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면옥, 청계천 휴, 반반호프
↑ 준회원 특) 혼자 마스크 안 씀
맛동산 정신의 요람. 맛동산의 전반전이었으며, 노포 성향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 우리가 돌아왔다. 개중에 또 어디냐. 여름이 아니더라도 가고 싶은데 여름이어서 더 가고 싶은 곳, 을지면옥!
평양냉면을 처음 접한 곳이었다. 그해 우리는, 옆에서 국물을 들이키시는 아저씨들을 보고 놀라워했다. 생전 처음이었던, 스댕 그릇에 담긴 어정쩡함에 대한 평은 그저 '면만 다 먹고 가자' 그후 우리는, 어느샌가 그맛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는 전국 유수의 평냉집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백 투 더 베이직.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꼭 그들처럼 육수를 들이킨 우리는 곧장 소주잔을 부딪혔고 난 크으-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굳이 이런 리액션까지 아저씨들을 닮아야 했겠냐마는 나로서는 그게 썩 나쁘지 않았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의 공식을 따라 소주를 마신 뒤 빠알간 고춧가루를 풀어 면을 빨아들였다. 회장님의 면치는 소리가, 그 폭포같은 소리가 내 왼쪽 귀에 와 부딪혔다. 오히려 좋았다. 평양냉면 서라운드. 폭포 소리가 울려퍼지자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냉면을 즐겼다. 나는 중간쯤 먹다 젓가락에 걸쳐진 면에 식초를 톡톡 떨어트려 먹었다. 누구는 고춧가루를 더 뿌렸다.
후루룩후루룩 먹으며, 취향을 느끼기도 했다. 내게 도 기준이 생겼다. 을지면옥, 물론 좋았지만 나에게 더 맞는 건 학동의 '진미 평양냉면' 이라는 깨달음. 이곳에 오니 그곳이 생각났다. 회사 앞이었던 그곳이 익숙해진 걸까? 육향이 보다 진한 진미의 육수가 내겐 그 어디보다도 술술 넘어갔던 거였어! 아! 나도 취향이란 걸 갖게 되었구나, '육향'이라는 뭔가 고수들이 쓸 것만 같은 단어를 나도 이제 쓸 수 있게 됐구나! 그럼 이제 메밀향과 메밀 함유량에 따른 면 끊김 정도를 체크하기까지는 또 몇 그릇을 먹어야 할까. 됐다, 무엇이 중하리. 중요치 않다. 그저 먹고 싶을 뿐! 어디든간에.
Q) 쓰다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너네들의 평냉 베스트와 그 이유는?
준회원 유XX : '파주 평양옥', 평양냉면계의 애기입맛!
총무 조XX : '을지로 을지면옥', 마지막에 먹었을 때 진짜 맛있었음! 가게 분위기와 평냉 비주얼도 좋음.
회장 조XX : '의정부 평양면옥', 이유 말하라니까 왜 안하고 그래 짜증나게:)
일찍부터 만나는 날이면 밥부터 먹고 플스방을 간다. 평소 게임과는 거리가 먼 편인 넷이지만 위닝에는 진심이다. 다음 맛집을 위해 소화할 겸, 골맛을 볼 겸, 서로의 자존심을 긁을 겸 '맛동산 리그'를 시작한다.
1등 : 회장님
2등 : 정회원
3등 : 총무님
꼴찌 : 준회원 (카드 내는 애)
1등은 기분이 좋다. 꼴찌는 값을 치룬다. 다시 먹을 준비가 됐다. 아, 아직이다. 꼴찌는 아직 어지럽다. 제대로 걷지 못한다. 그에겐 잠시나마 쉴 시간이 필요하다. 형들은 기분이 좋다.
이곳은 맛이 아닌, 당일 치뤄진 브라질과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 때문에 오게 되었다. 호프집에 큰 스크린 있으면 분위기 맛집. 경기 시작 2시간 전 쯤 들어왔다. 운이 좋았다.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곧 문 밖으로 줄이 아주 길게 늘어섰다. 호프 안은 꽤 넓었지만 북적북적 웅성웅성. 뭔가 있는 날은 빨리 움직여야겠다, 경험을 통해 배운다. 안주는 오래 걸린다고 했다. 충분히 공감되는 현장. 생맥부터 시켰다.
돈까스, 피자, 치킨이랑 또 뭐 시킨 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워낙 늦게 그리고 뜨문뜨문 나오기도 했고 특별히 와! 맛있다! 하는 음식은 없었다. 평범한 맛. 사진도 돈까스 하나밖에 없네...무튼 축구 보기엔 진짜 짱! 큰 스크린과 넓디 넓은 내부. 시원시원하고 응원하는 맛도 나고 그래서 신도 더 나고! 벌써 월드컵이 온 것처럼 살짝 설렜다. 경기 결과는 뭐...그랬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즐거웠다. 다음에도 월드컵이나 빅경기가 있으면 또 오고 싶은 마음 굴뚝. 미리 와서 자리 잡고 맥주 한잔 시켜놓으면 마음이 퍽 놓일 것 같다.
축구를 보고 기다리며 4시간을 마셨으니 홀짝거렸어도 취기는 꽤 올라온 상태. 이정도면 술동산이 맞는 걸까. 배고픈 것도 아니니 즐거움에 포커스를 맞춰보자. 포차거리까지 좀 걷자. 웅성웅성. 죽 늘어선 포차포차들에는 이미 얼큰한 일행일행들이 앉아 저마다의 소리를 거리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걷다 보이는 곳 아무데나 앉으면 되는 그런 우리였다. 그렇게 걷다 앉았다. 소주를 시키고 맥주를 시키고 그래도 안주가 뭐가 있나 한번 들여다봐야기에 메뉴판을 한참이나 돌려주지 않았다. 배고플 때보다 배부를 때, 안주를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심코 앉은 호프지만 좋았다. 진짜 좋았으나 뭐가 좋았는지는...다른 리뷰를 참고하시길 권장한다. 취함으로 멸망하기 전, 우린 가까스로 일어날 수 있었다. 웬일로, 다행이었다.
본래 이 근방을 돌면 노포 탐방을 하기 일쑤다. 허나 이날은 무려 브라질과의 경기가 있던 날 아닌가. 축구를 좋아하는 회원들(나 제외)이 이를 놓칠 리 없지. 이들은 축구를 즐겼겠지만 난 축구 보기에 좋은 장소를 골랐다는 뿌듯함으로 내적 싱글벙글을 즐겼더랬다.
이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을지면옥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라지기 전에 다녀왔다는 위안도 있었지만 이제 다시는 그 장소에서 우리의 추억을 추억할 수 없음에 아쉬움 또한 남겨졌다. 몇 친구들이 DM을 보내왔다. 을지면옥에 대한 피드였다. 그래도 나 잘 살았네. 평양냉면 좋아하는 거 알고 이런 소식도 알려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