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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갈빵 Aug 10. 2022

[맛동산 시리즈 04] 이수/남성에서-

돼지굴뚝, 그냥갈수없잖아, 시작노래방 그리고 하나라멘

0. 시작 : 이수

이수역 7번 출구 2분 거리에 '아오키'라는 끝내주는 이자카야가 있다. 본래 거기로 가려고 했겄만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찼다. 아쉬웠다. 요리 하나하나에 미소지을 수 있는 곳인데. 개중 문어 쪼림이 있는데, 이 쪼린 소스(?)라면 지우개를 쪼려도 맛있을 것 같고 식감은 쫜득쫜득하며 와중에 통통 튀기는 텐션감도 가지고 있어 첫잔 혹은 마지막잔에선 꼭 생각나곤 한다. 무튼, 다음을 기약하곤 재빨리 지도 어플을 켰다. 이수역 근방 어디로 가야할까. 

회장님과의 개인 면담이 있던 날이었다. 그가 나의 동네에 왔으니 마땅해 대접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그래, 이곳이라면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가자! 돼지굴뚝으로!



1. 돼지굴뚝

화나지는 않으셨다. 무표정에서 위압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래봬도 여리디 여린 회장님. 돼지굴뚝의 세트 체계는 특이하다. '소금구이 1근 + 소주'라는 메뉴가 있다. 그저 소주가 나란히 써있으니 '개이득'으로 보이는 마법, 시키고 싶은 마음. 사장님의 불친절이 리뷰 곳곳에서 보이곤 했다. 확실히 말이 걸쭉하긴 했으나 오히려 이 노포 가게와 어울리는 애티튜드라고 생각했다. 고기도 와서 계속 계속 봐주시고. 후에 시킨 껍데기에도 꼭지있는 부분이 맛있다며 운 좋은 줄 알라는 말씀도 아끼지 않으셨다. 사진이 없어 아쉬운데, 이날은 왜인지 진득한 얘기를 나누고 있던 터라 카메라를 들이댄 횟수가 적었던 모양이다. 소주 한 잔에 두툼한 소금구이, 소주 한 잔에 꼭지 껍데기를 씹으며 "야, 여기 고기 좋다"라는 미식가 행세는 물론 생략치 않았다.



2. 그냥 갈 수 없잖아!

우린 다시 한번 아오키로 갔다. 혹시나하고. 여전히 웃음꽃, 술꽃 가득한 그곳에 미련을 버리고 필자의 자취방이 있는 남성역 근처로 걸었다. "이사 오면서부터 가고 싶던 곳 있었어! 거기 가자!"

출처 : 네이버 지도

아, 간판을 찍었어야 했는데 간판 사진이 없어서 네이버 지도에서 퍼왔다. 자존심이 살짝 긁힌다. 무튼, 가게 이름부터 술이 머무는 곳이라는 걸 직감했다. 진짜 술 먹고나면, 그냥 갈 수 없잖아! 허허. 인상 좋은 두 부부 사장님께서 우릴 맞이해주셨다. 가게 안에선 동년배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테이블에 소주 한 병을 두고 라면 면발을 젓가락에 집은 채 TV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 익숙해보였는데 아마 이곳의 청년 단골이 아닐까 싶다. 우린 뭐가 제일 잘 나가냐며 그것으로 달라 했는데 그게 조금 실수였다.

이곳의 '제일 잘 나가는' 메뉴가 막창. 돼지를 먹고 온 우리에겐 다소 헤비한 음식이었다. 대신 라이트한 밑반찬들이 아쉽지 않게 나오기에 소주 친구는 다양한 편이었다. 굳이 밖으로 나왔다. 옆 주택 담장 위로 소리가 넘어가지 않도록 일정 데시벨을 유지하며 착실하게 소주잔을 비웠다. 

1차랑 2차랑 해서 두 당 두 병씩 먹었으려나. 아, 근데...그냥 갈 수 없잖아! 노래방 가자.


쌓여있는 콜라병도 미술품 바라보듯 한다면, 노래 부르기에 적당한 취함이 아닐까나.



3. 시작 노래방

곧 남성을 떠나려 하는 필자였다. 떠나기 전,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보는 맛이 있던 밤이었다. 여기 또한 그러했는데, 도저히 혼자서는 입장할 용기가 나지 않는 곳. 우리의 3차를 시작하기 위해, 시작노래방.

맥주를 시켰다. 그랬더니 과일까지 주셨다. 옛날 노래를 주로 불렀다. 변진섭의 '숙녀에게'로 시작했다. 회장님은 유재하 노래를 두어번 예약하셨다. 입을 맞춰 신혜성, 이지훈의 '인형'을 열창했다. 어디 가서 부르면 꼴값 떤다고 뭐라 할 노래들을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좋게, 맛있게 불렀다. 그리고 내 쇼가 시작되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ㅋ', '그건 니 생각이고', '그러게 왜 그랬어' 비로소 집 가서 발 뻗고 잘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됐다.

시작 노래방에서 끝을 보았다. 집으로 갔다. 


4. 필자의 자취방

왜, 우린 바로 잘 수 없는 걸까. 마침 집에 베이프 맥주가 있었다. 다시. 하필 집에 베이프 맥주가 있었다. 하필 그래서 맥주를 마셔야만 했다. 호그와트로 조기 유학을 다녀온 우리는 당시를 추억하며 내일 해장은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지독한 마법사들 같으니라고. 

참고) 필자는 그리핀도르 퀴디치 몰이꾼으로 활약했고, 회장님은 후플푸프 기숙사에 라멘을 끓이다 벌점을 받기 일쑤였다.



0. 마무리 : 남성

내가 살았어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동네였다. 떠나온 것이 아쉬울 만큼! 활기찬 시장, 사거리 복지관 앞에 나란히 앉아 있던 할머니들과 퇴근하고 올랐던 오르막길이 그립다. 멀리서 애써 찾아갈 이유는 없지만서도 살고 있다면 가야 할 친절하고 푸짐한 맛집도 많은 곳이다.

예) 국수가, 옛날보리밥집, 장터돈까스, 모녀신떡, 산천칡냉면, 싱싱조개



그리고

출근했다. 내 침대 위에 누워있는 회장님의 자태가 참 미웠으나, 점심 시간 맞춰 홍대로 오신 그의 열정은 높이 살 만했다. 해장은 라멘으로. 하나라멘으로.

몹시 찐-하고 짠 라멘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다. 하나라멘은 간장베이스 육수가 깔끔하고 면도 꼬돌꼬돌해서 좋았다. 그래서 면 추가도 했다. 무료라서 더 하고 싶었다. 하나라멘을 먹으러 가서 둘라멘을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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