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두려운 마음이 들때면,
살아가다가
가끔 두려운 마음이 들면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선택들 앞에서
고민하고 결정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제도 여러 도움을 구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몇 개는 거절을 하고
몇 개는 도와준다고 말했습니다.
도와준다는 말이 뭐가 어려워서
거절하느냐 물으면 할 말도 없지만
그 시간을 비워야 할 뿐 아니라
나머지 빈 시간은 그 시간을 갚으며
현실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 아닐까?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절망 같은 하루 앞에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이스라엘의 제사장들로 구성된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했고
부활이나 영적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의 안정적인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더욱 부활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을 믿게 되면
사회구조적인 개혁의 위험성을
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결혼과 대를 잇는 상황을,
부활이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로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질서와
인간적인 논리와 이해로는
가늠되지 않을 그 나라의 이야기.
영생이 그저 죽지 않는
영원한 인생의 연장이라면
얼마나 지루하고 슬픈 삶일까요?
사두개인이 인정하는 모세오경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눅20:37, 출3:6)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서 부활의 때를 기다리며
주님의 품에 살아가는 이들의 하나님,
여전히 살아있는 그들에게
약속한 언약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믿음,
부활을 부정하게 되면
사두개인처럼 현세적이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부활을 믿게 된다면,
정말 부활을 믿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질문합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은
그래서 멈춰 서서 오늘의 하늘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