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전이

by 언니그라피

아침부터 둘째의 얼굴이 뚱합니다. 머리를 감은 후 말리지 않은 채 수건을 머리에 푹 뒤집어쓰고 소파에 앉아 있는 모양새가 꼭 링 위에 오르기 전의 복서 같습니다. 상태를 좀 체크해 볼까 싶어서 우스갯소리를 건네 봅니다. "오~ 마루. 막 링에 오를 복서 같아. 멋있어!"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습니다. 이런 날은 조심해야 합니다. 마루는 지금 자신의 내면과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등장하면 그 순간 저를 외부의 적이라 인식하고 마루의 내면과 외면이 합체를 합니다. 그러면 제가 이기기가 무척 힘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루는 지금 사춘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 터널의 한 가운데인 중2입니다. 매일 자신과 씨름하며 어떤 날은 이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매일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아이의 고뇌를 아니까 '아침부터 왜 분위기를 잡고 그러냐'따위의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저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마루의 부정적인 감정이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자타 공인 공감 능력이 좋다고 하는 저의 단점은 감정적으로 쉽게 물든다는 것입니다. 가족 중 누가 우울하면 제 기분도 가라앉고, 누가 짜증을 내면 이유 없이 불쾌감이 밀려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의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감정에는 오히려 '왜 저러는 거야?'하며 덤덤히 넘어가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제 감정의 전이는 애정과 관심의 부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첫째는 얼굴에 감정을 별로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표정만 봐서는 속마음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엄마인 저는 어김없이 예민하게 포착하곤 합니다. 워낙 평소에도 진지한 편이라 상태를 가늠해 보려 농담을 던지는 일은 없습니다. 대신 저는 직접 묻습니다. "누리, 무슨 일인데 그래?"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소득은 없습니다. 순순히 자기의 속내를 말해 준 적이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지금 상태'를 엄마가 알고 있다고 내 마음을 전했으니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더 이상 캐묻지는 않습니다. 이 아이는 사춘기라는 긴 터널의 끝자락에서 어째서인지 나오지 않고 있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마루가 혼자 북을 치고, 누리도 혼자 장구를 치는 게임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종종 둘이서 합주를 할 때입니다. 그때가 되면 제 감정이 슬쩍 고개를 내밉니다. 그 연주 나도 같이 하자며 꽹과리를 챙겨듭니다. 그러면 감정에 쉽게 물들지 않는 남편이 제정신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그제야 저는 살짝 들이밀었던 한 발을 조용히 뺍니다. 그렇게 남편은 세계 3차 대전을 막아내며 우리 집의 평화를 지킵니다.


주변에서는 그럽니다. "갱년기와 사춘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고요. 하지만 아직 갱년기에 이르지 않은 저로서는 이길 만한 무기가 없습니다. 사실 굳이 이겨야만 할 이유도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전투에 참전한 이상 이기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입니다. 감정은 본래 흐르는 것입니다. 그 흐름을 그대로 두면 언젠가 정화되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제가 개입하는 순간, 감정은 고이고 결국 썩게 됩니다. 가만히 흘려보냈다면 나중엔 이렇게 말하게 될 겁니다. "아, 별거 아니었구나" 그리고 그 생각마저 흘려보내면 됩니다. 그렇게 마무리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감정에 휘말려 격한 행동을 하게 된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날카롭게 다그치고, 그 아이들도 원치 않은 말다툼으로 감정적으로 휘말리게 되어 상처가 남습니다. 흘려보냈으면 '별거 아니었을' 감정이 '왜 그랬을까?'라는 자책으로 남겠지요.


큰일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감정은 잠시 앓다가 흘려보내는 게 맞습니다. 매일 아침 이 단순한 진리를 상기해야 하는데 제 마음은 그날그날 들쑥날쑥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영혼까지 끌어모은 인내심으로 무사히 아침을 지켜냈습니다. 그런 저를 칭찬합니다.


-이만 총총 (1944)

매거진의 이전글경험의 부작용에서 벗어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