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ictorial

고통이 생명을 담보한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by 이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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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알지 못하는 기쁨,

미지의 영역 속에서

제자들은 단순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근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때

주님은 내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기쁨의 이유를

주님에게 찾으라 하셨다.

주님으로 기뻐할 수 있다면

나는 모든 순간에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겠다는 말씀 하신다.

그리고 또 조금 있으면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조금 있으면. 에 대한

기한도, 의미도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곁을 떠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부재를 앞두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약속하시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여자가 출산하게 되면 근심하게 되지만

아기를 낳으면

태어난 기쁨 때문에 더 이상 그 고통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요16:21)


여자가 출산하면 근심하지만

그 근심은 생명을 담보하고 있다.

고통, 산통은 보이지 않는 생명을 품고 있다.

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이 시대에 주님이 말씀하시는

선언처럼 들린다.

지금 고통하고 근심하지만

이 시간을 주님의 뜻을 품고 있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가치나 생명을 품고 있어서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가치 때문에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게 해주세요.


지금은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주님의 주권을 신뢰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라고 묻는 대신

주님이 하신 일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도록

그저 손을 들어 찬양할 수밖에 없도록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보지 못해도 믿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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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되 #주님으로기뻐하겠습니다 #온유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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