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주도권

by 언니그라피

저는 주로 자기계발서와 인문학 서적을 즐겨 읽습니다. 특별히 책을 편식하려 한 것은 아닌데, 어느새 손에 쥐고 있는 책은 늘 그런 류였습니다. 그러다 재작년부터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남편에게 책을 전도하기 시작하면서였나 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설 인생>이라는 북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이 북클럽은 '소설로 인생을 탐독해 보자'는 취지로 모인 소규모 독서모임입니다. 한 달에 한 권을 함께 읽고 매월 온라인 독서모임을 합니다. 분기별로 한 번씩은 오프라인 모임도 하고요.



이번에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서유미 작가의 단편집 <밤이 영원할 것처럼>입니다.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이 주는 밀도와 함축이 쉽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작가가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지. 정답을 찾으려 하니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일곱 편 중에 서너 편은 결국 답을 찾기를 포기했습니다.



숙제를 하듯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왜 나는 자꾸 작가의 의도를 맞히려 애를 쓸까?' 사실 예전의 제 독서 스타일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나만의 해석'을 하는 편이었거든요.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든, 내게 닿는 문장 하나를 붙들고 나의 삶에 끌어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독자인 저는 '내게 필요한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이 진짜 읽기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가도 분명 어떤 의미를 담았을 텐데, 나는 그걸 그냥 지나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지요. 작가는 제 앞에 없지만 왠지 그걸 알아차려야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작가의 시선으로도 바라보자'라고 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정답을 찾아야만 하는 숙제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텍스트에 대한 바르트의 이론>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텍스트가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주도권은 더 이상 저자가 아니라 독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독자의 해석 속에서 끝없이 열리는 것이라는 이론이었지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문학을 정답 찾기식으로 읽어왔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중심에 두는 감상법이죠. 주로 수험서로 읽다보니 그렇기도 했겠지요. 그런데 그런 감상법은 읽기의 즐거움을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감각적이고 주체적인 독서, 내가 받아들이는 방식 그대로 읽어내는 것이야 말로 더 깊고 자유로운 독서라는 걸, 바르트의 이론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독서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니었구나', '누군가의 독창적인 읽기가 그 사람의 즐거움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으로서 정답이구나' 그렇게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다시 <밤이 영원할 것처럼>을 보니 경계가 허물어졌습니다. 채워지지 않아서 궁금했던 이야기는 나의 상상으로 채우고, 알쏭달쏭했던 상황은 내 방식대로 정리를 해 봅니다. 그렇게 머리에 힘을 빼고 읽으니 비로소 책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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