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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갈빵 Aug 08. 2022

[맛동산 시리즈 02] 을지로/종로에서-

을지면옥, 청계천 휴, 반반호프

준회원 특) 혼자 마스크 안 씀




0. 을지로/종로

맛동산 정신의 요람. 맛동산의 전반전이었으며, 노포 성향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 우리가 돌아왔다. 개중에 또 어디냐. 여름이 아니더라도 가고 싶은데 여름이어서 더 가고 싶은 곳, 을지면옥!


1. 을지면옥

평양냉면을 처음 접한 곳이었다. 그해 우리는, 옆에서 국물을 들이키시는 아저씨들을 보고 놀라워했다. 생전 처음이었던, 스댕 그릇에 담긴 어정쩡함에 대한 평은 그저 '면만 다 먹고 가자' 그후 우리는, 어느샌가 그맛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는 전국 유수의 평냉집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백 투 더 베이직.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꼭 그들처럼 육수를 들이킨 우리는 곧장 소주잔을 부딪혔고 난 크으-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굳이 이런 리액션까지 아저씨들을 닮아야 했겠냐마는 나로서는 그게 썩 나쁘지 않았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의 공식을 따라 소주를 마신 뒤 빠알간 고춧가루를 풀어 면을 빨아들였다. 회장님의 면치는 소리가, 그 폭포같은 소리가 내 왼쪽 귀에 와 부딪혔다. 오히려 좋았다. 평양냉면 서라운드. 폭포 소리가 울려퍼지자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냉면을 즐겼다. 나는 중간쯤 먹다 젓가락에 걸쳐진 면에 식초를 톡톡 떨어트려 먹었다. 누구는 고춧가루를 더 뿌렸다.


후루룩후루룩 먹으며, 취향을 느끼기도 했다. 내게 기준이 생겼다. 을지면옥, 물론 좋았지만 나에게  맞는  학동의 '진미 평양냉면' 라는 깨달음. 이곳에 오니 그곳이 생각났다. 회사 앞이었던 그곳이 익숙해진 걸까? 육향이 보다 진한 진미의 육수가 내겐  어디보다도 술술 넘어갔던 거였어! ! 나도 취향이란  갖게 되었구나, '육향'이라는 뭔가 고수들이  것만 같은 단어를 나도 이제   있게 됐구나! 그럼 이제 메밀향과 메밀 함유량에 따른  끊김 정도를 체크하기까지는   그릇을 먹어야 할까. 됐다, 무엇이 중하리. 중요치 않다. 그저 먹고 싶을 ! 어디든간에.


Q) 쓰다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너네들의 평냉 베스트와 그 이유는?

준회원 유XX : '파주 평양옥', 평양냉면계의 애기입맛!

총무 조XX : '을지로 을지면옥', 마지막에 먹었을 때 진짜 맛있었음! 가게 분위기와 평냉 비주얼도 좋음.

회장 조XX : '의정부 평양면옥', 이유 말하라니까 왜 안하고 그래 짜증나게:)



1-5. 종각 퍼니펀 플스방

일찍부터 만나는 날이면 밥부터 먹고 플스방을 간다. 평소 게임과는 거리가 먼 편인 넷이지만 위닝에는 진심이다. 다음 맛집을 위해 소화할 겸, 골맛을 볼 겸, 서로의 자존심을 긁을 겸 '맛동산 리그'를 시작한다.

1등 : 회장님

2등 : 정회원

3등 : 총무님

꼴찌 : 준회원 (카드 내는 애)

1등은 기분이 좋다. 꼴찌는 값을 치룬다. 다시 먹을 준비가 됐다. 아, 아직이다. 꼴찌는 아직 어지럽다. 제대로 걷지 못한다. 그에겐 잠시나마 쉴 시간이 필요하다. 형들은 기분이 좋다.



2. 청계천 휴

이곳은 맛이 아닌, 당일 치뤄진 브라질과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 때문에 오게 되었다. 호프집에 큰 스크린 있으면 분위기 맛집. 경기 시작 2시간 전 쯤 들어왔다. 운이 좋았다.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곧 문 밖으로 줄이 아주 길게 늘어섰다. 호프 안은 꽤 넓었지만 북적북적 웅성웅성. 뭔가 있는 날은 빨리 움직여야겠다, 경험을 통해 배운다. 안주는 오래 걸린다고 했다. 충분히 공감되는 현장. 생맥부터 시켰다.

돈까스, 피자, 치킨이랑 또 뭐 시킨 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워낙 늦게 그리고 뜨문뜨문 나오기도 했고 특별히 와! 맛있다! 하는 음식은 없었다. 평범한 맛. 사진도 돈까스 하나밖에 없네...무튼 축구 보기엔 진짜 짱! 큰 스크린과 넓디 넓은 내부. 시원시원하고 응원하는 맛도 나고 그래서 신도 더 나고! 벌써 월드컵이 온 것처럼 살짝 설렜다. 경기 결과는 뭐...그랬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즐거웠다. 다음에도 월드컵이나 빅경기가 있으면 또 오고 싶은 마음 굴뚝. 미리 와서 자리 잡고 맥주 한잔 시켜놓으면 마음이 퍽 놓일 것 같다.



3. 반반호프 (종로 3가 포차거리)

축구를 보고 기다리며 4시간을 마셨으니 홀짝거렸어도 취기는 꽤 올라온 상태. 이정도면 술동산이 맞는 걸까. 배고픈 것도 아니니 즐거움에 포커스를 맞춰보자. 포차거리까지 좀 걷자. 웅성웅성. 죽 늘어선 포차포차들에는 이미 얼큰한 일행일행들이 앉아 저마다의 소리를 거리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걷다 보이는 곳 아무데나 앉으면 되는 그런 우리였다. 그렇게 걷다 앉았다. 소주를 시키고 맥주를 시키고 그래도 안주가 뭐가 있나 한번 들여다봐야기에 메뉴판을 한참이나 돌려주지 않았다. 배고플 때보다 배부를 때, 안주를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심코 앉은 호프지만 좋았다. 진짜 좋았으나 뭐가 좋았는지는...다른 리뷰를 참고하시길 권장한다. 취함으로 멸망하기 전, 우린 가까스로 일어날 수 있었다. 웬일로, 다행이었다.



0. 마무리

본래 이 근방을 돌면 노포 탐방을 하기 일쑤다. 허나 이날은 무려 브라질과의 경기가 있던 날 아닌가. 축구를 좋아하는 회원들(나 제외)이 이를 놓칠 리 없지. 이들은 축구를 즐겼겠지만 난 축구 보기에 좋은 장소를 골랐다는 뿌듯함으로 내적 싱글벙글을 즐겼더랬다.

이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을지면옥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라지기 전에 다녀왔다는 위안도 있었지만 이제 다시는 그 장소에서 우리의 추억을 추억할 수 없음에 아쉬움 또한 남겨졌다. 몇 친구들이 DM을 보내왔다. 을지면옥에 대한 피드였다. 그래도 나 잘 살았네. 평양냉면 좋아하는 거 알고 이런 소식도 알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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