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가 활동 중인 필사 모임의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서울의 약속 장소까지는 두 시간이 걸리지만,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습니다. 결혼 전이었다면 이동시간만으로도 포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의 시간을 지나며, 저는 '나만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예전의 저와는 달리, 지금은 물리적인 거리감이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루의 일정 시간, 아이들은 학교로, 남편은 회사로 떠나있는 그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 '숨 고르기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아이들의 방학 기간에는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제가 잠시 떠나는 시간은 가족들에게서 멀어지는 시간이 아닙니다. 제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지요.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갑니다. 작은 떠남이지만 돌아갈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애틋한 마음이 차오릅니다.
그래서 일 겁니다. 두 시간이나 걸려야 도착하는 모임이 기꺼운 것은요. 오히려 반가운 탈출이자,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여정 같았습니다. 이동시간조차 여행의 일부입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면 책을 읽고, 그렇지 않으면 창밖 풍경에 기대어 조용히 제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럴 때면 거리의 어디든 제 사유의 장이 펼쳐집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거리를 걷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사유의 가지들이 자연스레 뻗어 나갑니다.
오늘 길의 여정에서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오만과 편견』을 펼쳤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 적당한 소음 속에서 오히려 책과 단둘이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은 뜻밖에도 달콤했습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오해가 풀리고 어서 핑크빛 기류가 감도는 장면이 오늘 이 여정에서 펼쳐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심히 넘겨 나갔습니다. 혼자 집에서 읽을 때보다 두 배는 더 늘어난 집중력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모임도 즐거웠지만, 그 시간을 감싸고 있는 이동 시간 역시 무척 행복했습니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조용히 메모를 남기며 보낸 시간들은 혼자만의 여행 같았고, 나만의 여백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역까지 마중 나온 남편과 아이들을 보니 며칠은 떨어져 있었던 듯 반가웠습니다. 역시 잠시의 거리 두기는 서로를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 '마음의 거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오늘의 여정을 포근히 마무리합니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