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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언 Jul 25. 2022

히말라야 4일째, 설사가 멎지 않는다

네팔 ABC 트레킹 2


오전 트레킹 내내 설사인지 방귀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것’을 참기 위해 괄약근에 힘을 뺄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 ‘그것’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참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트레킹과 동시에 물갈이를 시작한 걸까. 네팔의 물은 석회수라서 늘 생수를 사서 마셨는데 물갈이에 걸리다니 아마도 식당 음식이 문제였나 보다. 네팔에 와서 9일 동안 변비에 걸렸던 지태와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변비와 장염 중 무엇이 더 고통스러울까. 우리는 만장일치로 장염의 손을 들었다.


산을 처음 타보니 이런 실수가 있다. 짐 줄이기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외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약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산에선 모든 게 다 귀하다. 핸드폰을 충전하는 전기나 와이파이, 씻을만한 뜨거운 물도 숙박비와 별도로 비싼 값을 내야 한다. 다행히 지프를 함께 타고 온 준용이에게 지사제를 얻었다.


“아. 머리가 너무 아프네......”


다음 날 아침, 다이닝룸 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침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던 지태가 두통을 호소했다.


“고산병인가? 근데 여태 괜찮다가 왜 이제 아프지?”


보통 사람들은 해발 고도 2,900m에서 고산증세를 느낀다. 우리가 묵은 고레파니의 해발 고도는 2,860m로 고산병 걸리기 딱 좋은 높이다. 간밤엔 내가 고산증세로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내내 증세가 없던 지태에게 고산병이 오다니 사람마다 고산병 오는 시기가 다르다는 말이 정말 맞나보다.(어떤 사람은 평생 고산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우연히 같은 숙소에서 다시 만난 제스가 하루 이틀 더 쉬어보고 괜찮으면 올라가고 아니면 하산하길 추천했다. 그리곤 웃는 얼굴로 한 마디 덧붙였다.


“잘못하면 너희 시체만 헬리콥터 타고 내려간다? 하하.”


고산병 증세를 무시하고 계속 산에 오르다가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봤기에 섣부르게 결정할 수 없었다. 밖에는 출발 준비를 마치고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레파니에서 가까운 곳에 푼힐 전망대가 있다. 해발 고도 3,210m로 많은 사람이 푼힐 전망대만 다녀가기도 한다. 우리의 목적지인 ABC의 해발 고도는 4,130m로 고산병 때문에 푼힐 전망대를 가지 못하면 ABC는 당연히 갈 수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루 더 묵는 수밖에.


오후가 되자 좀 괜찮다는 지태와 푼힐 전망대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문제였다. 고도가 높아지니 한 발자국만 떼어도 심장이 쿵쿵 뛰고 심하게 어지러웠다. 머리에 압력이 차는 기분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결국 몇 걸음 가지 못하고 괄약근에 힘이 풀려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누가 오면 꼭 말해줘야 해!”


나무에 거름을 주는 동안 지태는 사람이 오는지 망을 봤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나흘째 물갈이가 멎지 않는다. 짐을 줄이느라 갈아입을 팬티도 안 가져와서 팬티엔 나흘 치 똥이 그대로 묻어있다. 갈아입을 팬티 좀 가져올걸. 트레킹 끝날 때까지 똥 묻은 팬티를 입고 다녀야 한다니. 물갈이와 고산병이 계속되면 하산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노력에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지태를 지팡이 삼아 간신히 숙소로 되돌아왔다. 고산병에 좋다는 생강 티와 마늘 수프를 온종일 마셨다.


다음 날 아침, 식사하고 푼힐 전망대로 다시 향했다. 확실히 어제보다는 괜찮아진 기분이었다. 마늘 수프와 생강 티 효과가 있었나 보다. 여전히 조금씩 느껴지는 고산 증세 때문에 45분이면 간다는 길을 2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푼힐 전망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반가웠다.


푼힐 전망대 입구


‘나도 이제 ABC에 도전할 수 있는 건가!’


푼힐은 나에게 전망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히말라야라는 엄격한 심사위원 앞에서 “통과” 되는 순간 ABC까지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 같았다. 앞으로 더 고된 트레킹이 남았음에도 안도감과 성취감이 들었다.


트레킹 다섯째 날이 되어서야 장염이 끝났다. 장염에 걸리면 온종일 누워만 있어도 진이 빠지는데 삶은 달걀, 오트밀 죽, 마늘 수프만 먹으면서 매일 9시간씩 트레킹 하려니 더 힘들었다. 정상에 오를 자신이 없다. 계속된 설사로 기력이 떨어져 매일 하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날마다 내 한계를 시험하는 기분이다. 나는 여기까지야 더는 못 간다고 머리는 생각하는데 다리가 한 걸음 더 오르고 있다. 과연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에세이 <어차피 오늘이 그리워진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출간 기념 연재는 매주 월요일 브런치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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