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같은 이모가 있다.

태국 치앙칸 '딸랏싸오(아침시장)'

by 엄용선
치앙칸(4).jpg 치앙칸 Chiang Khan, Thailand ⓒ 엄용선


채 여명이 밝아 오기 전, 밤새 닫힌 문을 활짝 열고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퉁퉁한 눈빛으로, 그리고 여전히 잠겨있는 목소리로 ‘사와디캅, 사와디카’ 특유의 아침인사를 건네 올 때면 나는 또 그들과 함께하는 이곳의 아침이 조금은 낯설지 않다. 조용히 일상을 이어가는 마을 사람들, 새벽의 치앙칸은 벌써부터 분주하게 꿈틀대고 있다.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를 나서 본다. ‘끼익-’ 열리는 문틈으로 빠끔히 드러난 세상은 아직은 고요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덩치가 제법 큰 누렁 개 한 마리가 떡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마주하는 시선에서 까닭 모를 견제가 오고 간다. 긴장감에 발끝이 얼어붙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렁이는 무심한 듯 시선을 거두더니 어슬렁어슬렁 길 끝으로 멀어진다. 오늘 따라 유난히 실룩대는 궁둥이다.

“사와디캅-” 안도의 한숨에 돌아보면 난닝구 차림의 주인아저씨가 빗질을 멈추고 아침 인사를 건네 온다. 예의 그 수줍은 미소도 여전하다.

“사와디카-” 와이자 합장(Wai인사)을 대신한 미소는 분명 어벙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테다. 딱 거기까지다. 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내가 영어를 할 줄 모르시는 아저씨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한계!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사와디캅, 사와디카’ 인사만 나누었다. 단순한 말 한마디는 많은 의미를 포용한다. 좀 전의 ‘사와디캅, 사와디카’는 ‘괜찮아요?’와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를 대변하는 말이다.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슝-’하고 지나간다. 이른 새벽, 어딜 그리 바지런히 다녀오는지 뒤로는 짐이 벌써 한 가득 이다. 여자의 긴 머리가 ‘휙-’하고 흩날리면 어디선가 ‘훅-’하고 바람이 불어온다. 길 끝으로 멀어진 그녀의 뒷모습은 누렁이의 ‘씰룩’과는 정 반대의 전광석화다.



시장.JPG 치앙칸 Chiang Khan, Thailand ⓒ 엄용선



시장은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한 이곳 치앙칸에서 유일하게 번잡하니 활기 넘치는 공간이다. 시장은 마을의 규모만큼이나 아담하다. 그 작은 공간을 각종 좌판들이 꽉꽉 매우고 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한 집 걸러 이웃인 이곳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다는 마를 날이 없다. 어느 정도의 소음은 활기를 되새긴다.

아직 잠이 덜 깬 걸까? 밤부를 다듬던 여인의 입에서 실로 거나한 하품이 토해진다. 쩍 벌어진 입 속으로 그녀의 적나라한 속내가 드러나면, 혹시나 민망할까 서둘러 시선을 피해 보지만 정작 개의치 않는 것은 그녀다. 밤부의 잔해들이 발치 아래 더미를 이룬다. 기계 같은 손놀림은 제대로 인이 박힌 듯 너저분함은 빠르게 쌓여간다. 그리고 그 옆으로 만만찮은 꾀죄죄함이 꿈틀대면 이불 속의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아직은 작고 여린 아이다. 얼마나 달콤한지 천지가 개벽해도 절대로 깨지 않을 단잠이다. 그 옆에서 여인의 손놀림은 쉴 틈이 없다.


나에겐 꼭 그 같은 이모가 있다. 가난한 시절 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인지 나는 이모의 삶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이나마 할 뿐이다. 엄마의 말씀-어디까지나 엄마 개인의 기억임을 밝힌다.-에 의하면 생전의 외할아버진 해방 전 이북 개성에서 나름 잘 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하셨다고 한다. 해방이 되고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줄긋기로 한반도가 두 동가리 난 그 시절, 개성에서 알아주는 부자였던-말로만 듣던 개성상인이 바로 우리 외할아버지였던 거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도망치듯 남으로 내려오신다.-이 대목에서 나는 잠시 할아버지의 친일을 의심하였지만, 그것은 소리가 될 수 없는 따짐이었다.- 동네 사람 아무도 모르게, 잠시 외출이라도 나간 마냥 아침상에 숟가락도 그대로 두고 왔다 하였다.

월남 후, 외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자그마한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어찌된 일이진 도통 신통치가 않았다고 한다. 계속되는 실패에 식구들 모두 지쳐갈 때쯤 할머니 뱃속에 막내 삼촌을 잉태하셨고, 더 이상 무모할 수 없었던 외할아버지는 가장의 책임을 짊어지고 어느 건설회사 관리직으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는 돌연 유명을 달리하신다. 죽음의 이유는 어쨌든 복통이다. 살아 생전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금지된 장소-그곳은 종묘였다고 한다.-에 몰래 들고 간 술이 원흉이었다고 한다. 술이 좋아 사람이 좋은 건지, 사람이 좋아 술이 좋은 건지 모를 분이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넘의 무덤-정확히는 높으신 분의 무덤-에까지 술을 들고 가실 줄은 몰랐다며 그 예의 없음에 무덤 주인이 진노하신 거라, 외할머니는 눈 감는 날까지 남편의 이른 죽음을 그렇게 해석하였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집안에 가난을 가져왔다. 편모슬하 2남 4녀, 할머니는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일을 하기 위해 누군가는 집안을 돌봐야 했다. 큰 이모의 희생은 그렇게 강요되었다. 억울한 일이지만 그 시절 그 현실에서 그 말고 달리 어떤 방도가 있었을까? 이모의 희생은 참으로 적나라했다. 당장은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줄줄이 딸린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잡다한 집안일들도 구석구석 이모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때 이모 나이 채 열다섯이 되기 전이라니 어린 이모의 고생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우리 집 식탁에 앉아 설탕이 잔뜩 들어간 커피를 마시는 이모를 유심히 본다. 얼굴은 검고, 깊고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했다. 작은 티스푼을 들고 연신 설탕을 옮겨 담는 손가락은 그간의 고생으로 거칠고 뭉텅하다. 좀 적당히 넣으라는 구박에도 이모는 ‘달아야 커피’라며 설탕을 두어 스푼 더 퍼 나른다.

“그게 맛있어?”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외할머니 핏줄이다. 외할머니도 살아생전 그토록 단것을 좋아했었지. 목구멍이 타들어가게 달짝지근한 커피였다. 그게 맛있다며 홀짝이는 이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다. 감은 눈이 살짝 떨리는 것도 같다. 속눈썹 끝이 파닥거린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다.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모 쌍꺼풀도 있었구나? 까맣고 큰 눈동자는 신비로웠다. 적당히 높은 콧날은 매끈했고 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술은 적당히 두툼했다. 봉인이 해제된 이모의 미모는 화려했다. 몰랐는데 우리 이모 미인이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순간 어째 나는 좀 슬퍼졌다. 그 슬픔은 어떤 이에 대한 원망이 함께한다.

나는 아직도 우리 이모가 왜 그 같은 남자와 결혼을 했는지 참으로 억울하기가 짝이 없다. 이미 돌아가신 분, 원망 따위 들을 리 만무하겠지만 결혼 전에도 만만치 않았던 이모의 삶은 결혼 후에도 그분 때문에 사는 게 계속 힘이 들었다. 평생을 손 하나 까딱 않던 분이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벌이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위세가 드높았고 위풍이 당당했다. 유일하게 잘하는 거라곤 술 마시는 것 밖에 없던 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술병과 숨바꼭질을 즐기시던 분이었다.

간암이었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술을 금했지만 막무가내 이모부는 식구들까지 속여 가며 몰래 몰래 뒷전으로 마셔 댔다. 끝내 좋아하던 술과 함께였으니 그분은 행복하셨을까? 그날 이모는 통곡했다. 이모의 두 눈에선 쉴 새 없는 울음이 쏟아졌다. 이모의 속눈썹은 마를 새가 없었고 그것은 슬픔이 바탕에 깔렸지만 어딘지 시원해지는 울음이었다.


시장 (1).JPG 치앙칸 Chiang Khan, Thailand ⓒ 엄용선


치앙칸의 아침 시장, 그곳에 그 같은 이모가 있다. 얼굴은 검붉었으며 눈가로 깊은 주름이 자리했다. 손끝은 뭉툭하니 마디는 툭 불거져 여기저기 굳은살이 태반이다. 손톱의 검은 때도 영락없는 우리 이모 그대로다. ‘슝-’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간다. 오래전 이모의 바이크도 그같이 허름했다. 그 허름한 바이크 짐칸으로 집채만 한 우유 상자를 싣고 이모는 살기 위해, 먹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었다.

이모에게 오토바이는 유일한 밥줄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에게 그것은 일종의 놀이였다. 바이킹보다 신나고 88 열차보다 스릴 있는 최고의 놀이! 오토바이의 뒤꽁무니는 위험했지만 이모의 등짝에서 나는 안전했다. 거센 바람도 그곳만은 비켜가는, 이모의 등짝은 크고 넓었다.

저 너머 국수를 파는 여인이 있다. 그녀의 손이 펄펄 끓는 들통을 열자 하얀 김이 한꺼번에 치솟는다. 바구니 한가득 깨끗하게 손질된 내장을 한 움큼 집어 들어 들통 안으로 턱하니 던진다. 커다란 주걱은 내용물을 섞기에 제격이다. 온몸을 다해 휘휘, 크게 휘젓는다. 여인의 손은 투박했고 행동은 거침없다. 이모를 꼭 닮은 모습에 발길은 자연히 그곳을 향한다.

말이 통할 리 없는 그 곳에 어쨌든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마주하는 시선에서 당황함이 묻어나지만 멋쩍은 웃음으로 유야무야 넘어간다. 옆 사람이 먹고 있는 국수 그릇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검지를 곧게 펴 ‘한 그릇’을 어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알아들었다는 뜻이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말아 낸다. 젓가락을 찾을 수 없어 잠시 당황하던 찰나 옆자리 아주머니의 오지랖도 더해진다. 퍽퍽퍽! 아주머니의 숟가락이 침입해 길고 긴 면발을 삽시간에 뭉개 놓는다. 그러니 그제야 좀 떠먹을 만하다.

돌아보니 다들 그러하다. 국숫발을 잘게 잘라 죽 떠먹듯 후루룩,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며 한 수저 털어 넣는다. 진하고 걸쭉하다. 엄지를 높이 들어 그녀 앞으로 척하고 내놓는다. 그것은 맛있다는 만국 공통어다. 그제야 배시시 웃어 보이는 그녀, 그 순간 봉인은 풀린다. 그녀도 이모처럼 아름다운 여인네다. 서서히 치앙칸의 아침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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