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지구가 아니라 우주에 살고 있다
우주는 고요하다.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인 공기가 없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공간은 온갖 대화로 가득 차 있다.
성대의 떨림으로 생긴 음파를 가까운 곳에 있는 상대의 고막까지 전달해 주는 공기가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 캡처, <고요의 바다> 메인 예고편 중에서
달 표면에 있는 발해 기지가 주 무대인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어쩌면 그래서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조금 고요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들은 대부분 지구와 달 사이 중간 어딘가에서 우주 유영하듯이 놓여 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지구와 과거로부터 가져와 숨기고 있는 이야기들이 극 전개의 긴장감을 극적으로 몰아주지도 않을뿐더러 인물들 간의 정서적, 감정적 교류도 막고 있다. 마치 기지에 머물고 있는 그들 사이에는 공기가 없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새롭게 시도되는 SF 장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우주라는 무한의 공간 대신 발해 기지라는 폐쇄된 공간을 주 무대로 택하면서 이색적인 긴장감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SF가 주된 미스터리 스릴러물로는 우주에 대한 경외와 공포가 많이 빠져있다. 폐쇄된 공간, 물, 지하 공간, 어둠 그리고 고요에 대한 공포는 지구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스크린 캡처, <고요의 바다> 메인 예고편 중에서
드라마는 중간중간 짧게 짧게 미래에 대두될 이슈들을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수자원 확보, 생명 윤리, 리더로서의 책임과 자질, 정부의 무책임함, 기업의 무자비한 이윤 추구 활동, 사회적 불평등 심화 등등. 핵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 있었을까? 무엇을 문제 삼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에게 <고요한 바다>는 SF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 어쩌면 지구 위에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간직하고 마주한 현재와 미래가 중심이 된 이야기들의 영화일 수도 있다.
IMDb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등의 부정적이거나 애매모호한 의견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장르라는 점에서 분명 시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에 올라온 공식 예고편 영상에 달린 댓글들 중 개봉 이후에 올라온 최신 댓글들을 살펴보면, 대작이나 명작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시청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들이 많이 보였다.
<고요의 바다>는 관객들에게 속 시원한 해결이나 결말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아니다.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마지막까지 고요하게 질문들을 던져준다. 거의 매 에피소드마다 중간중간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미장센이 자주 연출하면서 마치 비슷한 질문을 계속 우리에게 던져주는 듯하면서.
지구, 달, 그리고 우주 그리고 그 안의 우리는 각각 빛과 어둠 어느 쪽에 더 속하는 걸까?
이에 반해 생명체들이 숨 쉬는 공기가 존재하는 지구 위를 무대로 한 <돈 룩 업>은 다양한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스틸 사진 같은 영상컷들이 짧게 짧게 흘러가는 순간들조차도 침묵이 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크린 캡처, <돈 룩 업> 메인 예고편 중에서
스크린 캡처, <돈 룩 업> 메인 예고편 중에서
스크린 캡처, <돈 룩 업> 메인 예고편 중에서
정치가 어떻게 인류의 이성과 역사를 망치는지를 풍자한다고 하지만, 영화 속 소리들은 조금 어렵다. 미국 사회와 문화를 깊숙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더 흥미롭고 제대로 알아들 수 있는 소리들이기에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다. 알아듣더라도 입장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은지라 다시 또 어려워진다.
스크린 캡처, <돈 룩 업> 메인 예고편 중에서
스크린 캡처, <돈 룩 업> 메인 예고편 중에서
번역가 황석희 님의 번역은 재치가 있고 한국 관객들을 배려한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미국 상호를 동일한 역할의 익숙한 미국 상호로 자연스럽게 바꾸기도 한다. 그 누구도 황석희 님보다 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막이 전할 수 있는 소리에 정치, 사회, 문화를 반영하기에는 그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다. 자막 이해가 아닌 연출과 연기 이해를 통해 풍자들에 깊게 들어갈 수 없다면, 영화는 관객 입장에서 난폭하고 기괴해져 버린다. 그래서 어려우면서도 아쉬운 영화이다.
<돈 룩 업>은 또한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폭력성과 선정성이 높고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재미있어지는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Family Guy>가 자꾸 연상이 되었던 것은 왜일까? 각종 풍자나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 노래가 <Family Guy>의 높은 표현 수위와 패러디 노래 구조를 떠올리게 만들어서였을까? 그리고 온갖 막장 환장 파티 속에서도 미국이 결국에는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또한 일부 국가 사람들에게는 풍자 내용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주연 이외의 화려한 출연진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고 보는 반응들이 많지만, 전체적인 편집이나 교차 편집, 카메라 촬영 테크닉만은 감독 특유의 역량이 전작들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탁월하다. 미국의 가족 시스템과 가치를 보고 싶어 할 경우에는 <보이후드>라는 영화를 추천했다면, 미국의 정치, 사회 시스템과 가치를 분석하듯이 보고 싶을 경우라면 이 <돈 룩 업>을 추천하겠다.
이번 크리스마스 주말에 본 <고요의 바다>와 <돈 룩 업>은 북극 한파가 몰아친 바깥 날씨를 피할 수 있는 좋은 구제책이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영상 콘텐츠의 무한한 가능성과 애덤 맥케이 감독 특유의 탄탄한 연출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들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도 그 두 드라마와 영화는 관객들에게 '우리는 지구가 아니라 우주에 살고 있는 존재'임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점에서도 서로 잘 맞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