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화네 심야포차
딸랑.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두부를 칼로 조심스럽게 썬다. 쓱, 쓱. 칼끝에 닿는 촉감이 한없이 부드럽지만, 조금만 힘을 잘못 주면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표정이 꼭... 이 하얀 두부 같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은 그런 표정 말이에요. 사람이 너무 막막하면 그렇게 되거든요."
(재료를 꺼내 차분하게 두고, 천천히 생각에 빠진다.) "......."
(두부 한 모를 접시에 정갈하게 담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메뉴 정하신 거 없으면 오늘은 두부김치로 갑시다. 제가 제일 잘 아는 맛이거든요. 사실 전 예전에 제 인생이 이 맹탕인 두부 같은 줄 알았어요. 남들 다 읽는 글자 하나 제대로 못 읽어서, 종이만 보면 머릿속이 두부처럼 하얗게 으스러지던 '난독증' 였으니까요."
(손님을 힐끗 쳐다보고 음식 만드는 것에 집중을 한다.) "제가 '난독증'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아세요?"
"어릴 때 아마도, 초등학생 때일 거예요. 시험을 보고 난 뒤에 글자가 저를 피해 다니면서 어지럽게 해서 흰 백지만 보면 까만 토가 나왔어요. 어떨 때는 흰 두부가 뭉개진 것처럼 머릿속도 뭉개진 적도 있었어요. 글자가 그림처럼 느껴지면서 의미를 머릿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할 때가 많았죠."
(손님을 향해 웃는다. 하. 하.) "참 웃기지 않아요?, 그걸 보고 내가 알아차렸는데 하교하면서 글자를 못 읽는 것을 숨기기 위해 근처 작은 책방으로 곧 장 달려갔어요."
"읏차~" (옆 화구에서 빨갛게 잘 볶아진 김치를 한 국자 크게 떠서 두부 옆에 놓는다.)
(김치 위에 깨를 뿌리며 말을 한다. 탁. 탁.) " 그 작은 책방에서 가장 얇고 아무도 읽지 않을 거 같은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책을 꺼내서 샀어요. 마치 나처럼 책이라는 단어와 동떨어진 녀석이었거든요. 그리고 집으로 곧장 달려가서 그 책을 천천히 읽었어요. 오래 걸렸지만 읽었다는 자신감에 다른 책도 도전을 했죠."
"그다음 책도 그 다른 다음 책도 시간은 오래 걸리고 전에 읽었던 게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읽고, 책 한 권을 몇 개월에 걸쳐서 읽었지만 다 읽고 난 뒤에 그제야 조금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의기양 야한 표정을 지으며 손님에게 다가간다. 뚜벅. 뚜벅.)"참 어린 나이에 대단했죠? 그런데도 저는 글 읽는 거보다는 눈으로 보고 직접 행동하고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 되었죠. "
(손님에게 두부김치가 담긴 접시를 세팅을 한다.)
"한국 사람인데 매콤하고 진한 거 싫어하는 건 아니죠? 이 김치 냄새 좀 맡아봐요. 하얗기만 해서 아무 맛도 안 날 것 같은 두부가, 이 빨간 김치를 만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게 바로 결핍이 무기가 되는 순간이거든요."
"냉장고에 보면 맨 위 칸에 시원하게 보관된 거 있죠? 그거 꺼내서 한 잔 따르고 계셔요. 글자를 못 읽어서 세상을 '그림'으로 보기 시작한 제 비린내 나는 비밀, 이 안주 삼아 들려드릴 테니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주인장이 돌아왔다. 탁.) "두부 김치에는 역시 흰쌀밥이 있으면 또 기가 막히거든요."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뜬다.)"이렇게 하얀 두부, 하얀 쌀밥이 빨간 김치를 만나면 색갈이 스며들면서 자기들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게 되거든요."
(입을 우물. 우물거리며 말을 한다.)"제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정말 큰 이유가 없었어요. 누군가 한 사람을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죠. 별 큰 의미와 큰 목적이 있지 않았어요. 그 시작이 한 사람에게 더 좋은 글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어떤 글을 쓸지를 몰라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가 쓸 수 있는 것은 결국에 제 속마음뿐이었어요. 그래서 제 속마음을 털어놓기로 했죠. 제가 익명으로 글을 쓰는 이유예요. 제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주변에 알려지게 되면 못쓰게 되고 눈치가 보이는 것이 글이거든요."
"저는 글을 몇 번 쓰다 보니 글을 읽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왜냐면요. 저처럼 글을 잘 못 읽거나 읽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 주변의 사물이나,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저의 일상의 영감이고 글 재료였어요. 그러다 더 재미있는 방법으로 글 쓰는 법을 생각을 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AI랑 만드는 '시'였어요."
(빨간 볶은 김치를 들면서, 말을 한다.)"AI 사용한다고 하면 다들 거부감이 대부분 있지만, 제가 쓰는 방식은 조금 달랐어요. 제가 정해놓은 7가지 기준이 있어요. 무명작가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정해놓은 저만의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이 있어요. 독자의 흡입력, 뻔하지 않는 글인지에 대한 킬러문장 등등, 처절한 몸부림이죠. 그 기준에 제 초안을 분석하고 오타를 쓰던지 잘 못쓰던지 상관없이 초안은 분석이 외에는 절대 수정할 수 없게 설정을 했고, AI는 저에게 랜덤주제와 저의 글을 분석한 것을 토대로 제한사항을 거는 거죠."
"그럼 그 랜덤 한 주제를 상상하면서 이미지를 그리면서 저는 글을 작성하는 거죠. 저에게 글 읽는 것은 약점이지만 이미지는 강점이거든요. 에이 얼굴표정이 안 믿기시네요?"
(손님의 얼굴을 보며 눈썹을 올리면서 말을 한다.)"그게 대략 어떤 느낌이냐면 예 들어서 후회라는 주제에 '후회'라는 단어는 제목을 제외하고 쓰지 않고, 어떠한 구체적인 사물, 장소 또는 감각저인 비유도 사용하지 않아야 되고, 무언가에 빗대어 표현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한을 거는 거죠."
(손님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본 주인장은 살짝 미소를 짓는다.)"그 표정 지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만든 시를 읽어 드릴게요. 이렇게 초안을 만들어서 100점 만점으로 기준을 두고 점수까지 받는데 이게 90점이 넘었을 거예요."
"한번 생각해 보실래요? 어떤 식으로 글을 썼을지?"
(천천히 숨을 마시고 살짝 눈을 감고, 시를 낭독한다.)
제목: 후회
23:59:59
00:00:00
하루가 지나간다.
하루가 지나쳤다.
어제의 일도 지나쳤다.
난
아직 그곳에 있다.
(눈을 뜨고 손님에게 말을 한다.) "어때요?, 생각하는 그런 글이었어요?"
"우리 인생도 그래요. 하얀 두부처럼 밍밍한 약점이, 때로는 볶은 김치라는 강렬한 시련과 조합될 때 최고의 맛을 내기도 합니다. 제가 이걸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제 부끄러운 상처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에요."
(빈 접시를 치우고 행주로 탁자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의 결핍이 오늘 어떤 요리가 되었는지 직접 보셨죠? 맹탕 같던 인생도 나만의 빨간 맛을 입히면 누구도 함부로 못 하는 일품 안주가 되는 법입니다.
캔을 처음 땄을 때의 그 비릿한 냄새가, 어떻게 세상을 읽는 매콤하고 진한 소스가 되었는지. 경비 초소에서 보냈던 제 비린내 나는 시절 이야기를 좀 해드릴까 해요. 과거의 냄새 때문에 자꾸 고개가 숙여지는 날, 다시 들르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