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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갈빵 Aug 17. 2022

정동진 독립영화제

내가 8월을 기다리는 이유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슬로건부터 낭만이 흥건하다. '일출 보러 가는 곳' 정동진에 나는 영화를 보러 간다. 올해로 3회차. 맛집도 세 번 이상 가본 곳이 얼마 없는데, 멀리 동해에까지 세 번이나 달려가게 한 이 축제의 매력을 적어보려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관광버스에 모두 태워 데려가고 싶다. 그 정도로 나는 정동진의 8월이 정말이나 즐거워서 그 행복을 꼭 같이 나누고 싶다.


2018년 여름, 전역 후 동해에 있는 친구집으로 2주가량 피서를 갔다. 실제로 피서였다. 우리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나 혼자 살자고 집을 떠나왔다. 뭐, 전역 후 싱숭생숭한 것도 있었고 그 친구가 해군 인지라 집을 자주 비웠기에 편한 것도 있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동해시로 가는 버스에 자전거를 실었다.


한 번은 친구의 가족들이 놀러 온다고 했다. 자전거 짐받이에 텐트를 올리고 양쪽에 매달린 자전거 가방엔 잡동사니를 넣어 페달을 밟았다. 동해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달리는 건 지금 생각해도 멋진 일이다. 그 푸르름을 지긋이 바라보며 바람을 갈라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상상하면 소설 속 주인공은 딱 그곳에 있다.

하루는 옥계라는 곳에서 캠핑을 했고 하루는 정동진의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웬걸 근처에 영화제를 한다고 했다. 공짜랬다. 영화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찾아갔다. 그때부터 8월 첫째 주 금토일은 첫사랑의 생일처럼 잊혀지지 않는 날이 되었다. 왜 정동진은 겨울도 아닐 때 첫눈처럼 나에게 왔을까. (웃음)



1. 조명..온도..습도..


직역하면 분위기. 일단 장소부터 학교다. 동심이 서려있는 아기자기한 초등학교. 다 큰 내가 초등학교 운동장을 밟아볼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것마저 감회가 새로운데 저 뒤에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 아래에는 기차가 칙칙폭폭 달린다. 생전 경험해보지 않은 무언가 엄청나게 순수한 공간 배경을 보자마자 '잘 왔다'라고 느낀 건 처음이나 이번이나 같았다. 초장부터 감동이다. 아이들이 그린 스케치북 그림 같은 이 풍경만으로도 이곳에 같이 오자고 할 명분은 확실하다. 참 푸근하다.


영화가 틀어질 때 즈음 해가 스르륵 저 산 너머로 넘어가려 한다. 그때면 사람들은 대부분 각기 자리를 잡는다. 누구는 의자에 앉고 또 누구는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편다. 그 돗자리 위엔 치킨과 맥주처럼 한강에서 즐길 법한 온갖 먹을거리가 함께 올려진다. 나도 맥주를 먹는다. 영화 하나가 끝날 때마다 화장실에 가곤 하지만 홀짝홀짝 마시는 그 찌릿찌릿함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 영화와 맥주. 차- 작정한 콤비다.

+ 또 입구를 지나는 곳엔 여러 부스들이 있다. 맥주도 팔고 커피도 팔고 굿즈도 팔고 이벤트도 진행된다. 모두 관객들을 상냥하게 맞이해준다. 모기향도피워준다. 상냥한 영화제다.



2. 영화


어쨌든 영화제다. 영화를 봐야 한다. 근데, '독립영화'라는 말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보통 독립영화를 떠올릴 때 우리는 심오하다거나 낯설고 난해하다거나 하는 이미지를 상상하곤 한다. 오해 아닌 오해가 아닐까. 최근엔 그 담장이 차츰 낮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메기'나 '벌새'같이 잘 알려진 독립영화의 제목을 들어본 바 없는 사람이라면 그 인식이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무겁거나 실험적인 주제의 영화가 정동진에서 틀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느낀 바, 대체로 영화들은 그곳의 분위기처럼 즐겁고 유쾌하다.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운동장 가득 박수가 모이고 웃음이 모인다. 크게 웃더라도 흘깃하는 사람 하나 없다. 모두 다 웃고 있으니까. 행복이라는 추상적 단어를 아주 잘 표현한 찰나의 순간이다. GV에서 어느 분이 했던 말을 빌리자면 '대화하듯 영화를 보는 곳'이라고 했다. 그 말에도 공감한다. 영화의 주제는 다양하다. 딱,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여러 이슈들을 담고 있다. 테러나 범죄, 조폭이나 스파이, 우리의 일상과는 사뭇 먼 그것들과 달리 바로 오늘의 현실과 착 붙어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와 너와 우리의 이야기, 어제 술 마시며 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낯익은 상황들 속에서 날 것의 대사들이 터져 나온다. 때에 따라 표현이나 상황 같은 것이 어딘가 낯설어도 이질감 없이 볼 수 있다. 공감할 구석이 많은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섹션이 끝나면 상영됐던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이 나와 관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것도 묘미다. 영화에 대한 소개를 직접 듣는 것도 흥미롭다. 가령 본인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는 등의 비하인드를 들으면 나도 몰래 ',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하루마다 '땡그랑 동전상'이라는 관객 투표상을 진행한다. 땡그랑 동전상을 위해 무대 위에서 노래도 부르고 절도 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어필을 하는데 이때면 생전 보지 못한 감독, 배우지만 그렇게 친근할 수가 없다.


3. 영화제 플러스 알파


1년에 강원도를 얼마나 가보겠는가. 이때다. 플러스 알파가 많다. 영화제를 양껏 즐기고 정동진의 잔잔함을 느낄 수도 있다. 가까이 강릉의 여러 맛집과 카페를 갈 수도 있다. 캠핑을 좋아하면 캠핑을, 서핑을 좋아하면 서핑을, 바다를 좋아하면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여유도 가질 수 있는. 아니면 나처럼 숙취에 찌들어 등명해변 솔밭 아래서 반나절을 누워 있어도 시원하고 좋다. 영화제가 시작하고 끝날 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고 한다. 강릉을 가고 주문진까지 간다고도 얼핏 본 것 같다. 영화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고 쳐도 남는 시간이 많다. 그러면 아마 더 풍요로운 추억을 가지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동화가든에서 먹은 짬뽕순부두가 아직 침샘을 자극한다.


동화가든의 짬뽕순두부. 기다릴만 해. 생각나. 계속.
등명해변, 솔밭이 빼백해서 시원하다. 달리는 기차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느긋하고 평화로운 곳. 돗자리 펴고 쉬기 딱 좋은 곳.


사천해변에서의 캠핑. 고기와 회는 못 참지. 각 소주 3병.



0. 2023년 8월, 얼른 와라!


정동진에선 찐한 행복을, 돌아오면서는 찡한 마음 한구석을 느낄 수 있었다. 행복, 행복 하는 거 참 오그라들지만 그 단어가 오롯이 느껴지는 시간들.

,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빈틈없이 행복해- 라는 노랫말이 나오는데 그게 마음에  와닿았다. 내년엔 누구랑 가게 될지 모르겠다. 친구와는 넷이 오자고 했는데. 나머지 둘이  다른 남성일 지도. 어쨌든   거고 나중에는 가족과  계획을 품고 있다. 나에겐  정도로 짱인 <정동진 독립영화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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