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계속 일하기로 했다.

15년 동안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이유

by Amazing 엄

2011년 3월,

첫 아이가 태어난 지 고작 100일 남짓.

1호선 전철 안, 출근길로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또 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열이 있어 아이도 나도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출산 휴가 후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차 쓰기가 눈치 보여 아픈 아이를 어쩔 수 없이 해열제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야 되어

참 미안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 혼자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양가의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출근한다고 우리 가족의 삶이 크게 윤택해질 정도로 벌이가 괜찮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남편이 일을 한다고 인정하기보다는 늘 엄마로서 부족함을 지적받았던 시기였다.


회사에서는

100일 밖에 안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한 나에게

어김없이 비슷한 질문을 하며, 내 마음에 비수를 꽂기 시작했다.


"아이는 누가 봐줘요?"

"아~ 아이를 벌써 어린이집에 보낸다고요?"

"남편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하셨죠?"

"사는 동네가 어디라고 했죠?"


어린아이를 두고 출근하니,

갑자기 내 호구조사까지 하며

어쩔 수 없이 돈 벌러 온 여자구나로 판단해 버렸다.


더 상처가 되었던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왜가 아닌 "아~" 이해의 반응이 나왔을 때였다.


이때 나는 아이가 빨리 크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야 내가 일을 계속하는 진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듯했다.


내가 계속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생활을 위해 필요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를 낳기 전,

그래도 일을 좀 잘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 인정과 성취의 순간들이

내 삶을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이 말을 공감해 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 어린아이를 두고 출근한 나는

내가 진짜 일하는 이유와 상관없이,

마치 소년소녀가장처럼 돈 벌러 나온 안쓰러운 여자에 불과했다.


어느덧,

빨리 크기만 바라던 아이는 16살이 될 만큼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누구도 아이를 두고 회사를 나온다고

안쓰럽게, 애처롭게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커리어를 유지한 나를 보며

부러워한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맞벌이를 하며 악착같이 아껴 모은 덕에

이제는 나름의 자산도 쌓였고,

남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되어 있었다.


나도 불과 얼마 전까지 몰랐다.

버티고 버텼더니,

모든 걸 인정받는 시기가 올지.


그래서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나처럼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하는 워킹맘들에게

조금만(?) 아닌 계속 버티다 보면

언젠간 나처럼 웃으며 지난 힘든 일들을 영웅담 마냥 말할 날이 올 거라는 걸 전해주고 싶었다.


물론 내 아이를 남부럽게, 대단하게 키워

"이렇게 키우세요"라고 말할 만큼 자랑할 거리는 없다.


다만, 나처럼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버티다 보니 그 버티는 힘이 능력이 되는 순간이 온다고.


나는 지금의 워킹맘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매일 울면서 출근하던 그 하루하루가,
결국 지금의 단단하고 찬란한 나를 만들어줄 줄은.
눈물로 버틴 시간은 결국 나를 빛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