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닙니다. 친정엄마, 시가 어르신들, 친구들이나 지인들까지요.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연락을 자주 안 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무심함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라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연락을 끊고 사는 건 아니라서 얇디얇은 인연의 끈이나마 근근 덕신 이어가고 있지요. 친정엄마나 시어르신들은 서운해하시기도 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시는 것 같고요. 친구들은 애초에 많지 않기도 하지만 친구니까 또 그러려니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그래도 끈끈한 정이 있어서 저의 이런 무심함을 너그러이 봐준다고 생각합니다만 의문인 그룹은 사회에 나와서 만난 지인들입니다. 주로 아이를 통해 알게 된 '엄마들'이죠. 저는 오는 사람을 막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한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편입니다. 그만큼 신중하게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제게 남아있는 사람들이 더 소중합니다.
그런 지인들 중에, 오랜만에 진화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주는 아니고 분기별로 한 번씩 만나는 진화 언니는 제게 남은 지인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입니다. 그 이유는,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제게 존대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을 하고 중간에 말을 끊는 법이 없습니다. 험담을 하지 않고, 긍정적인 대화들을 이어가니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없어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경우도 없고요. 제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엄마들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진화 언니를 좋아합니다. 제가 언니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한 적이 없듯이 언니도 제게 꾸준히 연락하는 이유를 굳이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언니에게서 연락이 올 때면 무척 궁금합니다. '이 언니는 나에게 왜 호감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의문은 고질병과도 같은 제 오랜 습관입니다. 연애를 할 때도 '이 사람은 내가 왜 좋을까?' 상대방이 저에게 호감을 보일 때 나의 무엇이 저 사람을 이끌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끊임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저의 모습을 애정결핍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나는 조건부 사랑을 받으며 자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어릴 적 부모님의 양육 방식에 특별한 불만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현실에 잘 순응하는 성격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깊은 내면에서는 좀 다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어쨌든 가장 타당해 보이는 가설은 이것입니다. '나는 조건부 칭찬을 받으며 자랐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떠오른 생각은,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유 없는 호감은 그냥 고맙게 받아들이면 되는 일일 텐데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자기애의 부족일지도 모르겠어요.
다음 만남은 가을쯤으로 약속을 하면서 오늘 진화 언니가 저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마치 제가 품고 있던 궁금증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요. 자신의 일상과 정 반대되는 삶을 사는 것 같은 모습,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의 다름, 그런 것들에서 오는 신선함과 매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소화제를 먹은 듯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늘 스스로를 낮추고 사랑받을 이유를 찾는 제게,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고 말해 준 것 같아서 가슴속에 애틋함이 차올랐습니다. 아... 나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증명받으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그냥 나로서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만 총총 (1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