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쓴술, 문장은 안주

언화네 심야포차

by 채언화

"오늘 하루 참 껄끄러웠죠? 삼키지도 못하고 입안을 맴돌며 당신을 찔러댔을 문장 한 점을 내어드릴게요. 뾰족한 응어리는 퉤, 하고 뱉어버려도 되는 여기는 '언화네 심야 포차'입니다."



제2야(夜)

[오징어 입] 뱉어야 비로소 맛보는 고소함

만개레시피 출처

[오늘의 안주: 노릇노릇 오징어입]

특징: 삼키지 못한 응어리를 뱉어내고 마주하는 고소함


(문에 달린 종이 흔들린다.) 딸랑. "......" 웬일인지 주인장이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주방을 바라본다.) ".....?"

보글보글 속부터 올라온 공기방울이 표면에서 터지는 국물과 까만 밤에 뜬 별처럼 조용한 거리를 비춰주는 전등을 보아하니 영업 중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장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뒤를 돌아 손잡이를 잡으려고 문쪽으로 돌렸다.


(몸을 돌리자마자 주인장이 앞에서 있다.) "어디 가시게요?"

"어디 가지 말고 자리에 앉아요. 잠깐 화장실이 급해서 갔다 왔어요~, 보시다시피 혼자 운영하는 포장마차다 보니 허. 허. 허."(머쓱한 듯 어색하게 웃는다.)


"여기 자리에 앉아요."(테이블을 힘껏 닦는다.)


"오늘은 어떤 거 드실래요?"(빤히 쳐다본다.) 잠깐의 침묵에 들어간다. 냉장고 모터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빤히 손님을 쳐다보던 주인장이 한숨을 쉰다. 후.) "얼굴을 보아하니 제가 다 한숨이 나오네요. 딱 보니 이게 좋겠네요. 혹시 오징어 못 먹지는 않죠?"


고개를 끄덕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간다. 뚜벅. 뚜벅)"오징어 입 드셔보셨어요? 이게 또 손님처럼 속에 할 말이 많지만 못해서 얼굴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사람한테 제격이거든요."


(얼굴을 빼꼼 내민다.) "아참, 또 밥은 안 먹은 건 아니죠? 이게 밥보다는 간단한 안주라서 그래도 맛은 있어요"


"저번처럼 맨 윗줄에 보면 투명한 놈으로 골라서 마셔요. 이게 또 꽉 막힌 속을 달래 주는 데는 또 그거만큼 좋은 게 없어요."(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으으으응~) " 먼저 마시지 말고 기다려요. 혼자 마시면 복 달나요."


(오래된 냉장고를 연다 끼익.) "오징어 입 먹어 보셨어요?, 이게 손질이 어지간히 귀찮은 게 아니에요. 그런데 참, 맛은 좋죠, 힘들게 손질한 만큼 쫄깃하면서 끝에 고소함이 올라오는 맛. 거기 다소주 한 잔이면. 벌써 군침이 돌죠? "


(오징어 입을 도마 위에서 손질을 한다. 찹. 찹)

"오징어 입이 손질이 귀찮은 게, 입에 뾰족한 이빨을 빼내야 하거든요. 이게 다 뺀다고 다 빠진 게 아니라 볶으면서도 가끔 일부 나오기도 하고, 먹다 보면 작은 것들이 씹힐 때가 있어요."


"아까, 제가 손님 얼굴 보고 한숨 쉬었던 이유가 딱. 속에 할 말은 많은 데 뱉지 못한, 뾰족한 이빨들이 많은 오징어 입. 생각이 나더라고요"


(타. 타 타탁. 타탁. 화르륵) 불이 켜진다. 프라이팬과 냄비가 서로 부딪히며 귀를 찌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이 올라간다. (탁.)


"근데, 그거 알아요? 우리랑 이 오징어 입하고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거? 할 말은 많지만 뱉지 못하는 점도 비슷하고 다 뱉었는 줄 알았지만 아직 남아있는 부분도 비슷하고, 나중에도 남아있는 모습이. "


(기름을 뿌리고, 오징어 입을 넣는다. 치이익. 치지 맛있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장은 요리에 집중한 나머지 뒷이야기를 잠시 멈추었다.


오징어 입 한 상

(버터를 넣으며, 주걱으로 볶기 시작한다.)"비린 하루를 견디느라 고생한 혀끝에 고소한 버터 향이라고 좀 발라줘야지 않겠어요? 그래야 내일 또 질긴 세상을 견디죠."


"자. 이제 거의 다 만들었어요. 혼자 또 실컷 마신건 아니죠?"

프라이팬을 기울여 접시에 담는다. 접시를 들고 테이블로 향한다.


(뿌듯해하며 입으로 효과음소리를 낸다.) "짜잔~, 맛있겠죠?" 뿌듯함도 잠시 흘깃하고 쳐다본 초록병은 이미 바닥을 보였다. "에이, 속 버리고 맛없게 혼자 드시지 말라니깐요."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온다. 드드득) 자리에 앉는다. "한 입 먹어봐요. 정말 맛있을 거예요."

"이게 아까도 말했지만, 뾰족한 이빨을 빼내는 것이 문제지, 빼내고 나면 연약한 속살이 일품이라니깐요."


"오늘은 무슨 일이 많았길래 그렇게 할 말이 많은데 못한 사람처럼 얼굴이 딱 오징어 입처럼 변했어요?"


(빤히 쳐다보며 말을 한다.)"이럴 때 아니면 언제 다 이야기하겠어요. 저한테 이야기해 보세요. 오히려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을 때가 더 마음 편히 말할 수 있다니깐요."


"이게 사람도 그렇고 오징어 입도 그렇지만 입에 있는 이 뾰족한 이빨이 뱉어내도 남아있어요. 저도 사회에 있을 때 참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결국 빼내지 못한 뾰족한 이빨이 연약한 제 속을 찌르고 있었다니깐요?"


한숨을 쉰다. 후.


"아이고. 미안해요. 오늘따라 손님 표정이 과거의 제 모습 같아서 저도 모르게 자꾸 한숨이 나오네요. 제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경비원출신으로 일을 하니 어디에다 말할 대가 없었어요. 속에 있는 모든 말을 내뱉는다고 바뀌는 것도 없고, 오히려 잘리지 않을까 불안했죠."


"결국, 나중에는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더라고요. 왜 말을 이제하냐, 말을 왜 안 했냐 등등 결과적인 대답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생각을 하고 나니 좀 속이 덜 찔리더라고요."


오징어 입을 먹는다. "음~ 이끝에 오는 고소한 맛"


"제가 나름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 너무나 답답하고 죽을 거 같았던 순간이 있었어요. 가족문제로 가족과 다투면서 속에 있는 모든 뾰족한 이빨, 닳고 닳아 결국 다 갈아져서 뭉뚝해진 이빨 다 뱉었죠. 뭉툭 한 건 찌르다기보다는 나를 더 짓누르고 숨 막히게 하더라니깐요?, 결국 참지 못하고 다 뱉고 나니 엄청나게 속이 시원했어요."


(소주 한 잔을 한다.) 짠~ (소주잔을 부딪힌다.) "크으~"


"참 아이러니하게도, 다 뱉었다고 시원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죠? 이상하게 시원하다기보다는 서늘한 느낌에 가까운 느낌이 날카롭게 저를 찌르고 있었어요. 아마 뱉어낸 말들이 공중에서 흩어지지 못하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박혔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접시 위에 수북이 쌓인 오징어 입의 이빨을 가리킨다.)


"뾰족한 이빨도, 뭉뚝한 뼈들도 모두 뱉어내야지만 이쫄깃하고 고소한 살점을 온전히 씹을 수 있어요. 마음돋 그래요. 뱉어내는 과정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보기 흉하게 상처가 남더라도, 그래야만 내 삶의 진짜 고소한 맛이 시작되거든요. 오늘 손님이 뱉어낸 그 말들, 하나도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자리에서 일어나며)"오늘도 이야기하다 보니 어김없이 밤이 깊었네요. 오늘은 이 고소한 맛만 기억하고 들어가요. 날카로운 건 내가 다 치울 테니까."


"조심히 들어가요. 오늘도 충분히 고소했어."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혼잣말하듯)


"오늘은 질긴 이빨을 뱉어내느라 턱이 다 아팠을 테니깐. 다음 주엔 씹을 것도 없이 후루룩 넘어가는, 그저 마음 편히 삼켜도 되는 잔치국수를 준비할게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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