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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Dec 29. 2020

소소한 나의 수집품들

버리지 못해서 모으는 것들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주의-혹은 사상’에 경도되어 그것을 추구해 갈 열정이 나에겐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떠한 주의자도 되지 못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 않지만, 다른 집에는 당연히 있는 것들이 우리 집에는 없는 것들이 있다. 청소기, 마이크로 웨이브, 선풍기, 에어컨과 헤어드라이어가 없다. 청소기 대신 밀대로 청소를 하고, 냉동음식을 잘 먹지 않아서 마이크로 웨이브를 쓸 일이 없다. 음식을 데워야 하면 밥통을 쓰고, 여기서 선풍기가 필요한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붙박이장이 있어서 옷장과 서랍장도 없다. 집에 있는 가구는 소파, 침대, 6인용 식탁 세트, 책꽂이 네 개, 화장대, 경첩이 달린 한국 함 정도이다. 그래서 집이 휑하다.


하우스메이트와 같이 사용하는 냉장고는 제일 위칸은 비어 있고 중간의 한 칸과 야채칸 하나만 쓴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다 열거할 수 있고, 가끔 냉장고 파먹기를 해서 냉장고를 비운다.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못 되는 이유는, 쓸데없는 것들을 모으기 때문이다.


처음 모으기 시작한 것은 책이었다. 중학생 때 용돈으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삼중당 문고에서 나온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처음 구입한 이래로 돈이 생기면 책을 샀다. 사고 싶은 책은 많은데 항상 돈은 모자라서, 새 책도 사고, 헌 책방을 뒤져서 더 이상 출판되지 않는 책들을 보물 찾기처럼 뒤져서 사고 모았다.  

 

방의 한 면을 책으로 쌓아서 채워가면 뿌듯했는데 이민 오면서 책을 가져올 수 없어서 처분했다. 100권 넘게 모았던 삼중당 문고가 제일 가치가 없어서 고물상으로 갔고, 남은 책의 반쯤은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의미로 책값의 10% 정도만 받고 팔아서 헌금하고, 나머지는 도서관에 기증했다. 가져온 책은 선물로 받은 한 권이 전부였다.


지금도 가끔 책을 사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갖게 되는 책들이 좀 있지만, 더 이상 열심히 책을 모으지는 않는다.


어쩌다 모은 것은 그림엽서다. 옛날에는 편지도 많이 썼지만 엽서를 많이 써서 보냈다. 관제엽서에 그림을 그려서 보내기도 하고, 예쁜 그림엽서만 보면 사모아서 그중에 예쁜 것을 골라 보내는 데 사용했다. 그러고도 남은 엽서가 신발 상자 하나 가득이다. 요즘은 예전만큼 사 모으지는 않지만, 여행을 갔다가 기프트샵에서 예쁜 엽서를 보면 기념으로 사 오기도 한다.  


버리지 못해서 남은 또 다른 수집품은 여행에서 생긴 것들이다. 비행기 티켓, 관광지의 무료 지도, 박물관이나 미술관 입장권, 버스 티켓, 식당 영수증까지 챙겨 와서 모아놓은 것이 박스 한가득이다.

 

여행에서 쓰다 남았지만 다시 환전을 못해 그냥 가지고 온 화폐와 동전도 있다. 심심할 때 지갑 안의 동전을 털어서 살펴보면 가끔 미국 동전이 있으면 그것도 따로 모아 두고, 캐나다 동전 중에서 올림픽 같은 행사를 기념해서 특별 발행한 동전도 모아둔다. 미국 갈 때나 가끔 동전이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다 낡아서 너덜거리는 한국의 백 원짜리 지폐, 오원 짜리 와 일원 짜리 동전도 하나씩 있고, 예전에 쓰던 버스 토큰도 있다.



제대로 된 반지는 하나도 없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때 사용하던 배지도 있고, 졸업반지도 아직 가지고 있고, 한국 직장의 명패와 명함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

 

나의 수집품은 버리지 못해서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을 버리고 못하고 쌓아두고 살게 된다. 정리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면 그것은 언젠가는 버려야 할 쓰레기가 되지만, 잘 정리해 두면, 내 과거의 삶을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수집품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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