신병에 대한 고찰
2025.11.27. 목 8:32
엄청 졸립다. 더 자고 싶다. 그러나 일어나야 한다. 아 그런데 너무 졸리다. 일곱 시간이 넘게 잤는데도 왜 이렇게 졸린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엔 반드시 엄마아빠와 아침 운동을 가기로 했는데. 꿈에서 계속 운동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고 깨질 못 했다. 어젯밤엔 내 뱃살 상태가 심각해졌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살면서 이렇게 살이 찐 적이 있던가, 없는 것 같다. 2020년쯤 이별 후의 나는 생각보다 행복했다. 그래서 많이 먹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인지 집에 많이 있어서 그런가 운동량이 현저히 적어졌다. 그래서 살면서 처음으로 50kg이라는 몸무게를 달성했다. 그땐 너무 놀라서 울었다. 그런데 한 번 50kg을 넘기고 나니 살이 빠졌다가도 50kg으로 돌아가는 게 무척 쉬워졌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히 그 숫자를 넘기고 있다. 인간의 몸이란 게 참 무섭다.
어제는 Hana라는 뮤지컬 동료를 만났다. 언니는 7년이나 미국에서 유학했다. 그때의 경험이 언니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 놓았는데, 특히 한국에선 다이어트에 대해 자꾸만 생각했다면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에선 오디션 서류 불합격이라는 게 없단다. 현장에 가면 무조건 오디션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알고보니 현장 대기가 많을 땐 못 보는 경우도 생기고 나름 복잡) 서류에 키는 작성하나 나이나 출신을 전혀 기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인종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서른다섯이 넘어간 시점부터는 서류에서부터 문턱을 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외국에 다녀 올 생각이 있다면 갔다 와야 한다고. 스물아홉 살에 하고 싶은 걸 다 하라고. 그 말에 나는 사실 조금 조급해졌다. 1년 안에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을 텐데 난 금방 서른 살이 될 텐데, 하고. 이 조급함은 내 주변 환경이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특수성 위에 세워진 것들이기 때문이겠다.
난 왜 자꾸 다이어트를 생각할까. (사실 운동은 하지도 않으면서) 어렸을 때부터 체형적으로 짧고 두꺼웠던 다리를 많이 원망했다. 키가 쑥쑥 자라다가 5학년때 멈춰버렸다. 상체가 먼저 자라고 다리가 자랄 차례인데, 내 다리가 성장판 닫히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던 것일까. 난 실제로 비슷한 키를 가진 사람보다도 다리가 훨씬 짧지만, 일반적으로 봤을 때도 웰시코기나 닥스훈트 못지않은 비율을 자랑한다. 종아리 알이 비대하게 툭 튀어나와서 내 별명은 '알수'였다. 내가 이 별명을 딱히 의식하거나 싫어하지 않았지만 내 종아리, 내 다리를 사랑한 적은 인생에서 단 한순간도 없다. 다리가 놀림감이 된 적도 많다. 고등학교 시절에 남자아이들이 내 다리가 닭다리 같다며 아쉽다고 했다. (니들이 왜 아쉬워) 난 꽤 오랜 시간 여성의 몸과 각선미의 중요성, 짧고 굵은 다리의 혐오에 노출된 채 살았다. 성인이 된 후엔 바로 종아리 보톡스라는 것을 맞아봤고 작년에도 두어 번 맞았는데, 결국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어 그만뒀다. 백만 원을 날렸다.
아빠는 60년대 초반 출생으로 다정한 면 이외에도 그 시절 어른의 어쩔 수 없는 보수적 시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형이나 시술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빠마저도 내가 종아리 보톡스를 맞는다고 했을 때 만류하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혼자서 속상함을 삼켰다고 한다. 각선미가 좋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아빠 저는 이번 겨울에 모발이식을 할 생각이 있답니다) 오늘 아침엔 내 몸을 돌아보는 건지 미워하는 건지 비난하는 건지 모를 모닝페이지를 작성하고 있다. 아침 운동을 다짐하고선 하질 못 했으니 자책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잘 모르겠다. 잠드는 시간을 조금 더 당겨봐야겠다.
아무튼간에 내가 이렇게 외모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의 폐단이겠으나, 한편으론 이 자극이 날 건강으로 이끈다면 반갑게 맞이하겠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내 몸을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어디에 살이 많아서, 다리가 짧고 굵어서, 목이 짧아서 이런 식으로 미워하기만 바빴다. Hana 언니의 말을 듣고는 꼭 미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 가면 내가 내 몸을 사랑할 수 있게 될까? 더 많이 도전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오디션 기회나 워크숍 수업 보다도 더 큰 끌어당김의 힘을 거기에서 느꼈다. 왠지 새로운 세상에 가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여기서 숱하게 내 나이와 몸매에 관해 고민할 때 그 시간을 더 사랑하고 더 내던지는 것에 쓸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사실 내 인바디를 봤을 때 나는 근육 허약형 마른 비만이기 때문에 운동을 꼭 해야 하는 것은 맞다. 내 종아리가 비대한 것도, 10Km를 뛰고 무릎이 나가 한동안 아팠던 것도 모두 허벅지 근육이 부족한 탓이겠다. 어깨가 말리고 휘는 것도 등 근육이 부족한 것이 이유겠지. 그렇다면 이제 나는 혐오스러운 내 몸이 싫어서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즐겁게 운동하는 쪽으로 방향을 만들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다이어트를 자꾸 떠올리기만 하면서 나를 미워하고 집착하는 게 아니라, 건강해지기 위해서 사랑하는 나 자신이 오늘 하루를 상쾌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려고 운동을 해야겠지.
모든 것은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 초등학교 입학식 날 교장선생님께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초등학교는 이것을 쌓는 곳입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정답을 맞힌 사람이 있다는 것을. … 기초… 8살의 나는 속삭였다. 여러분! 무엇일까요? '바로, 기초입니다' 기초를 잘 쌓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나는 정답을 맞혔다는 쾌감에 8살 입학식, 삼선초등학교의 강당 모습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살면서 어설프게 쌓은 기초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시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과하게 사랑하는 척했다. 하나의 방어기제.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줬지.) 그렇다면 산을 부수고 새로운 산을 건설해야 할까, 아니면 들뜬 부분을 살짝 도려내고 보수해야 할까. 새로운 산을 세우는 일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그렇다면 지나간 내 청소년 시절과 어제까지의 나를 지금의 내가 사랑하자. 사랑해 주자. 어제의 내가 어제의 나를 미워했다면 오늘의 내가 사랑해 주자.
나는 왜 자꾸만 다이어트를 생각했을까.
내가 나를 사랑해 준다면 조금은 다른 다이어트를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벗어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