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형제상회, 강변식당 그리고 멸망의 증산(하이쿠모, 텐조)
푹푹 찌는 더위에 등판이 푹- 젖다가도, 쏴- 하고 내리는 장대비에 바짓단이 젖는 '젖고 젖는 여름'. 이 여름의 찝찝함을 어디서 말릴 것인가! 맛동산에서 말리자! 7월의 맛동산, 여름 보양식의 클리셰를 따라가기로 했다. 클리셰인지 클래식인지, 어디 한번 맛부터 보자 이거다. 해산물하면 생각나는 곳, 노량진의 땡볕 아래, 회원들이 모였다.
보양은 저녁으로 예약되어 있다. 시간이 남을 때 우린 그곳으로 향한다. 해가 지날수록 겹겹이 쌓이는 찌든 때를 훌렁 밀어버릴 수 있는 곳, 플스방이다. 초자연인 상태에서 어떻게든 골을 넣어보겠다는 의지. 소진되는 에너지가 상당하기에 성대한 저녁을 맞이하기로도 안성맞춤이다. 그래, 안성맞춤이지만 어쩐지 필자는 플스방을 나서며 음식이 얹힐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꼴등이었다. 그래, 게임비 내기였다.
그래, 그래도 맛있게 먹어야지. 노량진 수산시장은 오랜만이었다. 어쩐지 수산시장이라 하면 호객과 덤탱 같은 단어부터 떠오르는 A형 소심남이지만, 우리에겐 회장님이 있지 않은가. 그가 알아왔다면 호갱이 되어도 좋으리. 믿고 따를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잘 따라만 가자. 잘 따라온 곳은 형제상회, 노량진의 네임드이니 안심하고 무난하게 들릴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다. 다른 곳이 휑하기에 오잉? 의아했지만, 모두 이곳 앞에 있었다. 미리 예약한 민어를 건네받았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이럴려고 같이 모여 먹는 거니까!
웅장 민어! 기름기가 사악 올라온 것이 먹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위에 여러 부속들이 있기에 사장님께 여쭤봤다. 껍질과 부레는 미리 예습을 해왔으니 PASS, 사진 가운데 분식집에서 볼 것 같은 저 내장은 위. 그 아래 다진 고기같은 것이 뼈에 붙은 살까지 야무지게 먹기 위해 다져놓은 살들이었다. 필자는 저 다진 놈이 참 마음에 들었다, 꼬~소한 것이. 이제부터 한 점, 한 점을 한 잔, 한 잔에 맞춰본다. 참나, 너무 좋아.
쫄깃함 대신 서걱함이 있었다. 고기를 먹는 듯한 식감의 민어회. 껍질과 위는 보이는 그대로, 부레는 직접 느껴보길 권장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예상대로는 되지 않을 터다. 신선한 미식 탐험, 게스트를 초대해 좀 더 판을 벌렸어도 괜찮았겠다 싶었다. 누가 와줄런진 모를 망정.
어쩐지 화장실도 함께 가서 거셀까지 찍어버렸다. 좌로부터 정회원, 준회원, 총무, 회장. 취기가 스윽 올라오는 중이었다.
민어 곰탕. 푹 고아왔다. 생선 냄새가 남아있었지만 그 깊은 맛은 필시 곰탕의 그것과 비슷했다. 이게 바로 보양 아니냐며 앞접시에 채워지는 국물을 보약 마시듯 쪼롭쪼롭 비워냈다. 생각을 더듬으니 이거 이거, 다시금 한 사발 들이키고 싶다. 이런 귀한 음식에 소주가 웬말인가. 초록 와인을 페어링했다. (비웃음)
슬쩍 날은 어두워졌다. 어느새 사람들이 가득 찼다. 웅성웅성 소란스러운 노량진의 저녁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이었다. 으랏차차! 올해 여름 잘 보냈다! 만족 도장을 쾅 찍고 어슬렁어슬렁 수산시장을 빠져나왔다.
어슬렁어슬렁 수산시장을 벗어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동네를 두어바퀴 돌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는 것이었다. "야, 우리 저기 담소 갈래?" 소주가 고팠다. 빨리 앉아야 했다. 얼른 수다가 떨고 싶은 남자 넷이었다. 맛동산 특성상 '본격 체인점'은 잘 가지 않는 터라 색다른 선택이었다. 담소야 뭐 말할 것도 없다, 딱 좋다. 딱 맛있다. 묵혀둔 얘깃거리를 풀어놓자니 소주 서너병은 금방이었다.
본격 맛동산 공식 헤어짐 시간. 총무님은 떠나고 남은 셋이 회장님댁 근처로 간다. 근처로 간다면? 텐조 혹은 하이쿠모. 알면서도 제발로 걸어들어가는 멸망 루트!
취한 배에 나폴리탄? 딱 좋다. 이하 사진 대체.
우리(회,총,정)의 후배이자 준회원의 베프인 게스트 깜짝 출몰! 생일을 맞이했지만 업무로 인해 늦게서야 퇴근한 그를 불러 여름 특집 수박 케익! 짧지만 굵은 시간을 보냈지 않았나 싶다! 잘 기억이 안 난다! 텐조의 맥주는 왜 배부르지 않을까. 꿀떡꿀떡 잘만 넘어가는 터에, 맘 먹고 먹은 민어값만큼이나 긁었다는 것을 다음날에야 알게 되었다. 지갑에서 피가 철철 흐른 탓인지 자리가 파하고 회장님댁에 도착했을 땐 역시나 우리는 기절하고야 말았다. 즐거웠던 여름의 끝은 그러했다.
당분간 술자리는 없다 생각했지만 쓰다보니 그립다. 아무래도 내일은 한잔 해야할 것 같다. 다음의 맛동산을 벌써부터 기대한다. (아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