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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언 Jun 13. 2022

“결혼하지 마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해요”

베트남 사파


슬리핑 버스를 타고 하노이에 가는 길이었다. 어디선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옆에 앉은 베트남 사람이었다. 그녀는 힐끗힐끗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시끄러웠나? 왜 쳐다보지?

아니나 다를까,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그 사람이 말을 걸었다.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저는 Joy입니다. 베트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와! 한국말 왜 이렇게 잘해요? 깜짝 놀랐어요!”


조이는 베트남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6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우리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단다. 조이는 동생 지와 함께 고향에 가는 길이었다.


“다음에 차 한잔해요. 잘 가요!”


조이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일주일 후, 사파에서 조이와 지를 다시 만났다. 따뜻한 베트남 전통차를 앞에 두고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이국땅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국어로 수다라니 어찌나 신나던지! 나는 말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성격인데 과묵한 지태와 단둘이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 입에 거미줄이 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지태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혼자 하는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도 와이파이가 느리고 계속 끊겨서 생존 여부만 확인하고 끊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 말이 잘 통하는 조이를 만나다니 옛 친구를 만난 듯 신이 날 수밖에. 낯을 가리는 지태도 우리의 대화가 재미있는지 가끔 웃어 보였다.


우리는 베트남과 한국, 꿈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조이는 자기의 꿈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조만간 호주에 가서 요리를 배울 계획이라고 했다.

동생 지는 이따금 우리에게 베트남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면 조이가 한국어로 통역을 해줬다. 지는 우리의 세계여행에 관심이 많았다. 알고 보니 지의 꿈도 여행가라고 했다.


“그런데 둘은 무슨 사이예요?”


조이의 질문에, 우리는 연인 사이인데 결혼은 아직 모르겠다고 답했다. 조이가 말했다.


“결혼하지 마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해요.”


그런 말은 처음이었다. 남자 친구와 세계여행을 간다고 주위에 알렸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어떻게 남자랑 단둘이 세계여행을 다니냐.”

“결혼하고 가야지, 결혼도 안 한 남녀가 장기 배낭여행이 말이 되냐.”

“부모님은 아시냐. 뭐라고 하시냐. 허락은 하셨냐.”


처음엔 웃어넘겼는데 연달아 그런 말을 들으니 수치심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확신이 있어? 확신이 있으면 결혼을 하고 가면 되잖아. 확신이 없어? 그럼 세계여행을 같이 가면 안 되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를 향해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마치 내가 대단히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처럼 나를 말리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내가 남자 친구와 세계여행 다니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세계여행 갔다 와서 헤어지면 그게 뭐 이혼이라도 한 건가. 그리고 이혼한 거면 뭐 어떤데. 그게 대수인가.

날씨 이야기하듯 내 인생에 가볍게 두는 훈수가 불편했다. 나이에 따른 수직서열과 어린 사람에게만 요구되는 예의와 웃음도 힘겨웠다. 사람이 힘들었다.


“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왜 기분 나빠해? 너 진짜 이상하다.”


차라리 여행 경비에 돈을 보태줬다면 날 걱정한다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었을까. 그들에겐 오직 내 결혼 여부만 중요한 것 같았다. 사람 생각은 모두 다르기에 그들의 말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다른 것을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선택은 잘못되었다고, 자기 말만 옳다고 주장하는 흑백논리도 이해할 수 없다.


지태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지만 결혼에 대한 확신은 없다. 불행한 부모님의 인생을 보면서 오랫동안 비혼주의로 살아왔다. ‘결혼’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함께 있을 때 행복한가’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지태와 결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가 와도 결혼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를 하얗게 지우고 싶지는 않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싶지도 않다. 함께 있으면 행복하기 때문에 결혼을 선택한 거니까. 결혼보다 중요한 건 너와 나이니까.


차가 다 식을 때쯤 우리의 대화도 끝이 났다. 나는 사파를 마지막으로 베트남을 떠나고, 조이와 지는 오늘부터 북부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

“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다음에 꼭! 다시 만나요! 안녕!”



번외

조이와 헤어지고 몇 달 뒤, 조이의 SNS에 결혼 소식이 올라왔다. 조이와 남편을 반반씩 닮은 아기 사진과 함께. 뭐야 조이. 나 보고는 결혼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에세이 <어차피 오늘이 그리워진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출간 기념 연재는 매주 월요일 브런치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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