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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언 Jul 11. 2022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갔다

인도 고락푸르


네팔에 가기 위해 인도 국경과 가장 가까운 기차역인 고락푸르역에 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인도 기차를 벗어나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마다 이상한 물 자국이 있다. 이게 뭐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계단 저 멀리 다리를 절뚝이는 어린 아들과 그 손을 꽉 붙든 아버지가 보였다. 바지가 젖어있는 걸 보니 기차에서 실수했나 보다. 아프게까진 발뒤꿈치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마음이 갔지만 눈을 감았다. 감히, 내가 뭐라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어느 날 막냇동생 희옥이가 말했다.


“나는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게 싫어. 그래서 내가 힘들어도 얘기 안 해.”


엄마는 화가 날 때마다 나와 동생들을 때렸다. 처음엔 회초리로 손바닥만 때렸는데 횟수가 거듭되면서 엄마의 처벌 방식도 심해졌다.

고등학생 때는 체육 시간만 되면 구석에 가서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몸에 든 피멍을 친구가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은 날에는 그냥 넘어졌다고 둘러댔다.

엄마의 나아지지 않는 손찌검 때문에 나와 희옥이는 일찍부터 집을 나와 살았다. 희옥이는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따로 방을 얻었다. 자주 왕래했지만 함께 살지는 않았다.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란 이유로 참아야만 하는 관계에 서로 지쳐 있었다. 각자 돈도 벌고 있으니 문제도 없었다. 아니,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이따금 희옥이는 잠수를 탔다.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은커녕 읽지도 않았다. 하루 이틀, 때론 일주일이 넘어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험하게 맞고 자란 탓인지 희옥이가 연락이 안 될 때마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납치라도 된 건가? 회사에 출근하고 있는지 연락해 봐야 하나? 혹시 출근하지 않았다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그런 걱정들 말이다. 친구였다면 일 년 동안 답장이 없어도 잘 살고 있겠거니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동생에겐 내가 보호자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얼마간 느꼈던 것 같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타서 먹이던 동생이라 그랬던 건지, 고작 다섯 살 차이지만 내가 더 나이가 많으니 동생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희옥이가 엄마에게 호되게 맞고 집에서 나와 내가 혼자 살던 오피스텔로 왔을 때, 그리고 한 달 동안 함께 살았을 때.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보호자, 희옥이의 언니’가 된 기분이었다. 회식으로 귀가가 늦어지는 희옥이가 신경 쓰이고 걱정되었다. 너무 늦게 다니지 말라는 잔소리도 했다. 나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마음 편하게 나의 저녁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은 숨이 막히게 무거웠다. 나도 이십 대가 처음이고, 누군가를 책임지고 돌보기엔 아직 어리기만 한데, 내가 왜? 그저 언니라는 이유로? 물음표는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혼자 살고 싶다는 희옥이를 말리지 않았다. 동생을 챙기지 않는다는 죄책감도 잠시 느꼈지만, 보호자가 아닌 ‘그냥 나’로 살고 싶었다.


잠수를 탔던 희옥이와 겨우 연락이 닿은 날에는 차라리 미리 말이라도 해주라며 화도 내 보고 설득도 해보았다. 도대체 왜 잠수를 탔냐는 물음에 희옥이는 끝내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실연을 당해서 그랬나? 아니면 몸이 아파서?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돈이 없어서 힘들 때마다 잠수를 탔다는 말은 몇 년이 지나 처음 들었다. 신입사원 월급에서 나에게 빌린 보증금을 나눠 갚고, 생활비를 빼고 나니 줄일 건 식비밖에 없었단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내려앉았다. 워낙 힘든 내색하지 않기에 잘 지내는 줄 알았다. 자기를 불쌍하게 보는 게 싫어서 그랬을 줄이야.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나는 돈 천천히 갚아도 상관없었는데.”

“아니야, 언니도 힘들었잖아.”

“나는 별로 안 힘들었는데.”


희옥이와 마음을 터놓고 긴 이야기 나눈 건 어쩌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사춘기가 다 지날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했다. 집에서 독립해서야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한집에 살 때는 하지 않던 속 깊은 대화를 말이다.


“나는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게 싫어. 그래서 언니한테도 말 못 했어. 미안해.”


한편으로는 희옥이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누군가 내 사정을 알게 될 때면 불안했다. 꼬리표가 붙을까 봐. 부모님이 이혼해서, 집안이 가난해서, 가족이 화목하지 못해서 쟤가 저런 거야. 그런 꼬리표가 따라다닐까 봐. 나는 퍽 괜찮은 인생이라 생각하는데 누군가에 의해 한순간 불쌍한 사람이 될까 봐. 그래서 어느새 나도 나를 불쌍히 여기게 될까 봐.


사람들의 위로 섞인 안타까움을 마주할 때마다 말하고 싶었다. ‘나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아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나를 슬프게 하지 않아요. 그러니 위로가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나는 그냥 나예요. 내가 힘든 것보다 당신이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그 마음이 나를 더 비참하게 해요.’라고.


지태와 내가 친구 사이일 때 힘든 일을 툭 털어놓은 적이 있다. 궁금한 게 있었을 텐데 되묻지 않았다. 위로나 조언도 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게 고마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위로가 되었다. 내가 필요했던 건 어쩌면 위로가 아니라 나를 나 자신으로 바라봐주는 시선이었을까.


우리의 걸음 속도가 고락푸르역 계단을 오르는 부자를 따라잡았다. 천천히, 그러나 힘 있게 걸음을 내딛는 부자를 지나 역을 빠져나왔다.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왔다.

인샬라. 신의 뜻대로, 당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Drawing by 언언



에세이 <어차피 오늘이 그리워진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출간 기념 연재는 매주 월요일 브런치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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