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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덴 Jul 11. 2017

테러의 절망보다 더 컸던 시민들의 희망

[고덴의 영화읽기 22]  <패트리어트 데이> 

패트리어트(Patriot). 애국자를 뜻하는 단어다. 미국에서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은 ‘패트리어트 데이’라고 해서 미국의 독립혁명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지정된 날이기도 하다. 미합중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수많은 애국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보스턴에서는 해마다 같은 날 마라톤 대회를 연다. 


2013년 4월 15일 오후 2시 50분 경. 무려 117회 째를 맞이한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순조롭게 마무리 되고 있었다. 우승자가 결승선을 지난지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결승선 부근에는 프로를 비롯한 일반인 선수들과 그들의 지인들이 완주를 축하하고 있었다. 그 순간 두 번의 연속적인 굉음과 함께 폭발이 있었고 30초도 안 되어 3명의 사망자와 200 여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다. 전체 부상자의 10%에 해당하는 숫자가 팔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미국 전역은 다시 2001년의 9월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기게 됐다.


어느 화창한 오후의 재앙



자세하게 묘사는 안 됐지만 주인공 토미(마크 월버그)는 징계를 받은 경관이다. 직급에 맞지 않은 현장에 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잘못을 했나보다. 과잉 진압과 같은 경찰 내부 규율을 어겼을지도. 다음 날 아침에 열릴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현장 통제까지만 맡으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상관에게 약조를 받았다. 자신보다 한참은 후임들이나 입을 법한 경찰 로고가 박힌 형광색 조끼를 입으려니 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즐겁게 하자는 주문을 걸며 조끼를 입고 화창한 날씨의 현장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 날 예기치 않은 참사가 발생한다.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각색을 통해 이야기에 변주를 준다. 극을 이끌고 가는 토미 말고도 초반부에 인물들을 여럿 소개시키며 이들이 어떻게 전체 이야기에 녹아들게 될지를 관객들로부터 기대하게도 만들기도 한다. 그 작전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아비규환의 상태가 벌어지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보스턴시 당국은 전력을 동원해서 범인 색출에 나섰고 범인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범법 행위를 한다. 과연 경찰과 FBI는 그 무법자들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수호할 수 있을까. 


감독과 주연의 세 번째 협연



감독 피터 버그와 주연 마크 월버그가 다시 만났다. 아프가니스탄으로 작전 투입된 미국 네이비씰 대원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 <론 서바이버>와 멕시코만에서 배가 폭발하며 벌어진 역사상 최악의 해양 석유 유출 사건을 그린 <딥워터 호라이즌>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두 사람은 감독과 배우로만 벌써 세 번째 조우했다. 그 것도 세 작 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다. 이쯤되면 실화 전문 조합이라고 볼 수도 있다. 


피터 버그는 배우로 출발해 감독이 되었는데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평가에 있어서 기복이 심했던 터라 관객들의 큰 신뢰를 얻진 못 했지만 최근의 작품들이 모두 호평을 받으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마크 월버그는 배우로서 이미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지 오래 되었으나 인종주의적 발언을 했던 과거가 밝혀지며 영화 외적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로인해 많은 팬들이 이제는 그의 영화 자체에 보이콧을 선언한 것도 사실이긴 하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



<패트리어트 데이>는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 액션과 실화가 주는 진정성이 더해지며 호쾌함과 드라마의 감동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했다. 4년 전의 실화라 이미 대다수의 관객은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탄탄한 각본과 긴박한 연출은 관객들을 흡입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사랑’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있었다.


영화의 제목이 주는 느낌으로 인해 자칫 과거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한 전형이기도 했던 영웅주의의 모습이 펼쳐질까 우려를 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영화는 그 우려를 잠식시킨다. 영화 속에서 보스턴 시 당국과 경찰, FBI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지며 일의 처리 방식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작전 수행 중에도 무전이 엉키며 그리 합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9·11 테러가 알 카에다가 아닌 미 정부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음모론적 의견도 넌지시 던지며 제왕적이고 영웅적인 미국의 모습만을 그리지 않은 점이 이 영화에서 주목할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보스턴의 참사가 일어난 바로 그 날이 4월 15일이다. 우리 국민들 모두의 가슴 한 켠에 상처로 남은 아픔의 날과 공교롭게도 하루 차이다. 우연이고 의미부여긴 하지만 여러모로 4월은 참 잔인한 달이다.


4월 16일이 가까워오면 우리 사회는 다시 엄숙해질 것이다. 해가 갈수록 우리 사회의 모든 어른들은 어떤 의미로든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표하려 할 테다. 그리고 물을지도 모른다. 과연 진정으로 국가는 책임을 다했는지를.


영화 속 보스턴 시민들은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도시와 국가를 신뢰한다. 자신의 소속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시민들은 정의와 진실이 반드시 이긴다는 희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영화와 달리 지금의 우리 사회는 잠시 비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국가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당연히 바란다고만 될 일은 아니다. 그 노력의 몫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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