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서툴다해도
저는 해군 출신입니다.
일년은 꼬박 바다 위에서 배를 타고 다녔죠.
해군은 항해를 나갔다 돌아오면
배가 소금물에 부식되지 않도록
가장 먼저 군함을 정비하는 일을 합니다.
이 일을 소위 ‘깡깡이’라고 하는데
배가 출항하고 귀항할 때마다
매번 이 작업을 하기 때문에
해군을 나오면 다들 망치질과 페인트칠의
도사가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 일년이나 배를 타고도
끝까지 페인트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붓을 잡으면 다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일이 맡겨지곤 했죠.
다림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군 수준의 까다로운 복장점검이라면
다림질에 능해야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전 선임들이 대신 옷을 다려줄 정도로
다림질에도 서툴렀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복학한 후에도
여전히 전 잘하는 것도,
제 마음을 떨리게 하는 일도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쓴 편지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친구들에게 ‘외계 편지’라 불리었고,
숫기가 없어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했으며,
말도 잘 못해서 ‘언어장애’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전공도 흥미가 없고, 진로는 불투명했습니다.
유일한 취미는 사진이었지만,
색약인 전 사진에 대한 확신과
정체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런 게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이런 질문과 방황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십여 년이 흘러,
어느새 전 한 아내의 남편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습니다.
저녁 준비를 위해 메추리알 껍질을 까는
아내를 도우려 옆에 앉았지만
제가 손대는 것마다 엉망이 되고 맙니다.
아직도 전 잘하는 게 없습니다.
아직도 서툰 것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런 것들은 그저 말 그대로
‘조금 서툰 것들’에 불과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실패하는 것은
크고 작은 서투름 때문이 아니라,
그런 자신을 놓아버리고,
절망해버린 자신의 마음 때문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