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맛
김치가 생각날 때마다 쏨땀somtam을 먹었다. 쏨땀은 아삭한 식감과 짭조름한 감칠맛이 일품인 태국식 샐러드로 일명 ‘파파야 무침’으로 통한다. 태국 동북부 이싼(I-San)지방의 전통음식이지만 오늘날 타이 전역에서 즐겨 먹는 대중 음식으로 발전하였다. 처음 쏨땀에 끌린 건 그것 특유의 꼬릿한 향 때문이었다. 어딘지 갓 담근 김치가 떠오르는 비주얼도 곧바로 침샘을 자극했다. 그러고 보니 파파야 생긴 것도 꼭 ‘무채’스럽다.
쏨땀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덜 익은 어린 파파야를 준비한다. 껍질을 벗겨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착착착’ 채 썰어 모으면 일단 반은 끝. 다음은 소스다. 피키누는 태국 고추로 매운 향이 일품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 절구통에 피키누, 마늘, 마른 새우, 토마토를 넣고 살살 빻는다. 설탕과 피쉬소스는 기호에 맞게 적당량을 흩뿌린다. 쏨땀 특유의 꼬릿함은 태국식 피쉬소스에 있었으니, 피쉬는 곧 생선, 그러니 우리네 까나리액젓을 떠올리면 되겠다. 그렇게 완성된 엑기스에 미리 준비한 채 썬 파파야를 넣고 절구질로 ‘살살’ 빻아, 아니 ‘슬슬’ 보듬어준다. 양념이 적당히 베일 때까지 그리 많은 시간은 필요치 않다. 그리고 마지막 라임 한 조각의 화룡점정! 더해진 향긋함에 비로소 쏨땀은 완성된다.
한 젓가락 살짝 집어 입에 가져가면 어린 파파야의 파릇한 식감은 차지고, 짭조름한 감칠맛은 씹을수록 옹골차다. 적당히 매콤 짭짤하면서 은은히 퍼지는 새콤함은 침샘을 자극한다. 단단하게 매인 고무패킹도 스르르 긴장을 놓고 입안으로 거대한 침이 방류된다. 도시가 바뀔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동네 시장을 찾는 거였다. 그곳의 쏨땀집을 고루 탐방하고 최고의 맛을 찾는 것은 당일에 당면한 숙제였다. 구석구석 꼼꼼히 뒤져 제일 맛있는(입맛에 맞는) 그 집을 찾아냈다. 간단한 레시피에 무슨 비법이 존재할까 싶지만 이상하게 집집마다, 혹은 만드는 사람마다 쏨땀의 맛은 천차만별이었다.
태국 방콕의 게스트하우스 골목, 그곳의 노상에 쏨땀 파는 여인이 있다. 오직 한 가지 메뉴는 그 전문성을 이야기하기보다 어쨌든 열악함이 먼저 생각나는 그런 곳이다. 여인은 행동도 굼뜨기 그지없다. ‘세월’이 파파야를 썰고 ‘네월’이 탕탕 절구질을 지속하면 기다림의 끝에 쏨땀 한 무더기가 싸구려 플라스틱 접시 위로 쏟아진다. 여인의 왜소한 몸집도 그녀의 큰손 앞에 어깨를 쫙 핀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그 맛은 그 여인의 성품일 것만 같다. 오는 길에 따끈하니 차진 밥 한 주먹(카우니야우)을 사들고 온 참이다. 양념이 적당히 벤 돼지고기 꼬치도 자그마치 세 가닥이나 손에 들었다. 여기에 여인의 쏨땀이 더해지니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은 여행의 만찬이다. 혀끝의 트리플 크라운이 비로소 달성된다. 어디선가 꺄꺄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때마다 쏨땀을 먹었다. 그리고 이제는 쏨땀이 생각날 때마다 김치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