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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덴 Jul 11. 2017

영국과 한국의 10년 후를 예견하다

[고덴의 영화읽기 11]  <칠드런 오브 맨>

세상에 인류가 등장한 게 언제일까? 그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통 약 300만년 전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을 기준으로 한다. 당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람보다는 원숭이에 더 가까웠으나 시간이 흐르며 계속해서 발전된 사람의 형태는 적자생존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진화해 지금의 우리 인간 형태에 이르렀다.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쓰며, 깊은 사고를 시작하는 과정을 통해 진화한 우리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까? 이제는 인공지능과 생존경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300만 년이란 장고의 역사를 생각해봤을 때 더 대단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바둑을 둘 것이라고는 불과 5년 전만해도 생각지 못 했으니 말이다. 그럼 오히려 가능성을 다른 방향으로 열어보자. 인류의 발전이 아닌, 더 이상 지구에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라는 종의 멸종을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



<그래비티>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11년 전, 인간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그렸다. <칠드런 오브 맨>이란 낯선 제목의 영화다. 2006년 당시 국내에는 개봉을 하지 못한 비운의 수작이다.  


영화는 서기 2027년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개봉 당시를 기준으로 21년 후의 지구촌은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대재앙을 맞이했다. 지구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기, 즉 현재 세계에서 가장 어린 소년인 디에고가 18세의 나이로 죽게 되었다는 뉴스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간다.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사회에서 무심히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테오는 길에서 불의의 납치를 당하고 끌려간 곳에서는 과거 함께 사회운동을 했고 지금은 헤어진 아내 줄리안(줄리안 무어)을 만난다. 과거에 아내였던 그녀가 전 남편에게 부탁을 한다. 현재 정부에서 일을 하는 그에게 거액을 주고 한 소녀를 위한 통행증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다. 그 소녀는 키라는 이름의 흑인 소녀였고 매우 놀랍게도 현재 임신을 한 상태였다. 


줄리안의 계산으로는 이대로 소녀의 임신 소식이 영국 정부에게 알려지면 아기만 뺏기고 영국의 인구만 늘어날 것이었다. 그래서 소녀와 아기를 영국이 아닌 곳에서 몰래 시작을 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인류 모두의 발전을 위해서. (영화 속에서는 영국만이 거의 망해버린 지구촌 사회에서 유일하게 정부를 구성한 상태로 남아있고, 그들이 모든 이주민을 배척하는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국가라는 설정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도록 하자) 결국 테오는 ‘인류 프로젝트’를 위해 소녀와 아기를 지켜주기로 한다. 결말은 영화를 직접 보고 확인해보는 것이 좋겠다.


영화 속 문제만은 아닐지도



영화는 인류가 멸종한다는 강력한 디스토피아(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절망적인 상황의 가상사회)를 그리고 있다. 세상에 사람이 사라진다는 건 가히 절망적인 이야기긴 하다. 물론 진화의 역사를 길게 놓고 봤을 때는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듯 새로운 종이 진화하고 등장해 이 땅의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있다. 지구적 차원에서는 마냥 절망적인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실제로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초국가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또 다른 진화를 모색할 것이다.


현재 지구의 인구는 약 71억 명이다. 1999년에 60억 명을 돌파했으니 10여 년만에 인구가 무려 10억여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오히려 영화와 같은 인류의 ‘멸종’이 아니라 ‘과잉’을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드는데 우리나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우리나라는 이대로 가다가 영화와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지난 해 태어난 신생아의 수가 40만 6300명으로 급감했다. 이 추세면 올 해는 30만명대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꾸준히 상승하던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작년을 기점으로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불어 올해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하며 ‘고령 사회’에 진입을 하게됐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다) 심상치 않은 인구 문제가 예고된 것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게 된다. 국민연금으로 대변되는 사회보험에 대한 복지비용의 증가, 아직 종전하지 않은 남북관계 속에서 줄어들 군인의 수, 줄어드는 저연령층만큼 사라질 대학교(이 문제로 인해 대학의 개념이 바뀔 수도 있다) 문제 등이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한 번도 풀어보지 못 했던 문제를 풀 차례를 맞이했다. 우연일테지만 영화 개봉이 10여년 지난 지금, 영화 속의 상황이 자꾸 우리 사회에 겹쳐보이는 이 기시감은 숨길 수가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역시나 우연의 일치지만 영화가 10년 후 세계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될 난민 문제도 다뤘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은 영화 개봉 10년 후 2016년, 경제 문제와 함께 난민 문제에 대한 입장이 반영되어 브렉시트(Brexit) 투표로 유럽연합을 탈퇴했다. 영화에서 영국이 자국민을 제외한 이주민을 모두 격리시키는 모습이 포개진다. 공교롭게도 <칠드런 오브 맨>은 우리나라와 영국의 10년 후 미래를 정확히 예견했다.


또 하나의 SF 명작



영화의 장르는 SF다. SF 영화치고는 과학 기술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이 있지만 SF 장르라는 틀만 빌린 채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에 무게를 더 두고 싶었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연출 의도가 보인다. 영화의 설정 자체가 충분히 흥미롭지만 이 영화를 완성하는 요소는 여러 측면이 있다. 우선 클라이브 오웬,줄리안 무어,마이클 케인 등 명배우들의 호연이 잘 짜여진 각본 안에서 무게를 잡아준다. 


무엇보다 촬영이 압권이다. 총탄이 난무하는 급박한 상황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감독은 깔끔한 편집보다는 거친 카메라 무빙을 선택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6분 여간 진행되는 롱테이크는 훗날 영화사의 훌륭한 롱테이크를 꼽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참고로 테이크는 카메라 스위치가 한 번 작동해서 찍는 화면의 양을 뜻한다. 즉 6분 간 한 번도 끊지않고 한 장면으로 촬영을 했다는 말이다. 감독 알폰소 쿠아론은 자신의 대표작 <그래비티>의 도입부에서도 매우 길고 훌륭한 롱테이크 기법을 선보인다. 


영국의 BBC 방송사에서는 21세기 이후에 나온 모든 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영화를 100편 꼽았는데, <칠드런 오브 맨>은 13위에 랭크될 정도로 상당히 고평가된 작품이다. 이렇게 영화적 가치가 높고 당시 미래를 예견한 부분이 지금과 맞아떨어지는 면이 많다는게 시사하는 바가 커서 국내에서는 10년이 지나서야 작년에 처음으로 개봉했다. 영화관에서는 지금 볼 수 없지만 영화애호가라면 분명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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