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부작용에서 벗어나기

by 언니그라피


지금은 하지 않으면서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일들이 있습니다. 한 번 해본 경험이 오히려 지금의 행동을 미루게 만드는 것, 그건 어쩌면 경험의 부작용일지도 모릅니다.


저의 오랜 로망 몇 가지 중에는 '새벽 기상, 미라클 모닝'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약 20년 전쯤에도 새벽 기상이 유행했었습니다. 너도 나도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며. 새벽 기상을 하지 못하면 뒤처지는 사람쯤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지요. 시대의 유행에 따라 저도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참 단순했습니다. 그저 새벽 다섯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의지만으로 일어나려 애를 썼던 것입니다. 아무 요령도 없이 말입니다. 번번이 실패를 하면서 점점 핑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IT업계에 몸담은 동안은 퇴근시간이 고무줄이라 새벽 기상은 무리야' 이런 핑계를요. 그러면서 어느 순간 삐딱해지기도 했습니다. '왜 모두가 아침형 인간이어야 해?' '나는 밤에 능률이 더 생기는 것 보면 저녁형 인간이야.' 하고 말입니다. 실제로 저와 같은 사람이 많았던 걸까요? 아침형 인간에 반대되는 저녁형 인간도 잠깐 유행 아닌 유행을 하긴 했습니다.


그렇게 새벽 기상의 첫 시도는 허무하게 무너졌지만 결과적으로 20년쯤이 지난 후에 저는 결국 그것을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책을 읽고 저자들을 방식도 따라해도 잘 안되던 것이 어느날 특별한 한 사람을 만나 기적처럼 이루어졌습니다. TV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한 김유진 변호사. 그분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새벽의 세상'이 궁금해서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한다>입니다. 유리구두가 제 주인을 만나 비로소 한 켤레가 된 듯, 같은 내용의 책들이라도 나에게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는 책이 있는 반면에, 내 삶을 바꿔주는 책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책은 실패하는 나를 보채거나 다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독거리며 내가 몰랐던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저는 결국 새벽기상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압니다. 새벽 기상은 단순한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지에 힘을 보태주는 작은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렇게 경이로운 새벽을 살 던 때가 있었습니다. 무언가 악착같이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나만을 위한 그 시간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은 어두운 창밖을 보며 글을 쓰고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은 조용한 주방에서 혼자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상상도 했습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세상과 저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있는 듯한 그 시간이 묘하게 저를 단단하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좋았던 새벽을 조금씩 놓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하루, 이틀 알람을 껐습니다. 조금 피곤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러면서 어느새 다시 저녁형 인간으로 돌아와있더군요. 다이어트는 어려워도 요요현상은 순식간이듯, 새벽 기상도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경험의 부작용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해 봤잖아. 그러니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 말을 믿으며 오늘도 내일도 미루는 저를 봅니다. 이미 3년 가까이 손 놓고 있으면서 '못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현재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저는 오늘도 과거에 갇혀있습니다. 과거에 갇혀있는 제 모습이 마음에 들리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결정을 하려합니다. 각성을 하고 더 늦기전에 다시 시작 할 것인지, 빛나던 시절은 그대로 두고 현재의 나를 수용할 것인지. 예전의 나로 돌아가겠다고 결심을 해도 그때와 같을 거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조금 다른 나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시절 내가 나에게 주었던 장치들을 하나둘 준비를 합니다.


- 저녁 루틴 만들기

- 일찍 잠들기

- 새벽에 할 재미난 것들 준비하기

- 낮 동안 요령피우지 않고 일하기

- 업무가 밀렸다고 밤에 하지 않기


하루의 시작은 새벽이 아니라 전날 저녁부터라는 것은 제가 직접 체득한 새벽 기상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새벽에 일어나야만 할 재미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제는 경험의 부작용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입을 시간입니다.


-이만 총총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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