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ABC 트레킹 1
때때로 나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저질러버릴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상황을 먼저 만들어놓고 그 속에 나를 밀어 넣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성격 때문이다. 네팔로 떠나기 6시간 전, 인도에서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2박 3일 푼힐 트레킹이 9박 10일 ABC 트레킹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당연히 못 한다고 생각했다. 포기와 도전, 그 경계에서 나의 체력을 생각하면 포기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말이다. 척추측만증이 있어 무거운 가방을 오래 메지 못하고, 많이 걸으면 정강이가 쑤셔 절름발이가 된다. 거기에 한 달에 하루는 생리통 때문에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니 시작하기도 전에 겁을 먹은 것이다.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냥 해보는 것인데. 어쩌면 나를 방해한 것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변명과 자기 합리화일 것이다. 해보지도 않은 주제에 나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다니.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할 수 있을까 주저하고 있다면 그러지 말길 바란다.”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말을 믿어보고 싶다. 나의 한계를 넘어보고 싶다. 고산병이나 체력 저하로 중간에 하산하면 어떤가. 내가 지금 용기를 냈다는 사실과 설레는 이 마음이 중요한 거지.
_트레킹의 시작
울레리는 푼힐+ABC 트레킹 구간에서 지프가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이다. 버스를 타고 아랫마을에서 트레킹을 시작하면 돈을 아낄 수 있었지만 우리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 울레리까지 지프를 타기로 했다. 지프 셰어를 위해 방문한 해리네 게스트하우스에 한국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침낭이 너무 얇아요. 제가 ABC에 4번 갔다 왔는데 그 침낭으로 지금 못 버텨요. 정상에 눈 쌓였어요.”
“짐이 그것밖에 없어요? 와~ 그렇게 조금 챙겨가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모두가 우리를 보며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ABC 정상은 지금 영하 20도란다. 길이가 한 뼘짜리인 봄 가을용 싸구려 침낭과 얇은 경량 패딩을 보고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만도 했다. 거기에 인도에서 사 온 허접한 패션 가방과 전통 바지라니. 우리의 차림새는 히말라야에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침낭이 얇아서 잘 때 추운 것보다 침낭 무게에 지쳐 중도 하산하는 게 더 두려웠다. 거르고 걸러 챙겨 온 가방의 절반은 핫팩이었고, 나머지는 고산병에 좋은 생강 티백과 초콜릿, 잠옷으로 입을 티셔츠 하나와 양말 한 켤레였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해리가 가방 무게를 한 번 제보자며 저울을 들고나왔다. 지태와 나, 각 4kg이었다. 이것도 꽤 무겁다고 생각했지만 짐이 많은 사람은 15kg도 거뜬히 넘는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짐을 줄이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물었다.
“포터를 고용하지 그러셨어요.”
정상에 무조건 가고 싶었다면 포터를 고용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정상이 아니었다. 우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실험하는 데 있었고, 도전할 용기를 냈다는 사실이면 충분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한 노력은 실패가 아니니까.
포터를 고용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의 체력은 하루에 최대 15km를 걷는 국민 일정을 따라갈 수 없다. 힘들거나 경치가 좋으면 하루 이틀 더 쉬어가고 싶은데 하루당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포터를 고용한다면 속이 쓰려서 편하게 쉬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겪어보지 않아서 용감할 수도 있고.
빵빵 ~
이야기하는 사이 기다리던 지프가 도착했다. 울레리로 출발!
에세이 <어차피 오늘이 그리워진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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