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꿈꾸는 육아휴직자의 이야기

6. 육아휴직의 좋은 점

by 정서우

오랜만에 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을 만났다. 같은 지점에서 근무하던 지점장님부터 막내까지 모두 모인 자리이고 정말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제주도에서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다 보니 간간히 연락은 했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2년 반 만에 만난 자리였다.


"육아휴직 했다며? 잘 쉬고 있어?"

"이번 하반기에 복직해서 일하고 고과 챙겨야지?"

"계속 노는 거 보니 집에 돈 많은가 봐~?"


육아 휴직 중인 나에게 웃으면서 던진 농담들은 술자리에서 가볍게 지나갔지만, 며칠 동안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제법 무겁게 자리 잡았다. 재직자들에게 휴직자는 그저 놀고먹는, 잉여 인력으로 치부되었고 금전적인 여유가 없으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자격도 없는 건가 싶어 씁쓸했다. 그래서 내가 육아 휴직을 통해 얻은 좋은 점들에게 대해 몇 가지 써보고자 한다.



첫째, 아이들이 꼭 필요한 시기에 옆에 있어주는 부모가 될 수 있다.

- 아이들에게 부모가 필요하지 않은 시기란 없다. 이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하지만 아이가 새로운 변화에 건강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부모가 꼭 옆에 있어줘야 하는 시기가 분명히 있다. 그게 바로 '초등학교 입학'시기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보육'의 시기에는 부모뿐만 아니라 조부모, 돌봄 선생님, 교사 등 어느 누구 하나의 손길이라도 절실하고 또 그렇게 아이를 바라보며 돌봄을 한다. 하지만 '교육'으로 넘어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이'가 아닌 '학생'으로써 그에 걸맞은 행동과 학교생활을 요구한다. 그러한 변화과정에 든든한 조력자로 부모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의 학교생활 적응을 도울 수 있다는 건 정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직장인이자 부모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 만 10년 차 직장인인 나는 휴직 직전에 번 아웃을 경험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휴양지 제주도에 근무했고, 심지어 남편이 육아휴직까지 하는 바람(?)에 1년은 온 가족이 함께 살면서도 일에 대한 회의감, 직장생활에서의 스트레스, 향후 이동이나 승진에 대한 걱정등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직장에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정말 열심히 일했고, 퇴근 후에는 나도 태어나서 처음 하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살림이며 육아에 올인 그 자체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온통 해야 할 일에 치어서 지쳐있는 '나'만 남아 있었다. 그때는 내가 지쳐있는 줄도, 우울하고 힘든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내가 나약해서, 실력이 모자라서, 열심히 하지 않아서 힘든 건 줄로만 알았다. 이제 어느덧 휴직한 지 6개월 남짓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은 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직장에는 고질적인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었고, 육아나 살림은 완수해야 되는 목표가 아니라 계속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내 탓만 하며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대신, 직장에 대해서는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육아나 살림은 잘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아이들과는 좀 더 많은 소통을, 집안일은 함께 나누며 적당히 흐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실천하는 중이다.


셋째, 재정적인 면을 재정비하게 되다.

- 휴직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매월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사라지자, 비로소 재정상태나 재테크 등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급하면 택시를 호출하고, 각종 OTT 구독료, 배달앱 등 나도 모르게 줄줄 새어나가고 있는 돈들이 있었지만, 그간 맞벌이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돈으로 지불한 뒤 안락함을 누려왔었다. 줄어들어가는 통장 잔고를 바라보며 더 이상 정신없이 지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 학원비부터 관리비, 도시가스등의 월 고정비부터 점검했다. 과도한 통신비등은 요금제 변경등을 통해 줄였고, 쓸데없는 구독서비스는 모두 종료했다. 일부 종잣돈은 시중은행의 예적금 상품을 비교하여 가입하였고 소액 주식들은 정리 및 미국배당주 ETF로 전환을 시작했다. 기 가입한 보험상품들 점검 및 연금저축 가입 등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지만 하나씩 재정적인 문제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휴직이 가져다준 큰 이익 중 하나이다.


그 밖에도 새로운 취미생활(주말농장)을 갖게 되었다는 점,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소소한 운동(걷기)을 시작한 점,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네이버 블로그)하게 된 점, 그동안 바래왔지만 실천하지 못하던 글쓰기(브런치스토리 작가 데뷔)를 하게 된 점 등... 2025년 육아휴직 덕분에 내가 얻은 것들이, 그리고 앞으로 경험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누군가는 내가 경력이 단절되었다고, 급여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전적인 이득을 손해 보고 있다고, 허송세월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시간이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시간인지. 나의 39살 인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또 우리 아이들의 이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스스로 행복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서 소중하게 보내고자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꼭 그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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