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강아지를 키울 수 없는 이유에 관하여

어젯밤 기차 안에서 들었던 생각에 이어서

by 엄달님

2025.12.01. 월 8:47


대구에서 쓰는 모닝페이지. 며칠 미뤄서 오늘만큼은 미루지 않고 써야 했다. 그동안 쌓인 이야기가 있는데 글을 쓰지 않았어서 다시 한번 내 게으름을 반성한다. 새벽까지 채니와 수다를 떠느라고, 잠자는 공간의 중앙 한편을 떡 하니 차지한 강아지들의 권력에 새우처럼 웅크리느라고 제대로 잠을 잘 못 잤다. 오랜만에 꽤나 비몽사몽 한 채로 쓰는 모닝페이지. 벌써 12월이다.


이 집엔 심장이 아픈 개 한 마리와 그에게 의지하는 한 마리의 어린 강아지가 있다. 인기척을 느끼면 바로 달려가 짖는 두 마리 동물 때문에, 집 안 여기저기 널려있는 소리 나는 인형 때문에 이 집엔 도둑이 들기 어렵겠다. 살짝 움직이면 '삑', 살금살금 집어가려다 '삑' 창문을 조용히 드르륵 열려고 해도 왈왈왈 짖어대니까.


나는 언젠가부터 강아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강아지를 귀여워하지 않으면 곧바로 그 사람은 사이코패스라는 결론이 참인 명제에 도달하기 때문에 나는 늘 강아지를 좋아하는 척했다. 짖고, 물고, 챙겨주기만 해야 하는 존재를 무엇 때문에 당연하게 귀엽게 여겨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요리 보고 저리 봐도 도무지 귀엽지가 않은걸.


그런데 어느 날 친구네 집 강아지 자몽이를 산책시키고 나서 난 별안간 갑자기 어떻게 보면 싫어하던 강아지라는 존재에게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여기저기 냄새 맡을 것을 탐색하던 아이, 우리가 밤에 자리를 비우자 늦은 시간까지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 아이. 그 집에서 그날 하룻밤을 잤는데, 갑자기 새벽에 내 발치로 와서 온기를 나눠주던 아이. 난 분명 스무 살 때 너를 무척 무서워하고 사랑해 주지 못했단다. 네가 배 위로 뛰어들면 낯선 감촉에 무척 싫어했단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해 줄까? 조건 없이 왜 좋아해 줄까?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동물이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의 감동을. 이 집 강아지들 쿤이와 로띠도 순하고 착하고 또 사랑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그 사랑에 짧은 하룻밤이지만 내 마음이 충만해진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순한 강아지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대구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나태가 선물해 준 <긴긴밤>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직 완독 전이지만, 벌써부터 슬프다. 연대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인데 도대체 결말이 어떻게 날까 궁금하다. 오늘 하루 종일 연습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밤기차 안에서 나머지를 마저 읽을 것인데 어서 하루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 평소에는 사람에게 분노하고,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어제부터 동물이라는 개념이 내 맘 속에 와 박혀서 자꾸만 동물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 때문에 너무 불쌍하게 된 동물들, 인간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동물들, 자유로워지고 싶은 동물들.


그럼에도 나는 절대로 어떤 종이 됐든 간에 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다. 거대 거북이가 아닌 이상에서야 언젠가는 반드시 나보다 먼저 그를 떠나보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두려운 사람. 무서운 사람. 채니와 죽음에 관하여도 이야기를 나눴다. 스물두 살에 갑자기 처참한 사고로 죽어버린 친구 이야기, 스물여섯에 갑작스럽게 얻은 병으로 떠난 한 작가님의 이야기. 두 사람 모두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 극도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반면에 많은 죽음을 겪은 채니는 어찌 조금 의연해 보였다.


어제 기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표 예매가 늦어져 입석 표를 구매해야 했는데, 마침 간이석을 하나 잡아서 두 시간 반 내내 기차 창가 옆에서 살짝 쪼그린 채 앉아 창밖을 보면서 내려올 수 있었다. 붉은 석양이 지는 시간이었다. 집에서 할머니 생신 잔치(?) 점심식사를 가족들과 함께 하고 연습 일정 때문에 급하게 내려오는 길이었다. 작은 이모는 이번이 할머니의 온전한 정신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생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모일 수 있는 가족들은 북적북적 최대한 많이 모이고 상다리도 부러져라 음식을 차렸다. 케이크도 예쁘게 생화 꽃으로 준비하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폭죽이 터지듯 화려한 용돈박스도 준비했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은 화려하고 유쾌하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우울해졌다. 왠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살짝 시간이 지난 후 기차에선 슬퍼졌다. 하필이면 김동률의 'Replay'를 들었다. 붉게 지는 노을빛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니까 굉장히 사연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기차엔 실제로 누군가와의 이별 때문에 정신이 나간 채 우는 여자 한 명이 있었다.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나가야 할 시간이 된 줄도 몰랐네. 10분 안에 나갈 채비를 마쳐야 한다. 세수도 하고 좀 찍어 바르고 눈썹도 그리고 옷도 갈아입고. 아침을 못 먹게 됐구먼. 피임약도 까먹고 놓쳤다.

오늘은 생각 없이 내게 주어진 역할에 몰입해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겠다. 생각은 돌아가는 기차에서 좀 마저 해야겠다. 사실 알고 있다. 내가 한가해서, 집에 오래 있어서 고민이 깊어진다는 걸. 바쁘게 살아야 할 텐데.


우선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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