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화네 심야포차
포장마차의 천에 빗방울이 내려치며 소리를 낸다.(투. 툭. 투툭.)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한다.(투. 툭. 투툭.) "오늘따라 비가 많이 내리네? 아이고 삭신이야.."
아무도 없는 가게에 주인장은 쏟아지는 빗방울에 짓눌린 사람처럼 허리를 굽은 채 테이블에 손을 괴고 있다.
"이런 날은 손님들도 없단 말이지.. 딱 이런 날은 파전에 막걸리가 국룰이긴 한데..."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입구 쪽만 바라보다가 일찍 장사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한 주인장은 주방을 정리하기 위해 주방 쪽으로 뻣뻣해진 몸을 돌린다.
"읏차~"
(딸랑) 종이 울린다. 빗소리가 크게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투. 투투투. 툭툭) 신발을 털고안으로 (탁. 탁.) 급하게 들어와서 우산을 털고 접는다.
시무룩했던 주인장은 사라지고 힘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어서 오세요! 얼른 자리에 앉으세요! 닦을 거라도 드릴까요?"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뭘로 드릴까?"(수건을 건네주면서 말을 한다.)
"딱히 생각나는 거 없으시면, 딱 이렇게 비도 많이 오는 날 생각나는 그걸로 갖다 드릴까?"손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주방으로 들어간다. "한국 사람인데 기름진 거 싫어하신 거는 아니죠?"
"냉장고에 보면 맨 아래쪽에 보면 이런 날씨에 먹기 딱 좋은 그거 있으니 가져가서 마시고 있어요.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을 하고"주방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말을 한다.
"오늘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하루 어떠셨어요?"(주방에서 재료를 꺼내면서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다.)
"표정이 꼭 안 익은 반죽처럼 굳어있네요. 어깨가 아주 귀까지 붙어서 오셨네. 한 잔 하고 있어요 금방 내올게요. 이럴 땐 기름 냄새 밴 고소한 안주에 술 한잔이면 금방 내려갈 테니까."
칼로 파전의 재료를 툭. 툭 썬다. "비가 오는 날 파전이 그렇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파전에 막걸리."
반죽을 만든다.(휘적. 휘적)
"파전을 만들 때 재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반죽이에요. 반죽이 너무 단단하면 기름이 안 스며 들어서 맛이 없었요. 속이 좀 흐물흐물해야, 뜨거운 불을 만나도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게 버티는 법이거든요."
불을 킨다.(타다닥 탁. 화르륵) "사는 게 참 그래요. 몇 년 전에 샌드백을 치는 제 모습이 생각이 나네요. 제가 복싱을 배웠거든요. 복싱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 줄 아세요? 주먹에 힘을 빼는 거예요."
"참 이상하죠? 복싱은 상대방을 때려서 다운시키는 건데 힘을 주지 않는다는 게?"
"내가 너무 많은 힘을 주어서 주먹을 꽉 쥐고 상대를 때리려고 하면, 동작이 너무나도 커지고 힘이 많이 들어가 주먹이 느려져서 상대방이 피하거든요. 거기다가 잘못하면 힘을 꽉 쥐고 있는 제 주먹이 다치는 경우도 생겨요."
"처음에 링에 올라가서의 기억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어요. 있는 힘껏 상대방을 다운시키기 위해 주먹을 던졌는데 힘을 주니 어깨와 다리가 굳어져서 힘만 가득한 주먹이 허공만 갈랐죠. 내 힘에 내가 지쳐 결국에는 제가 먼저 쓰러졌어요."
(치이익-) 뜨거운 팬 위에 반죽이 닿는 소리가 가드 채워진다. 꼭 빗소리 같기도, 누군가의 박수소리 같기도 하다.
"파전이 팬 위에서 지글거리는 건, 사실 뜨거운 기름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 인생도 가끔은 이 팬 위에 올라간 반죽 같죠. 겉이 타 들어갈 정도로 뜨거워야 비로소 바삭해지니까요."
"바삭한 껍데기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무기라 쳐도, 속까지 딱딱하게 굳어버리면 인생이 너무 아프잖아요?"
주방에서 넓은 접시를 꺼낸다.
"자, 노릇노릇하게 맛있는 파전이 나왔습니다."테이블에 김이 모락. 모락 뿜어내는 넓은 접시를 놓는다.
"어이쿠야, 벌써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속 버리지 않게 얼른 한입 해봐요." 손님 쪽으로 파전을 쓱- 앞에까지 민다.
"참, 인생이 그렇죠? 우리는 너무 잘하고 싶은 나머지 힘을 꽉 지고 부딪히고 아프고, 다치면서도 우리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좌절하죠. 주변에서도 그렇잖아요. 힘내라고."
"저는 그 말이 참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지금도 충분히 힘을 내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힘을 내지?라는 생각 때문에 더 힘이 들었던 적이 많았죠. 그렇게 살아가다 복싱을 배우면서 힘을 빼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이야기도 하잖아요.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그런데 손을 펴야 잡을수 있는데, 양손을 힘을 꽉 주고 주먹을 쥐고 있으면 잡을 수 없어요. 잔뜩 독기에 서려 힘을 빼지 못하면 아무것도 잡을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놓지 못하고 힘을 잔뜩 쓰고있죠."
"당신도 지금 너무 잘하려고 애쓰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네요. 힘을 빼고 있어도 괜찮아요."
(젓가락으로 파전의 바삭한 끝부분을 툭 떼어내며)
"자, 이것 보세요. 겉은 이렇게 뜨거운 불에 지져져서 바삭한데, 속은 파랑 해물이 서로 엉겨 붙어서 얼마나 야들야들합니까. 사람도 이래야 맛이 나요. 겉은 세상 풍파 견디느라 좀 거칠어져도, 속까지 딱딱하게 굳어버리면 그건 사람 사는 게 아니라 돌덩이죠."
(빈 술잔을 채워주며)
"오늘 밤엔 그 주먹, 좀 펴고 계셔요. 꽉 쥐고 있으면 손바닥에 땀만 차고 손톱자국만 남습니다. 힘을 빼야 비로소 내 손에 뭐가 들려있는지도 보이고, 누가 내미는 손도 잡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빗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멀리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비가 좀 그쳐가네요. 이제 그만 일어나야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만 더 느슨하게 살아봐요. 주먹 꽉 쥐고 덤비는 세상에, 힘 툭 빼고 유연하게 슥— 피하면서 그렇게요. 그게 진짜 고수거든요."
(손님을 문밖까지 배웅하며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조심히 들어가요. 오늘 당신이 뺀 그 힘만큼, 내일은 더 멀리 가 닿을 겁니다."
(젖은 앞치마를 벗어 걸며 혼잣말하듯 툭 던진다) "힘 빼는 게 제일 어렵지... 나도 그랬으니까. 글자 하나 제대로 못 읽어서 하얗게 머릿속이 비어버리던 시절이 있었거든. 꼭 맹탕인 두부처럼 말이야.
그 하얀 두부 한 모 썰어놓고 기다릴게요. 밍밍한 인생에 어떻게 빨간 맛을 입히는지 보여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