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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갈빵 Aug 09. 2022

[맛동산 시리즈 03] 연남동에서-

요코쵸, 규자카야 모토, 진구오뎅

0. 연남동

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날, 필자는 모 기업의 최종 면접을 봤다. 불편하디 불편한 정장을 입고 뒷꿈치 까지는 구두를 신고 오전 동안 3개의 면접. 머리가 지끈했다. 새벽 5시 30분부터 면접이 끝날 때까지 입 안으로 들어온 거라곤 미지근한 물과 마스크 속 내 숨. 면접비도 받았겠다, 준회원님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0.5. 합정 카와카츠/플스방

준회원님과 두번째 방문. 저번에는 본점이었고 이번에는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합정점. 생맥이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맥주 한 잔! 음식은 욕심 내서 둘 다 모듬카츠. 등심과 안심 다 먹고 싶은 게 인지상정. 언제나 옆 사람과 달리 시키면 저, 저, 다른 모양의 한 조각이 그리 탐날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마음 편히 먹어보는 걸로. 소금에도 찍어보고 소스에도 찍어보고 와사비를 올리기도. 느끼하면 고추장아찌를 쫑긋 씹었다. 그러는 와중 점점 속도가 줄었다. 얕봤다. 음식을 남기고 말았다. 준회원님도 마찬가지였다. 첫번째 때의 감동이 없었다. 그땐 첫입부터 놀라 땡그라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는데, 이날은 글쎄...그저 씹고 있었다. 배가 가득 부른 채로 나왔다. 젖은 땅을 걸었다. 너도 나도 오늘의 돈까스에 대한 같은 감상을 가지고 있었다.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일까. 우리가 변한 것일까. 본점과는 또 다른 것일까. 아, 근데 이날 남긴 몇 조각을 지금 베어 물고 싶기는 하다.

플스방으로 향했다. 상대 전적을 따지면 내가 한참이나 위였다. 근데 왜였을까. 이날만큼은 처참히 찢어졌다. 어지러웠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날의 운수는 내게 등을 돌린 듯 싶었다. 몇 주 지나 발표된 면접의 결과도 꼭 그러했다. 이런 젠장.


1. 요코쵸

회장님이 합류한다고 했다. 총무님은 근무중. 오픈 시간에 맞춰 요코쵸에 가기로 했다. 유튜브 '오사카에사는사람들TV'의 인기가 한창이었다. 조회수도 높고 패러디도 나왔다. 정장도 입었겠다. 오늘 마츠다 부장이 되어보기로 했다. "마스타, 나마비루 구다사이!"

일본 감성 물씬 풍기는 이자카야 '요코쵸', 한 차례 왔던 기억이 있다. 몇년 전이었는지, 다찌석에 앉아 하이볼과 쯔쿠네를 시켜 먹었었다. 옆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행복을 느꼈었는데, 한 가지 조금 아쉬운 건 그 사람이 남자였다는 것. 학군단 동기였다는 것.

각설, 역시나 우리의 첫 마디는 "생맥 주세요!" 그리고 안주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 맥주부터 주세요!"

캬. 가게 내부는 들어오면서부터 좋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이 방문했던 여느 가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일본에 가본 적이 없지만서도 여긴 일본 같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 난 마츠다 부장이니까. 안주가 하나씩 차례대로 나온다. 문 밖에는 비가 내린다. 취하라는 날이다.

아기자기한 음식들, 술이 꿀럭꿀럭 넘어간다. 자, 여기서 아쉬운 건 소주를 팔지 않는다는 것. 비가 오니 소주가 땡기는 필자였다. 그리고 우리였다(?). 맥주와 하이볼을 마시고 우린 소주 먹을 곳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참이슬이 없는 건 당연하다. 여긴 일본이고 난 마츠다 부장이니까.



2. 규자카야 모토

회장님 . 기본 안주로 떡볶이가 나왔고 우리는 세트를 시켰다. 감바스와 멘치카스, 드라이 카레와 카라멘(라멘) 절반씩 주는.  드라이 카레가 좋았다. 요즘 그렇게 카레가 좋더라.  위에 올려 야무지게 먹었다. 빵은 또 감바스에 찍어 먹기도. 감바스 하나 나오니 회장, 총무와 스페인에서 먹었던 감바스  삘삘(매콤한 빨간 감바스라고 생각하면 쉬울 !)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먹어본   내보려 어깨를 으쓱하며. "스페인에서는 말이야." 목소리가 커졌다. 유럽여행은 아직까지도, 아니 아마 언제까지나 매운 새우깡처럼 질리지 않는 안주이자 허세부리기 좋은 소재일 것이다. 안주빨이 사그라들  즈음이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음식들은 맛있었다. 허나 나는 보다 소주에 집중했다. 머릿속엔 이미 3차로  곳이 정해져 있었다.



3. 진구오뎅

오뎅바는 여러모로 치트키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한 겨울 찬 바람 불 때, 눈이 올 때, 비가 내릴 때, 2차보단 3차일 때, 마음에 드는 여자의 옆에 앉고 싶을 때, 그러니까 그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을 때, 뿐만 아니라 친구와 소주로서 우정을 맹세할 때, 그러니까 주체할 수 없는 취함에 오늘이야말로 소주를 토나올 때까지 마셔야하는 날이라는 걸 공감하고야 말았을 때 가면 무조건이다. 이쯤되면 내가 그냥 오뎅바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 이유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닐까 싶으면서도 공간 자체가 치명적인 건 진정 부인할 수 없다. 대체로 애매하게 어둑한 조명과 오뎅 국물 수증기와 쫄깃하게 펼쳐져 있는 오뎅들과 파 좀 더 달라고하는 목소리와 이상하게 귀에 쏙쏙 닿는 음악들과 너와 나의 가까워진 대화들은 어디서도 대체할 수 없다. 그야말로 소주다, 소주. 그래서 소주를 먹으러 왔다.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처럼, 규자카야 모토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렸다. 진구오뎅을.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더 있는데 몇 해 전, 준회원님과 이 자리에서 소주로 인해 붕괴된 적이 있었기 때문. 이런 추억까지 함께 한다면야 실로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는 담겨져 있는 오뎅을 꺼내먹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젠 먹을 오뎅을 시켜야 국물에 넣어주신다. 난 꼬불이를 좋아한다. 준회원님은 곤약을 좋아한다. 회장님은 그냥 다 좋아한다. 간장에 와사비, 국물에 파, 갖출 것은 갖춰 놓고 소주잔을 들어올린다. 이때로부터 우리의 대화 주제는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넥스트 레벨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에 대해, 일기에 대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횡설수설했다. 소주가 내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듯 했다.



0. 마무리

쓰고 있는 지금, 밖에 비가 무지 온다. 축축한 날은 어쩐지 예전의 축축함을 불러내곤 한다. 연남동 저 날이 딱 생각난다. 비를 뚫고 나갈 용기는 없지만 오뎅바는 가고 싶다. 실없는 소리하며 여느 다른 곳보다는 조금 빠르게 소주잔을 채우고 싶다. 연남동은 아기자기하고 깔쌈하고 이퓨리해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듯 하다. 데이트하기에도 좋고. 그러한 곳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술냄새나는 연남동을 만들었다. 이런 코스라면 총무님도 좋아할텐데:) 함께 했다면 한층 더 취할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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