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여행할 때 ‘혼자’라는 건 참으로 적적하다. 어디를 가야 할 때, 가는 길은 물론 이거니와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거 참 처량하기 그지없다. 뭐 하나 먹을라 쳐도 혼자니까 뻘쭘하고, 하필 맛이라도 좋을 때면 공감해줄 누군가는 옆에 없다. 물건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마지막 결정이야 내 몫이라지만 그 과정에서 오가는 소소한 대화(그것이 물건의 구입 여부에 영향을 미치든 안 미치든)의 부재는 어쨌든 사람을 외롭게 한다. 그리고 하필 그곳이 타지여서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할 때 그 외로움은 순간 두려움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누군가 함께하려 하니 그것 또한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길을 알아보는 건 주어진 몫이라 치지만 어떻게(도보, 버스, 지하철, 택시 등등)에 대한 논의와 의견 일치는 어쨌든 너와 나의 양보가 전제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다른 이의 판단에서 유독 참을성 없이 게으르고 다분히 사치스러운 인간으로 각인되며, 반대로 다른 이는 누군가의 내심에서 쓸데없이 쪼잔 하고 융통성 없는 인간이라 치부된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찌어찌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취향과 관심사가 제각각 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양보하다 다투고 토라지고 침묵하고 그러다가 화해를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궁극엔 모른 척 무시하고 아닌 척 무덤 해야 함을 알게 될 텐데, 과정에서 여행의 즐거움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빠이빠이! ‘내가 이러려고 얘랑 왔나?’ 후회가 막심이다.
이 모든 게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뜻이 잘 통하는 친구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100% 나의 방식과 일치할 수 없는 노릇이니 살아온 방식의 다름은 각자의 취향을 결정하고, 사고방식의 틀을 한정하고,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립한다. 그리고 도저히 좁혀질 것 같지 않은 이 차이는 종종 둘 사이를 삐걱하게 할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혼자 여행이 적적하다고? 하물며 처량하기 그지없다고? 아니다. 혼자 오래 다니다 보면 홀로 음식점에 들어가서 무엇을 시켜 먹는다는 게 조금도 뻘쭘하지 않을 때가 온다. 혹시나 맛이라도 좋을라치면 가까이 있는 종업원이나 주인에게(음식을 직접 해준 요리사라면 더 좋다) 제나라 말로 ‘맛있다’를 연발할 수 있는 반죽도 생기기 나름이다. 물건을 고를 때는 또 어떠한가? 심사숙고하여 고른 몇 개의 후보군을 상인의 눈앞으로 들이밀며 어떤 것이 더 괜찮은지 집요하게 물어댄다. 소소한 대화의 부재가 있을 턱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인건 이제 어디를 가도 쉽게 쫄지 않는 깡다구가 생겨버린 거다. 그래 혼자여도 여행은 할 만 하다.
그리고 여행은 함께여도 할 만 하다. 서로에 대한 마음 씀씀이는 포기나 양보가 아닌 배려이며 그 과정에서 상대를 향한 시선은 편견이 아니라 다름에 대한 인정이다. 끊임없는 다툼과 화해 속에 모른 척 넘어가거나 아닌 척 무덤한 것은 멸시가 바탕이 아닌, 서로에 대한 존중이 우선된다. 이 모든 게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뜻이 잘 통하는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나의 방식과 일치할 수 없는 노릇, 살아온 방식의 다름은 이렇게 각자의 취향을 결정하고, 사고방식의 틀을 한정하고,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립한다. 그리고 도저히 좁혀질 것 같지 않은 이 차이도 어느덧 눈을 뜨면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함께 오길 잘 했다며 행복한 웃음을 나누겠지. 그래 여행은 함께일 때도 즐겁기 그지없다.
그러니 여행은 할 만 한 것. 중요한 건 혼자, 혹은 함께라는 사실이 아니라 여행을 대하는 그 ‘마음가짐’에 있다. 그러므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