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과 나의 불만록 사이

by 언니그라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유산처럼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했다'라는 글을 봤습니다. 순간 생각이 멈췄습니다. 유산처럼 남겨진 일기장이라니... 그 속에는 어떤 삶의 조각들이 담겨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이재명 대통령도 김혜경 여사에게 청혼할 때 일기장을 내밀었다고 했던가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청혼을 허락할 만큼의 일기장이란 어떤 글로 채워져 있었을까요?


그러다 저도 가만히 저의 일기장을 떠올려봅니다. 10대와 20대 초반까지는 참 열심히 적었는데 그 일기장들은 20대 중반이 되면서 모두 버렸습니다. 혼자서 읽는데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유치함이 있었거든요. 20대 중반의 저는 '그럴 나이지...' 하는 관대함은 없었나 봅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할 정도라면 좀 그럴듯하게도 썼어야 했는데, 읽다 보면 정말 닭살이 돋고, 혹시라도 누가 볼까 봐 겁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안네의 일기만 해도, 나와 같은 10대의 일기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단단하고 깊었는데 말이죠. 물론 그녀가 처한 시대적인 상황과 대한민국의 평범한 일상을 사는 치기 어린 10대의 환경은 많이 달랐겠지만요.


그렇게 일기장을 내다 버린 후로 거의 10년 가까이 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한동안은 놀기 바빠 자기 성찰이나 반성 같은 걸 떠올릴 틈도 없었고. 이후로는 육아에 지쳐서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지요. 가끔 블로그나 메모지 등에 생각을 끄적이긴 했지만 꾸준히 이어지지 않았고, 글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다시 일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니 비로소 물리적인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더는 제가 일일이 따라다니며 돌보지 않아도 되었고, 아이들도 또한 그런 걸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마음은 아이들에게 꽤 메여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시선은 자연스레 제게 돌아오더군요. 그래서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제 일기장은 말 그대로 '제2의 질풍노도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겉으론 말 못 하는 속사정들을 모두 받아주는 '대나무 숲' 같달까요. 그 대나무에는 불만과 짜증이 덕지덕지 매달려 있죠. 십 대 시절의 일기장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불만의 '종류' 정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좋았던 일들은 일기장에 털어내고, 일상은 깔끔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보면 종종 얼굴을 붉히게 됩니다. 저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지요. 하필 요즘엔 마루크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까지 읽고 있는 탓에 비교가 더 뼈아픕니다. 한 사람은 매일 자신을 성찰하며 사색의 기록을 남겼고, 저는 화풀이 삼아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놓기 바빴으니 말이에요. 그런 것은 비단 황제와 나의 위치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가끔 상상해 봅니다. 먼 훗날, 내가 남긴 일기장이 우리 아이들에게 유품처럼 발견된다면? 그 순간을 떠올리면 괜스레 부끄러워져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물론 삶에는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지만, 일기장을 어떤 시선으로, 어떤 의도로 써야 하는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이젠 더 이상 불만만 가득한 성토의 장이 되지 않도록 나를 돌보는 기록으로 일기장을 다시 길들여보고 싶어 졌습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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