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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덴 Dec 18. 2017

또 북한이야? 우려 씻어낸 도발적 상상

[고덴의 영화읽기 29] <강철비>

아마도 한국 영화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소재를 꼽으라고 하면 ‘남북 관계’일 것이다. 냉전시대의 산물로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던 반세기 전부터 오늘날까지 남북의 대립은 꾸준히 훌륭한 재료로 꼽히고 있다. 국책용으로 양산되던 1960~80년대의 반공 영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심지어 대종상 수상 부문에는 반공영화 부문도 있었다- 1999년 등장한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쉬리> 이후부터만 얼핏 세어 봐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의형제>, <베를린>, <공조> 등 약 20여 년간 흥행에 성공한 국내작들 중 ‘남북 관계’라는 코드를 교집합으로 가진 작품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남북 관계는 현실적인 소재이면서도 자극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분야라 앞으로도 끊임없이 다양하게 사용될 소재임에 분명하다. 또 다시 남북이 만나는 영화가 나왔다. <강철비>. 제목도 독특하다. 


도발적인 하지만 그럴 듯한 상상

이제는 군복을 벗은 북한의 특수요원 엄철우(정우성)에게 과거 자신의 상관이었던 리태한(김갑수)이 나타나 국방위원장을 노리는 쿠데타가 일어날 것 같다고 일러둔다. 반동분자들을 처리하면 가족들을 호의호식하게 해준다는 제안에 엄철우는 임무를 맡기로 한다. 한편, 남한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인 곽철우(곽도원)는 북한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듣고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한다. 쿠데타를 막으려했던 엄철우는 계획된 작전에 실패하자 위원장을 보호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해 월남하게 된다. 곽철우는 엄철우에게 접근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이 아수라장을 정리하고자 한다. 쿠데타가 일어난 북한,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남한에 오게 된 북한의 국가원수, 그로인해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기에 놓인 한반도. 과연 이 도발적인 하지만 꽤나 있을법한 상상은 어떻게 마무리 될 것인가.


원 히트 원더가 아님을 증명한 양우석 

2013년 <변호인>으로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 뒤늦게 입봉을 한 양우석 감독은 데뷔작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충무로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전작의 대성공이 차기작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중압감을 이겨내고 자신이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한 작품만 반짝 성공하고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경우)’ 감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강철비>는 2011년에 연재된 웹툰 <스틸 레인>을 원작으로 각색한 이야기인데 <스틸 레인>의 스토리작가가 양우석 감독이었다는 것이 영화가 개봉하며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되었다. 흔히 어딘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이나 무언가를 시쳇말로 ‘갑툭튀’라고 줄여서 표현한다. 양우석 감독은 <변호인> 이전에도 자신의 칼을 갈고 있었던 준비된 스토리텔러였다. 결코 ‘갑툭튀’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강철비>는 기존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가 주는 긴장감에 비례해 액션의 스케일은 더 커졌다. 더불어 총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민족과 인류를 향한 애정도 드러낸다. 서로 다른 문화 간의 간극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강철비’라는 제목은 ‘스틸 레인(Steel Rain)’이란 별명을 가진 탄두형 미사일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한자어로 음차해보면 ‘철우(鐵雨)’가 된다. 흥미롭게도 너무도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두 주인공의 이름이 모두 한자는 다르지만 ‘철우’다. 작위적인 메타포(metaphor)일 순 있으나 전쟁 그 자체를 투영시킨 이름과 두 인물의 조우를 통해 <강철비>는 기존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보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간다. 두 인물의 대립과 협력, 갈등과 화해를 통해 남북 관계를 단순히 이분법의 잣대로 평면적으로만 보지 않고 더 확장된 외연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지를 보인다. 

     

우선 무기는 내려놓자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한 어조로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천명했다. 이에 시 주석 역시 크게 동의하며 반전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이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속한 이 공동체가 총탄에 의해 와해되는 걸 보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 남쪽 철우와 북쪽 철우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면서도 대화를 통해 전쟁을 막으려고 하는 모습도 같은 이유다.우선 무기는 내려놓자. 지금 한반도에 필요한 건 강철비도 핵우산도 아니고 따뜻한 대화의 햇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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