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중입니다, 인생도

by 언니그라피


건강이라는 것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한창때의 젊음과 에너지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져서 믿고 말고 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40대를 넘어선 엄마가 여기저기 아프다고 할 때는 그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탓이라고 여겼습니다. 가끔은 투정 섞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엄마는 도대체 왜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시는 걸까?'하면서요. 엄마를 보면서도 '내가 엄마 나이쯤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하는 생각은 못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엄마 나이만큼 나이테를 더한 저는 저보다 더 먼저 인생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저 모습이 나의 미래일까?' 한 번쯤 그 사람에게 나를 대입해 보고, 그 위에 나의 미래를 그려보곤 합니다. 살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나라면 조금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보통의 삶이란 게 그리 특별하게 다르지 않습니다.


앉아서 노는 걸 좋아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즐기지 않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운동입니다.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면 운동과 아주 멀게만 지냈던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꽤 꾸준히 운동을 하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했더군요. 출근 전에 새벽 수영을 꽤 오랫동안 했고, 퇴근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다는 IT업계를 다니면서도 밤늦은 마지막 타임 운동을 꽤 꾸준히 했습니다. 태보, 에어로빅, 방송댄스... 그 시절 인기 있었다는 운동은 한 번쯤 찔러 봤지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순환 운동, 헬스, 스피닝, 요가, 필라테스까지 나름 다양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때는 운동을 놀이쯤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운동을 하며 내 몸에 집중을 하기보다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운동 후 뒤풀이를 즐기는 날들이 계속되었던 거죠. 이렇게 새삼 되돌아보니 '운동을 싫어한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의외로 운동과 꽤 가까이 지냈더군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수단으로 운동을 하던 제게 코로나는 두 가지를 앗아갔습니다. 바로 사람과 놀이였습니다. 한 번 맥이 끊긴 운동은 다시 시작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제가 더 게을러졌고, 몸을 움직이는 일이 점점 더 멀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저와는 다르게 운동을 좋아하고 한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남편이 러닝을 시작했습니다. 영원히 출산하지 않을 것 같은 만삭의 임산부와 같던 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멀리하던 SNS까지 운영하며 매일 달리고, 트레이닝을 받고, 자신의 한계를 만나고 또 넘어서는 그의 매일을 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샘이 났습니다. 나만 두고 남편 혼자서 건강해질 것 같은 질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건강한 남편의 옆에 웬 쪼그랑 할매가 서있을 상상을 하니까 배가 아팠습니다. 하필이면 이제는 제 몸에도 세월의 마일리지가 쌓여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무시무시한 건강 청구서를 받게 될 것 같은 불안함이 점점 커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위해 남편은 러닝화를 두 켤레 준비해 주었습니다. 제가 워낙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니 함께 뛰자고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지는 못하지만 남편은 묵묵히 이모저모 챙겨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소소하게 러닝화며 다른 필요한 악세서리들을 남편에게 지원받았습니다. 남편은 집 근처에 제가 달리기 딱 좋은 러닝 코스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곳은 농구 코트, 배드민턴 코트, 그리고 그 둘을 합한 것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트랙이 있는 공원입니다. 그리고 그 공원 옆으로는 탄천이 조용히 이어져있습니다. 공원과 탄천을 감싸고 있는 산책길을 한 바퀴 돌면 대략 1km가 됩니다. 그 1km 안에는 참 다양한 삶의 요소들이 군데군데 숨어 있습니다. 입구의 평지를 달리다 보면 해가 드는 길을 먼저 만납니다. 그리고 곧 나무가 우거져 바람이 시원하게 스치는 그늘 길을 만납니다.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오르막이 나타납니다. 숨이 차올라 오르막이 버거울 즈음에는 탄천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에 가끔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들의 소리가 곁들여지면 그 순간만큼은 다시 발걸음도 가볍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곧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유턴을 하게 됩니다. 힘들어서 지칠 때쯤 만나는 내리막길은 갈증이 해소되는 듯 속도가 붙고 다리도 개운해져 옴을 느낍니다. 하지만 내리막길이라고 마냥 좋을까요? 속도가 붙어 조금 버거워질 즈음, 길은 다시 평지로 이어집니다. 다시 해가 드는 뜨거운 평지를 달리다 보면 제법 나무가 커서 그늘져 바람마저 시원한 길목이 기다립니다. 그러다 다시 오르막을 만나고 도파민과 같은 물 흐르는 소리에 이끌려 어렵게 또 하나의 시련을 통과하고 나면 다시 내리막길입니다. 이렇게 어르고 달래 주는 길이 있어 버티고 또 버티며 5km를 달립니다. 남편이 이런 환경까지 고려해서 안내한 길은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 제게 선물 같은 러닝 코스를 준 셈입니다. 오늘도 남편에게 감사를 하며 운동을 마칩니다.


제가 갖고 있는 1km 안에도 인생길이 있듯 누군가의 러닝 코스에는 그만의 인생이 깃들어 있겠지요. 그 여정에는 뜨거운 볕도 있고 시원한 그늘도 있을 텝니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할 만큼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수월한 길을 반드시 만날 겁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발끝만 보고 달리다가도 어느 순간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겠지요. 각자의 여정, 그 길을 어떻게 달리든, 결국은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리듬으로 인생을 완주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오늘도 각자의 러닝에 응원을 보냅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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