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제도화된 권력은 학과장이 된 산드라 오에게 득일까 독일까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미국의 한 유명 사립대학교에 재직 중인 지윤 킴 (산드로 오) 영문학 교수가 신임 학과장이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다룬 6부작 시즌제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 각 에피소드가 30분 남짓하니 산드라 오의 연기 매력을 쉽고 빠르게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는 드라마로 대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여성 교수의 관점으로 코믹하게 풀어낸 프레임이 개인적으로는 참신하고 재미났다.
아마도 몇몇 교수님들이나 대학원생들의 대화 형식 감상 후기가 이 블로그 감상평과 비슷한 내용으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지 않을까 싶다.
학과 역사상 최초로 여성 학과장의 등장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내가 이 드라마를 통해 재미와 공감을 느끼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본 것이 바로 여성이 학과장이 되었을 때의 주변 환경과 반응들인데, 그 부분들을 나름 세심하고 현실적으로 잘 연출하고 연기했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내볼까 한다.
학과장이 '더 헤드' (The Head)가 아니라 '더 체어' (The Chair)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학과장인 산드라 오와 같은 과 동료 교수인 빌
일부 사립대학교들 같으면 학과장을 간단히 '체어'라고 많이 부른다. 또 일부 공립이나 주립대학교들에서는 '헤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학교마다 다르기도 하다. 뭐가 다르고 왜 '체어'일까?
'더 체어'는 Chiarman 혹은 Chairperson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성별에 중립적인 표현이라 널리 사용이 된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체어라고 하면 학과 내 임기제 선출직에 가까운 느낌이기도 들고, 더 헤드는 총장 임명직에 같은 뉘앙스가 강하다. 드라마에서 보다시피 테뉴어를 받은 중견 교수가 학과장을 맡는 편인데, 해당 펨브로크 대학교 영문학과 내 교수들이 자체적으로 회의와 투표 등으로 보다 간편하게 선출하거나 퇴출한다. 통상 3년 주기의 임기제가 많은 편이고 (학과 내 중진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학과장이기는 하지만 중간 관리자 역할을 더 많이 기대하는 편이기도 하다.
우리 학교나 학과 같으면 학과장을 '헤드'라고 부르는데, 학과 내외의 다양한 계층의 청문 및 면접 절차를 걸쳐 학과장으로 총장에게 추천이 되고 임명권을 가진 총장은 신임을 한다. 체어와 공통적으로 행정적인 임무가 주어지지만, 함께 좀 더 강한 권한들도 주어지는 편이다. 그리고 보통 체어보다는 임기가 1,2년 더 긴 편이라고도 한다. 우리 학과나 다른 학과들을 봐도 헤드라고 불리는 학과장들 중에서 중진 교수 이상의 사람들이 많다.
산드라 오가 연기한 한국계 미국인 교수 지윤 킴의 경우, 체어라는 점에 주목을 해보자. 공식적으로는 학과를 대표하며 소속 선후배 교수들을 이끄는 선장이지만, 권한보다 의무와 중간 관리자 역할이 더 기대되고 부여받으면서 오는 각종 역할 갈등과 혼란이 왜 이야기들의 중심이 되는지를 알 수 있다.
평판을 위해 제도화된 권력들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학과장 이상의 보직 교수 자리들은 학교 안팎으로 정치적인 자리가 된다. 그리고 문제를 만들어서 학과와 학교의 평판이 깎이면 안 되고, 평판을 키워야 하는 자리이다. 그러니까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자질들 중 하나가 된다. 학장의 경우, 교수들이 가져오는 학교의 평판과 이미지에 대한 관리를 각 학과장들에게 압박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학장이 교수 사회의 주류로 대표되는 백인 남성 교수의 이미지와 잘 부합하는 자리로 학계나 학교가 백인 남성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권력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연구 중심 대학들에서 교수들에게 요구하는 업무들을 중요도 순으로 정리를 해보면, 연구, 행정 및 학술 서비스, 그리고 강의가 된다. 요즘은 또 강의 능력도 점점 중시되고 있지만, 적어도 채용 절차를 지나면 강의능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테뉴어를 받고 더 이상 강의에 큰 열정과 정성을 쏟지 않고, 학생들의 강의평가조차 불태우며 무시해 버리는 일부 교수들의 권력이 테뉴어라는 이름으로 코믹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학문의 변화 그리고 정체된 지식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정년 심사 혹은 종신 고용 심사라고도 하는 테뉴어 심사가 진행 중인 영문학과 조교수의 수업에 잠시 들어가 수강생들의 조별 과제 발표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누군가에게는 충격이다. 영문학만 하더라도 지난 30년간 디지털 인문학 등 수많은 새로운 이론들도 나왔고, 교수법들도 새로워졌다. 하지만, 학문적 소신을 고집하는 누군가에게는 그 변화가 생경스럽고 달갑지만은 않다. 깊이 있는 배움보다 즉흥적인 즐거움만을 쫓는 모습이 적잖이 당황스럽다. '라떼랑' 비교를 해도 학생들이 길게 쓰지도 길게 읽지도 않으려 한다.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배경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코로나 등로 인해 가속화된 위기의 인문학, 드라마에서는 그중에서도 영문학과가 가운데에 있다. 그중에서도 노년에 접어든 교수들에게는 더욱 큰 위기이다. 대학교라는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높은 연봉을 받는 정교수들의 강의들이 수강생들에게는 외면받는 모습을 보면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때 학계를 주름 잡고 유명 저서들을 집필했으며 이미 테뉴어를 받은 교수들을 함부로 퇴직시킬 수도 없다.
드라마에서 나온 강한 압박들을 암묵적으로 장치화한 대학교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도 일부 정교수들을 박사생들 지도에서 배제시키거나 회의나 정보 공유 등에서 소외를 시키는 등의 압박으로 자체적으로 퇴임을 압박하기도 한다.
평등 고용의 허상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북미의 대다수 대학교들이 얼굴마담 노릇을 위해서라도 유색 인종 여성 교수 채용에 다들 열을 올리고 있다. Black Lives Matter 등과 관련해서 더욱 흑인 사회와 문화에 대한 연구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고, 덕분에 Black Studies 관련 여성 연구자라면 유명 대학교들에서 온 복수의 제안을 두고 고민 중에 있을 정도로 관련 전공 여성 연구자들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테뉴어 심사, 배우자 고용, 연봉 체계에서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기도 하다. 드라마는 여성 교수의 입장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학계에 만연했던 그리고 여전히 공공연한 학계 내 백인 남성 교수 중심의 대학 사회와 여성차별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드라마에서도 그려진 것처럼 테뉴어를 받았던 남성 교수와는 반대로 함께 조교수로 고용되었던 그의 아내는 양립할 수 없던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가정을 택했고 결국은 테뉴어 심사에서 탈락을 했던 일도 실제로는 최근까지도 종종 있었다. 교수 임용후보자로 선정이 되면 배우자의 고용도 함께 협상을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의 경우 예전 약혼자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약혼자가 교수로 임용되면서 해당 대학 측이 배우자 고용으로 주인공에게 비정규직 강사 자리를 제안했음에 기인한다. 사실, 티칭 로드 (teaching load)라고 해서 보통 한 학기에 최소한 2과목 정도가 연구 중심 대학교에 소속된 정규직 교수들에게 할당된 강의 업무라면 (총 1년에 4과목), 한 학기에 3,4 과목은 강사라고 하더라도 저임금이고 과중한 강의 업무라고 여긴다. 그래서 떨어져 지내다가 멀어진 케이스인데, 이 역시도 학계에 좀 흔한 일이기도 하다. 남편은 중부 한 대학교에서 아내는 동부 한 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부부도 본 적이 있다. 간혹 떨어져 지내는 생활이 힘들게 되면, 둘 중 한 사람이 포기를 하거나 두 사람 다 관두고 함께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도 한다.
교수도 결국은 대학교의 직원이다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학과장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늘어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들도 늘어난다. 학과장이지만, 학장이나 총장 그리고 이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어정쩡한 중간관리자의 자리이기도 하다.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체어라고 불리는 학과장이 막강하고 좋은 자리라면 서로 차지하려고 난리일 테이지만, 서로 맡기를 꺼려 하는 일종의 폭탄 같은 자리이기도 하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들고 있을 때 터지라고 있는 폭탄" 같은 자리처럼 그려지고 있다. 행정적으로는 승진이라고 포장을 하지만, 온갖 하기 싫고 부담스러운 일들도 도맡아서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대학교들에서는 보통 테뉴어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중진 교수들이 맡는 편이다. 대물림하듯이 다음 차례의 후배 교수에게 물려주는 자리라고 하는 편이 적합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많이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학과장들은 학생들도 많이 봐야 한다. 생각보다 매년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서 우는지 모른다.
스캔들의 사회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교수도 사람인지라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논란의 중심이 된다. 지도 잘 안 하는 교수, 제자나 비서 또는 동료들과 성추문을 일으킨 교수, 학문적 윤리를 위반하거나 공금을 유용하는 교수 등등. 특히 남성 교수라면 여학생이나 여성 동료와의 관계에서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심각하게 문제를 일으킨 교수는 학교 측에서 복잡한 소송으로 가기 전에 자진 퇴임과 함께 그에 따른 보상이 포함된 협상안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내막은 양측이 함구하는 조항을 꼭 넣는다. 어떻게 되었든 스캔들을 일으키고 퇴임을 한다면, 보통 다시 학계에서 활동을 하기가 많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좁은 학계와 대학교에서 스캔들 그리고 가십이 무시 못 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생산, 재생산되는 사회이기에.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김씨네 편의점> (Kim's Convenience) 분위기와 비슷하게 미국계 한국인 커뮤니티 모습도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적인 시선으로 가십이 생산되고 오가는 대화들도 한국어로 들어볼 수 있다. 한국어 대사들이나 재미(在美) 한국인 사회 연출이 조금은 어색할 수 있지만,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시즌 2를 기다리며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더 체어> 공식 예고편 영상 중에서
종종 자기주장이 확실해야 하는 사회에서 오가는 말투들이 종종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당사자들에게는 듣고 이해하고 그만일 일종의 열린 토론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동료 교수들 사이라면 다들 각자 바쁜 사람들이고 건설적인 피드백이라면 주저 없이 주는 편이기에 그렇게 비칠 수 있다. 실제로 대학교에 있으면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어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대학원생, 연구자, 교수 등 학계에 발을 살짝이라도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여러모로 유익하고 재미있을 드라마이다. 특히 똑! 부러지는 발성과 대사 전달력을 바탕으로 한 산드라 오의 다양한 감정선이 두드러지는 연기력이 더 남을 드라마 <더 체어>. 다음 시즌에서는 주인공이 어떻게 다양한 갈등들을 수습하고, 어떤 식으로 학내에서 관습화되고 시스템화 된 백인 남성 중심 권력 사회에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그녀의 유쾌한 도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