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나비의 날갯짓을 찾아

기브아의 딸, 실로의 딸

by 이요셉
111.jpg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처럼.

한 여인이 기브아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윤간을 당하고

그로 인해 보복전쟁을 벌이게 된다.

전쟁으로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나비의 날갯짓은 어디인가?

이 이야기는 행음한 첩이

넉 달 동안 친정에 간 일로 시작된다. (삿19:2)

과연 범죄 한 여인의 죽음을 통해

다 범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사사기의 의도인가?

새번역을 보면

그 첩을 행음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무슨 일로 화가 났던 여자가

친정 집으로 돌아가 넉 달 동안

머물렀다고 말한다.'

행음하다고 쓰인

히브리어'자나'는

화내다. 증오하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어서 70인 역에는

이를 화를 냈다고 번역한다.

이후의 남편이 친정으로

데리러 온 전개를 보면

여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남편의 잘못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기브아에서 머문 집의 노인은

성읍의 불량배들에게

자신의 딸을 내주려 하고,

남편은 대신 자신의 첩을 내주게 된다.

여인은 밤새 윤간당했지만

남편은 아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심지어 그의 죽음 조차 알지 못했다.

죽음에 이른 아내에게

남편이 던진 무심한 말.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삿19:28)

그녀의 죽음 이후 생겨난 잔인한 전쟁,

그 전쟁의 결과를 처리하기 위해

다시 실로의 여자들이 희생당한다. (삿21:23)

사사기는 하나님 없이 자신의 뜻대로

결정해 나가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폭력과 비인격,

아픔과 잔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다 확대하면

힘을 가진 자의 폭력,

권위를 가진 자의 학대까지 고민할 수 있다.

하나님 없이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면

인간은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까?

자신의 뜻을 이루어 줄 수 있다면

어떤 신이어도

어떤 희생을 치러내도 괜찮은가?

어느 책의 제목처럼

잘되는 나. 를 끊임없이

꿈꾸는 시대 속에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앞에 저항선을

긋는 것처럼 보인다.

나를 위한다 말씀하시고

나를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나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왜 자꾸만 저항선에 부딪히는가

사랑이 가리키는 것은

사람이 신이 되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담의 범죄도,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도

심지어 사단도 모두 비슷한 꿈을 꾸었을까?

사람이 정말 신이 되고, 하나님이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성육신을, 피조물의 반란을, 죽기까지 낮아짐을,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겸손을,

인류의 모든 저주를 책임질 수 있을까?

인간은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고

흉내 내지만알지 못한다.

시간을 가까이 보면

내 소견이 다 옳은 것 같아 보이지만

긴 시간 속에서는 하나님이 옳다.


매거진의 이전글다다익선이라 했던가