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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갈빵 Aug 04. 2022

[맛동산 시리즈 01] 삼각지에서-

문배동 칼국수, 하리, 키보, 대박포차

'맛동산'은 K대 체대 출신으로 이루어진 맛집 동아리이다.

<한 달에 한 번은 맛난 거 먹자!> 라는 취지 하에 결성되었다.

한 구역에 모여 적게는 2곳, 많게는 4곳 정도를 탐방한다.

(회장, 총무, 정회원, 준회원) 등급 체계가 있지만 유명무실.


그중 정회원인 나는 지난 날 돌아다녔던 수많은 곳들을 추억하고자

그리고 누군가에겐 정보가 될까 싶어 브런치에서 이를 적어보기로 했다.




0. 삼각지 오리지널

근래 가장 술 먹기 좋은 곳을 꼽으라면? 내 대답은 삼각지. 왜냐고 물으신다면?

1. 옛집과 새집들이 조화롭다. 그러니까 삼각지 한 곳에서 입맛대로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2. 그리고 그집들이 모두 확실한 색을 가지고 있다. 정체성이 뚜렷하다. 체인점이 잘 없다.


체인점이 싫다는 게 아니라, 이곳 삼각지의 가게들은 오리지널리티로 무장된 곳이 많다는 뜻이다. 그만의 매력이 확실해서 믿고 가기 좋다. 그래서 난 요즘 곧잘 삼각지로 입을 내민다. 한 가지 맛보다는 여러 맛을, 흔한 맛보다는 신선한 맛을 보여주기 때문. 그럼 맛동산의 삼각지 코스를 복기해보자.



1. 문배동 육칼 

사실, 그저 그런 육칼을 생각했다. 여느 가게에서 맛봤던 그런 육칼. 특별함을 기대하고 간 곳은 아니었다. 근데, 어라? 알던 국물이 아닌데? 육개장이 더 깊고 진해질리가 뭐 있겠냐마는 더 깊고 진하다. 더 얼큰하다.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때는 알 수 없었으나 파와 고기 또한 푸짐하여 먹는 내내 알차게 씹을 수 있더랬다. 면도 탱글하여 식감파인 나로서는 흐물하지 않아 좋았고 국물과도 곧잘 어우러져 따로 노는 느낌이 없었다. 우리 준회원 동생의 말을 인용하자면 '한국식 츠케멘' 이라고. 찍어 먹는 분들도 많다 하기에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재방문 의사는 충분하다. 또 생각나는 맛이다. 분명 이거 생각난다.



남자 넷이 카페에서 2시간 가량 수다를 떨었다. 슬슬 눈치가 보일 타이밍, "삼각지에 와인 파는 곳도 많다던데, 우리도 내추럴 와인이란 걸 한번 먹어볼까?" 도통 와인병에는 손을 잘 뻗지 않는 모임이었지만 삼각지에서만큼은 분위기 좀 내고 싶었던 것일까. 우후죽순 생겨나는 와인바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해 넷은 열심히 핸드폰을 요리조리.



2. 하리

내추럴 와인, 요즘 여성 분들이 좋아한다기에 우리도 좀 알아야할 것 같아서:) 어울리지 않지만 기어코 찾아왔다. 하리라는 곳이었다. 사장님께서도 의아하셨는지 물어보시더라.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손님의 90%가 여성분이어서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메뉴판부터 음식, 눈에 보이고 손에 집히는 모든 것들이 새초롬했다.


맛은 어떠한가. 일단 문어와 까르보나라. 생긴대로 맛있다. 평소에 좀처럼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맛? (우리라서 그런 거일 수도) 양이 조금 적어 우리의 포크질이 소심해지곤 했지만, 이건 뭐 남자 넷이 간 우리의 잘못 아니려나.

와인은? 내추럴 와인. 설명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꼬리꼬리함이 있다고 하셨는데, 진짜 딱. 내가 알던 와인과 달라. 잔을 코에 박고 향을 맡았다. 적응되지 않는 꼬릿함. 흘러가는 얘기에 금방 한 병을 비우고선 좀 더 특징 센 놈을 부탁했다. 이런 말 해도 되려나. 사장님께서 추천하시며 에 비유하셨다. 궁금증에 시키지 않을 수 없었지. 향을 맡고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번갈아 보기 바빴다. 하지만 결코 맛없음에 의한 것이 아닌 새로움 때문이었다.



2병의 와인을 제한시간 내에 들이켰다. (예약손님이 있어서 워크인했던 우리는 2시간 남짓 즐길 수 있었다.) 계산서를 보고 흠칫했지만 오늘은 쓰려고 만난 날. 돈은 내일 생각하자. 아직 날을 밝아있었고 취기는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흥도 올랐겠다, 다음은 어디냐! 한국의 오사카 키보!



3. 키보

키보키보키보키보. 첫 방문 전에도 노래를 불렀던 곳이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노래를 불렀다. 이곳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외관과 내관과 음식과 술들과 노래와 심지어 화장실까지. 아닌 게 아니라 이곳 화장실은 진짜 화장실 같지 않다. 푸근함까지 느껴질 정도.

시원한~ 생맥부터 시작. 키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귀여운 안주들. 맛으로나 양으로나 부담 적은 아이들이 또 맛깔까지 나기에 먹는 재미도 있고 술 부르는 재주도 있다. 그렇게 맥주로 시작해 사케를 먹고 소츄를 먹고...메뉴에 있는 모든 종류의 술을 탐닉하기 시작한다. 요 있는 거 다 마시고야 말겠다는 그런 다짐으로. 그렇게 한 잔, 그렇게 안주 하나 시키다보면 기분이 너무 좋다. 진짜 일본 어느 거리의 선술집에 있는 것 같다. 나만 느낀 거 아니지?



서서 먹는 곳이기에 다들 한두 잔 먹다 떠나갔지만 우린 참 진득했다. 한 사람 당 5잔은 마셨으려나. 평균 체류시간을 한껏 높이고 나설 채비를 했다. 다음에 또 올 거라는 발도장을 쿡 찍어놓고. 일본 여행은 끝났지만 아직 아쉽다. 그래, 이제는 한국이다. 자신있게 말했다. "나 가본 데 있어, 거기 괜찮아. 가자."



4. 대박포차

우리는 한껏 추락하기 위해 정상 위로 향하고 있었다. 그 정점으로 오르기 위해 필요한 건 두 말 없이 소주다. 프랑스 와인을 마시고 일본 사케를 마셨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비틀비틀은 소주로 만들어야 제격이다. 이름부터 대박포차. 자, 끝을 보자.

저기  프랑스와 일본 여행을 마치고  우리에게 이런 한국적 음식은 다시금 입맛을 돌게 했다.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신호등마냥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다가도 멈추게도 했다. 클라이막스가 제대로 진행되었다. 이제, 소주는 술의 기능보다야 털어 넣는 행위에 기반하여 우리를  어디 멀리로 보내고 있었다.



0. 마무리

삼각지 오리지널. 어디 하나 빼놓을 곳 없는 훌륭한 전개였다. 보통은 소주가 앞장 서 다른 술들이 뒤따르곤 하지만 이날만큼은 삼각지의 요즘 것들로 기분을 세우고 소주가 정점을 만들었다. 비록 통장 출혈은 지혈이 어려우리만큼 컸지만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세상에 먹을 것은 많고 우린 더한 것도 먹어야 하니까. 더 벌진 못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아끼자. 그리고 맛동산에 오르자.

삼각지는 오르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다시 와도 새로운 방향으로 이런 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힙한 곳이라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난 여러가지가 합해진 곳이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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