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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셉 Apr 21. 2016

내가 가진 약점 때문에
인생이 실패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서툴다해도

저는 해군 출신입니다.
일년은 꼬박 바다 위에서 배를 타고 다녔죠.
해군은 항해를 나갔다 돌아오면
배가 소금물에 부식되지 않도록
가장 먼저 군함을 정비하는 일을 합니다.


이 일을 소위 ‘깡깡이’라고 하는데
배가 출항하고 귀항할 때마다
매번 이 작업을 하기 때문에
해군을 나오면 다들 망치질과 페인트칠의
도사가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 일년이나 배를 타고도 
끝까지 페인트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붓을 잡으면 다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일이 맡겨지곤 했죠.
다림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군 수준의 까다로운 복장점검이라면
다림질에 능해야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전 선임들이 대신 옷을 다려줄 정도로
다림질에도 서툴렀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복학한 후에도
여전히 전 잘하는 것도, 
제 마음을 떨리게 하는 일도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쓴 편지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친구들에게 ‘외계 편지’라 불리었고,
숫기가 없어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했으며,
말도 잘 못해서 ‘언어장애’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전공도 흥미가 없고, 진로는 불투명했습니다.
유일한 취미는 사진이었지만,
색약인 전 사진에 대한 확신과
정체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런 게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이런 질문과 방황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십여 년이 흘러,
어느새 전 한 아내의 남편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습니다.


저녁 준비를 위해 메추리알 껍질을 까는
아내를 도우려 옆에 앉았지만
제가 손대는 것마다 엉망이 되고 맙니다.
아직도 전 잘하는 게 없습니다. 
아직도 서툰 것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서투름 때문에 
우리 인생이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요.

이런 것들은 그저 말 그대로

‘조금 서툰 것들’에 불과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실패하는 것은
크고 작은 서투름 때문이 아니라,
그런 자신을 놓아버리고, 
절망해버린 자신의 마음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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