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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덴 Jul 11. 2017

‘다리가 없는 새’ 장국영을 추억하다

[고덴의 영화읽기 21]  <아비정전>

영원한 청춘의 상징이자 이제는 불멸의 반항아로 남아있는 제임스 딘을 추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그가 떠난 지도 반세기가 지나버렸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엘비스 프레슬리,존 레논,커트 코베인,마이클 잭슨 그리고 김광석 등의 음악인들을 해마다 소환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속물같은 표현일진 모르겠으나 자본주의 최고의 상품은 ‘죽음’인 것일까. 그들은 우리 곁에서 사라지며 더 거대한 별이 되었다. 그리고 매년 4월이면 그 별들의 중심에서는 장국영이 찬란히 빛을 내고 있다.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이 홍콩의 한 고층 호텔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수많은 영화팬들은 만우절 장난치고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다.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은 보도를 보고있는 두 눈을 다시금 씻으며 그 만우절 해프닝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물론 아직도 그의 죽음 뒤에는 많은 음모와 해석들이 있다. 자살을 가장한 타살이라는 이야기들이 해마다 끊임없이 나오는 것만 봐도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방증을 알 수 있다.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장국영


꽤나 긴 무명생활을 거쳤지만 장국영은 가수로 먼저 데뷔한 연예계에서 결국 아이돌 가수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영웅본색>과 <천녀유혼> 시리즈까지 성공하며 배우로서 입지도 굳혔다. 그러나 염증을 느낀 연예계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은퇴를 선언하고 캐나다로 떠난 장국영은 1990년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이제 두 번째 작품을 찍는 신예 감독 왕가위와 손을 잡은 작품 <아비정전>으로. 자신의 전성기인 8~90년대 중에서도 가장 빛이 나고 화려했던 모습의 장국영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홍콩을 떠나있기에는 장국영은 어쩔 수 없이 스타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버림받는 사람들



한 인물의 일대기라는 뜻의 정전(正傳). 그러니 ‘아비정전’은 아비라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비(장국영)는 매일 오후 3시면 축구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장만옥)에게 찾아간다.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은 아비는 그녀를 집으로 들이지만 이내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여자 루루(유가령)를 집으로 들인다. 아비는 항상 여자를 원하지만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 루루는 그런 아비의 성격을 알아채고 헤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시나 아비는 매몰차다. 


아비가 사랑을 주지 못 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친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고 양어머니로부터 자랐다. 늘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웠다. 그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여자들을 만나보지만 아비에게 사랑은 너무도 어려운 단어다. 이제는 정말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만나고 싶다. 친어머니가 필리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비는 기어코 필리핀으로 떠나기로 한다.


한 편, 수리진은 자신의 짐을 찾기 위해 아비의 집에 왔다가 근처를 순찰하는 경관(유덕화)을 만난다. 실연을 당한 수리진과 그녀를 위로하던 경관은 서로 호감을 갖고 만나게 되지만 역시나 그리 오래가지 못 한다. 왕가위 영화 속 남녀는 항상 그런 식이다. 경관 일을 정리하고 오랜 꿈이었던 선원이 되어 필리핀으로 간 경관은 그 곳에서 우연히 아비를 만나게 된다. 아비는 이제 선원이 된 경관에게 제안한다. 필리핀을 떠나자며. 


왕가위의 페르소나



1990년대 감독 왕가위는 홍콩을 넘어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의 영화들이 국내에서도 흥행하며 수많은 왕가위 매니아들을 형성했던 시기가 1990년대였고, 마치 지금의 한류 열풍처럼 홍콩의 영화배우들이 아시아 최고의 인기스타를 차지하던 시절도 마찬가지로 그 때였다. 


<아비정전>에는 왕가위의 상징과도 같은 핸드헬드 기법과 스텝프린팅 기법이 사용되진 않지만 사실상 왕가위 감성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의 처녀작인 <열혈남아>는 왕가위만의 개성있는 카메라 워크가 나오긴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가 80년대 후반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던 홍콩 느와르와 크게 궤를 달리하지 못 하는 작품이기에 <아비정전>부터를 소위 ‘왕가위 필름’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핸드헬드(Handheld) 기법 - 말 그대로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기법. 카메라를 트랙이나 레일 위에 올려놓는 것보다는 불안정할 수 있으나 현장감과 역동성을 더 느끼게 해주는 장점도 있다.


* 스텝 프린팅(Step Printing) 기법 - 저속촬영 후 프레임의 특정 부분을 복사해서 붙이는 방식. 쉽게 말해 영화의 영상은 1초에 24프레임을 찍는데 스텝 프린팅은 1초에 16 또는 8프레임으로 찍어서 24프레임으로 늘린 것이다. 그래서 같은 장면이어도 끊기는 느낌이 든다. 


원래 <아비정전>은 경관 역을 맡은 유덕화 중심으로 흘러갈 이야기였으나 왕가위가 장국영을 처음 보고서는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 장국영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로 바꿨다는 후문이다. 장국영은 <아비정전> 이후에도 왕가위의 후속작들인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에도 나오며 결국 양조위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왕가위 영화 특유의 자조적이고 어두운 감성을 표현하기에는 양조위보다는 더 유약해보이는 장국영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다리가 없는 새 



대부분의 왕가위 영화들이 시간과 기억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왕가위 영화 속 남녀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늘 떠나고 나서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찾아 나선다. 유독 <아비정전>에서 뒷모습이 앵글로 많이 잡히는 것도 그런 이유일테다. 영화 속 처량한 장국영의 뒷모습들이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다리가 없는 새가 살았다.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 했다. 새는 날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닿는 날은 생애에 단 하루, 그 새가 죽는 날이다.”


그 유명한 장국영의 맘보춤 장면이 나오기 직전 독백이다. 음악은 흥겹고 낭만있어 보이는 장면이지만 뭔가 되돌려 볼수록 쓸쓸한 그 장면을 떠올리며, 순간 그 대사의 함의가 장국영의 인생을 관통해버린 건 아닌가 싶어 놀란다. ‘다리가 없는 새’ 장국영은 하늘을 유영하다 날갯짓을 멈췄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다시 한 번 영원한 청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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