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쓴술, 문장은 안주

언화네 심야포차

by 채언화

"오늘 하루 참 꼬였죠? 가닥가닥 엉킨 마음을 후루룩 풀어줄 따뜻한 문장 한 점을 내어드릴게요. 애써 씹지 않아도 부드럽게 당신을 채워줄 여기는 '언화네 심야 포차'입니다."


제3야(夜)

[잔치 국수] 엉킨 마음을 후루룩 풀어내는 밤

잔치국수.jpg 만개 레시피 출처

[오늘의 안주: 김이 모락모락 잔치국수]

특징: 꽉 묶인 매듭을 풀고, 막힌 속을 길게 이어주는 온기


(터벅. 터벅 주인장이 움직이다. 멈춰서 문을 향해 말을 한다.)

"어이쿠야, 손님이 오셨구먼, 어서 오세요~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처음이시죠?"


(손님이 앉은자리 쪽으로 터덜. 터덜 움직이다. 문에 달린 종을 바라보며 말을 한다.)

"참, 오늘 다 일이 꼬이네~"(테이블에 물통과 컵을 두며 말을 한다. 탁. 탁) "어떤 걸로 드실래요?"


"말만 하세요~, 꼭 메뉴판에 있는 게 아니어도 좋아요. 딱 지금 생각나는 거 이야기하시면 금방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특별히 손님한테는 제가 그렇게 해드릴 수 있죠. 우리 집 단골이잖아요."(미소를 띤다.)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한다.)"다 꼬여버렸어요. 그럴 때 먹을만한 게 있을까요?"


(주인장이 손님의 얼굴과 한숨이 떨어진 테이블을 닦는다. 쓱- ) "음..."

(그러다 갑자기 밖을 보다가 손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한다.) "저도 오늘은 날도 추운데 일이 꼬인 날이었는데, 마침 잘되었네요."


(주방으로 향한다. 뚜벅. 뚜벅) "이런 날, 역시 속을 개운하게 해 줄 소주가 딱이죠?"

(손님을 주방에서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

"물로 속 달래고 계세요. 또 혼자 가져가서 속 버리게 마시지 말고, 제가 서비스로 음식하고 같이 내어줄게요."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면서 말을 한다. 탁. 흰 연기가 흘러나온다.)

"저도 오늘 계속 꼬이는 그런 날이었거든요. 아까도 손님 들어오실 때 종에서 소리도 안 나오고. 어제저녁에는 수도가 얼어서 오늘 간신히 가게를 연거였거든요."


(칼을 꺼낸다. 스릉-) "오늘은 재료 손질하는데 잘 안 다치던 손가락 피부까지 썰었다니깐요.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참.. 어제부터 계속 조금조금씩 꼬이는 날이었어요."

"물론, 매일 그렇지는 않지만요. 하하"


(재료를 썬다. 타. 타. 탁. 탁. 집중한 듯 말소리가 없어졌다.) ".........."

(타 다다닥. 화르륵.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다) "이런 날에는 더 집중 안 하거나 조심 안 하면 크게 다치거나 하더라고요"


(오늘따라 주인장이 더 말이 없이 음식을 만든다.)"......."

(채를 꺼내 삶은 면의 뜨거운 물을 붓는다. 흰 연기가 가득 주방을 감싸다 사라진다.) "면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차가운 현실에 한번 박박 헹궈져야 탱탱해지긴 하죠. 근데 너무 오래 헹구면 또 막 엉켜서 떨어지지 않아요."(면을 찬물에 빨듯이 헹군다.)


노란 양은냄비에 담겨 뜨거운 김을 내뿜는 멸치 육수가 깊은 맛을 속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공기방울이 표면에서 터지는 소리가 손님의 테이블까지 들린다.


보글. 보글.


(촤르륵- 면에 국물을 붓는다.)"자 여기에 깊게 우러나온 뜨거운 멸치 국물에 엉킨 면을 넣으면~"

(완성된 그릇을 테이블로 들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수를 놓는다.) "자 소주는 제가 가져올게요 잠시만요~"


뚜벅. 뚜벅.





잔치 국수 한 상

(손님 앞에 소주를 놓고, 자리에 앉는다. 드르륵- 의자를 끌어 앉는다.)"자. 천천히 한입 해봐요. 이렇게 추운 날 딱일 거예요."


그릇에 따뜻함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손목, 팔꿈치, 어깨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진다.


(흰 연기를 뚫고 젓가락이 한입 크게 면을 집는다. 입에 넣고 후루룩-. 입안에서 뜨거운지 얼굴이 찡그러진다.)

"헙. 뜨겁지만 참 맛있죠?"


(소주잔을 부딪힌다.)"짠~"


'크으-'


"누구나 그러겠지만, 항상 일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생각한 대로 다 흘러가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이상하게도 간절하다고 생각한 일도 잘 안되고 꼬이고 또 꼬여서 풀수록 더 꼬이는 그 느낌이 마치 꼬인 줄을 풀려고 당겼는데 더 단단하게 매듭이 되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어요"


"친구와 사이의 관계에서도, 연인관계에서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어느 관계에서든지 꼭 한 번은 있는 경험이었어요. 저도 잘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더 상대방과 마음적으로 심적으로 꼬이는 느낌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가위로 다 끊어 내고 싶었죠."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갑자기 행동을 잘하거나 해도 믿음이 안 가서 더 의심만 하는 상황이 되는 것처럼..."


"참 이상하죠?" 후우-(한숨을 뱉는다.) "일을 할 때도 그래요. 뭐든 일이 다 그렇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고 내가 왜 이렇게 욕까지 먹어가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를 때가, 저도 그랬었어요. 경비원일을 할 때도 정당한 일을 해도 사과는 제가 먼저 할 수밖에 없었죠."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 웃는 표정으로 말을 한다.)"근데, 더 웃긴 건 경비원이 아닌 회사의 직원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거기서도 제가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를 하더라고요. 하하하"


"결과적으로는 내 잘못이 아니더라고요.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아직 뜨거운 육수를 만나지 못해 잠시 굳어 있는 것뿐이지."


(국수를 먹는 손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씹지 마요. 그냥 흘려보내요.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이니깐. 때로는 씹어 삼키는 투쟁보다, 그냥 흘려보내는 순응이 더 큰 위로가 돼요."


"오늘은 따뜻한 온기가 차갑게 굳은 몸을 풀었으니, 따뜻함을 잊지 말고 푹 주무세요. 차갑게 식은 그릇들은 내가 다 정리할 테니까."



"조심히 들어가요. 끊어내려고 애쓰지 마세요. 부드러워지면 자연스럽게 풀릴 테니까."




(가게 문을 닫으며 간판을 닦는다.) "다음 주엔 노릇하게 구워진 '파전' 한 장 부쳐둘게요. 비바람에 꺾이지 않고 쑥쑥 자라난 파처럼, 다시 시작할 기운이 필요한 밤에 다시 와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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