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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Jun 08. 2021

푸콘에서 보내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파타고니아 다이어리 2017 #13

푸콘 Pucon


발디비아에서 푸콘까지는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렸고, 9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예약해 둔 숙소가 버스 터미널에서 네 블록 정도 떨어진 곳이라 오래 걷지 않고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서 중앙광장에서 하는 찬양집회 소리가 들렸다. 가끔 아는 찬양도 들을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칠레는 가톨릭이 다수인 것으로 아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 도시 중앙광장에서 찬양집회를 하는 걸 보니 개신교도 있는 모양이다. 방은 이층이었고 발코니로 나가면 비야리까 Villarrica 화산이 보인다. 이 방을 잡은 이유가 발코니가 있고 발코니에서 화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Villarrica Mt. from Pucon downtown


12월 24일


오늘은 일요일이고 또 크리스마스이브라  연휴인 셈이다. 남미는 여름이라서 흔히 생각하는 겨울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아니기는 하지만, 여기도 크리스마스 특유의 휴일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얼마나 오래 푸콘에 있을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당일에 어디로 움직이기는 그래서 여기서 사흘을 보낼 생각을 하고 왔다. 그런데 뭘 할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 알아볼 생각이었다. 일요일은 아침 식사가 8시 30분부터라고 해서 거의 브런치 수준으로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시내 구경을 나섰다.


숙소 바로 건너편에 여행사가 있길래 들어가서 비야리까 화산 등산 투어에 대해 물어보았다. 지금은 날씨가 안 좋아서 올라갈 수 없고 27일이나 되어야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게다가 27일에는 예약이 모두 찼다고 했다. 그럼 다른 여행사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그 여행사로 찾아갔는데 거기도 27일 예약이 거의 차 간다고 했다. 날씨가 나쁘면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듣고 자리가 차기 전에 예약을 하기로 했다. 칠레 페소가 없다고 했더니 26일에 장비를 고르러 갈 때 내도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틀을 기다렸는데 날씨가 안 좋으면 못 올라가게 될 수도 있지만, 산티아고에 빨리 가야 할 이유도 없으니 어쨌든 하루 더 머물면서 화산을 올라갈 수 있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숙소를 하루 연장하려고 했더니 예약이 다 차서 연장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근처의 다른 숙소를 찾아서 옮기기로 했다. 어차피 옮길 거면 미리 옮기는 것이 나을 거 같아서 데스크에 내려가 하루 일찍 체크아웃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고 맙게도 그렇게 해주겠다고 해서 하루치는 환불을 받고 다른 숙소에 이틀을 예약했다. 새로 예약한 숙소는 호스텔이라 가격이 많이 싼 편이라 화산 뷰의 발코니를 포기하는 대신 비용은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여행 안내소를 찾아가서 뭘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래프팅을 가거나 온천을 갈 수가 있다고 한다. 래프팅은 너무 터프한 것 같고 쉴 겸 온천이나 다녀와야 할 거 같다. 예약하느라 하루가 다 지나가 버렸다. 

오후에는 주택가 뒤쪽으로 비야리카 호수에 다녀왔다. 비야리카 호수는 바릴로체 호수만큼 커지는 않았다. 

Lake Villarrica

12월 25일


오늘은 크리스마스라 아침 식사가 9시부터라고 해서 여유롭게 가방을 싸놓고 내려가서 아침을 먹었다. 어제보다는 손님들이 많아서 테이블을 혼자 차지할 수가 없어서 독일에서 온 여자분과 파나마에서 온 자매랑 합석해서 아침을 먹었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러 온 사람들이었다.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여행 중이라 해도 할 일 없이 방구석에 처박혀 뒹굴거리고 싶어지는 날씨인데, 비를 맞으며 가방을 끌고 새 숙소를 찾아가고 있었다.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가방만 맡겨놓고 다시 나와서 중심가를 어슬렁거렸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걷다가 엘 찰텐에서 바릴로체까지 같이 버스를 타고 갔던 한국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한국 아저씨가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대화에 끼어드셨다. 외국에 나오면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가운 법인가 보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퇴직하고 네 달 계획으로 남미 여행 중인데 이제 한 달 남았다는 것이 길에 잠시 서서 이야기하는 동안 들은 TMI이다. 나이가 많이 지면 내세울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체크인 시간이 되어 다시 호스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오랜만에 컵라면을 점심으로 먹었다. 새로 잡은 숙소는 일본식 캡슐 호텔처럼 방이 침대 하나로 꽉 찼고 바로 지붕 밑이라 층고가 낮았지만, 위로 열리는 창이 있어서 밤에는 하늘을 볼 수 있었고 호스텔이라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는 시설도 있고 가격이 훨씬 쌌다. 화산 뷰의 발코니는 포기했지만 여러 가지로 꽤 괜찮은 숙소였다. 사실 화산은 시내의 어디서나 보였기 때문에 화산 뷰의 발코니가 아쉽지는 않았다.


오후에는 원주민 마을인 마푸체 Mapuche에 가보기로 했다. 로컬 버스를 타는 것이 좀 어려울 것 같았지만, 무사히 버스를 탔다. 옆에 앉아 있던 칠레 여자분이 내게 영어로 말을 걸어서 잠시 이야기를 했다. 뒷 좌석에는 독일 여자 둘이 앉아 있었는데 옆의 칠레 여자가 우리에게 마푸레 마을을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마을의 도착해서 그 여자분이 우리를 데리고 마을을 구경시켜주고 그 마을의 유일한 투어가이드라는 사람을 불러 그 사람 차를 타고 가서 나무로 만든 옛날 다리도 구경하고 폭포 구경도 했다. 박물관이 있다고 했는데 크리스마스라 휴관이라 구경은 못했다. 박물관 아니면 딱히 가볼 곳이 없을 것 같은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그들의 순수한 호의 덕분에 걸어서 갈 수 없는 곳을 가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이런 게 뜻밖의 행운(세렌디피티)!


그 여자분이 한다는 식당에서 맥주를 마셨다. 파타고니아에서 올라오고 있어서 여기는 날씨가 많이 덥다. 돌아오는 버스 시간에 맞춰 식당을 나와 버스를 탔다. 갈 때는 큰 버스였는데 돌아오는 버스는 합승 차만 한 작은 버스인데 사람이 꽉 채워서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돌아왔다. 

Mapuche village

크리스마스라 열린 식당도 없는데 다행히 푸드코드는 열려 있어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서 돌아와서  크리스마스 저녁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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